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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머리고지서 발굴된 김진구 하사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

등록 2020.06.03 1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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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13일 화살머리고지 4차 전투 전사

화살머리고지 전사자 중 신원 확인 사례 7명

[서울=뉴시스] 고 김진구 하사. 2020.06.03. (사진=보훈처 제공)

[서울=뉴시스] 고 김진구 하사. 2020.06.03. (사진=보훈처 제공)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와 국방부(장관 정경두)는 3일 오전 대구 남구 앞산 충혼탑에서 고 김진구 하사의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개최했다.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란 6·25전쟁 당시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쳤으나 미처 수습되지 못한 채 이름 모를 산야에 잠든 전사자를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하는 행사다.

유가족 30명을 포함해 국가보훈처장,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 대구시장, 수성구청장, 50사단장 등과 6·25참전유공자회 등 6개 보훈단체가 참석했다.

보훈처가 유가족 대표에게 김 하사 전사자 신원확인통지서를 전달하고 참전과정과 유해발굴 경과를 설명했다.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이 호국의 영웅을 최고 예우로 맞이하는 명예선양의 의미를 담은 '호국영웅 귀환패'와 전사자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함'을 전달했다.
 
67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김 하사는 1928년 2월20일 경북 영일군 송라면 대전리에서 4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21세에 결혼해 슬하에 1남을 두고 가족 생계를 책임지던 중 24세가 되던 해 6·25전쟁이 발발하자 3살 아들을 두고 군에 입대했다.

김 하사는 제2사단 31연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해 정전협상이 진행되었던 기간이자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1953년 7월13일 화살머리고지 4차 전투에서 전사했다.

유해는 개인호에서 골절된 상태로 발굴됐다. 마지막 순간까지 한치의 땅도 양보하지 않기 위해 진지를 사수하던 중 적 포탄에 의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훈처는 밝혔다.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 현장에서는 유해와 함께 수저, 수통, 탄약, 인식표, 계급장, 기장증, 대검, 전투화, 철모 등 유품이 발굴됐다.

아내 이분애(90)씨는 "남편이 함께 처갓집을 가는 길에 업어주는 등 생전 남편의 다정한 면모와 함께한 추억의 애틋한 마음을 끝까지 간직하고 있고 남편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끝까지 기다렸다"고 말했다.

아들 김대락씨는 "어머니는 아버지가 전사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셨고 아버지의 유해가 없어서 무덤이 없으니 내가 죽으면 선산에 뿌려달라며 오랜 세월 가슴 아파하시며 사셨다"며 "신원확인이 됐다고 하니 너무 반갑기도 했지만 지난 세월이 떠올라 슬프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에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김 하사 유해는 유가족들과 협의를 거쳐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6·25전쟁 전사자 중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2000년 4월 유해발굴을 개시한 이후 모두 142명이다. 비무장지대(DMZ) 내 최초 유해발굴인 화살머리고지에서 7명 신원이 확인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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