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모성과 광기에 대하여 '네 눈동자 안의 지옥'
[서울=뉴시스] 네 눈동자 안의 지옥 (사진= 창비 제공) 2021.03.30.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출산 후 여성이 일시적 우울감을 넘어 극단적 우울증과 정신증을 경험한다면 치료받아야 하지만, 엄마의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문제는 드러내기 어렵거나 지워지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산후정신증은 출산 후 수일에서 2~3주 이내에 발생하지만, 저자인 한국계 미국인 캐서린 조는 아이가 생후 3개월이 됐을 무렵 망상과 환각을 겪었다. 갓난아이를 데리고 시부모의 집을 방문해 머물던 어느날 아이 얼굴에서 악마의 눈을 봤고 자신이 지옥에 떨어졌다고 믿게 된다.
가족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물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마침내 현실 감각을 되찾았을 때, 정신병원에 입원한 자신을 발견한다.
이 책은 정신병원에서 깨어난 저자가 자기 현실을 되찾으려고 시간을 더듬어가며 남긴 기록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아래서 숨죽이며 자랐던 어린 시절, 폭력적이었던 옛 연인이 남긴 트라우마, 결혼과 출산 아이를 둘러싼 주변의 지나친 관심과 조언이 이어진다.
미국에서 나고 자라며 한국과 미국의 문화를 모두 경험한 저자는 가족들은 아이를 낳으면 미역국을 먹어야 하고 일주일간 몸에 물을 묻혀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저자는 출산 후 첫 끼니로 초밥을 먹고 바로 샤워를 했으며, 갓난아이와 비행기를 타고 장기 여행을 떠나 식구를 기겁하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심청전이나 논개 설화, 견우와 직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사랑의 의미를 설명했고, 시어머니는 결혼한 후는 항복할 줄 알아야 한다며 순종적인 며느리로서 지켜야 하는 희생의 규칙을 강요했다.
저자는 한국의 전래동화 속 무조건적 희생과 헌신에 의문을 품으며 낙천적 미국식 해피엔드를 꿈꿨지만 한국인이 겪어온 전쟁과 분단의 역사를 떠올리며 슬픔과 고통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보고 들은 모든 것이 비극적인 운명을 암시했던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워한다.
이런 혼란 속에 저자는 새 삶을 찾아 뉴욕, 홍콩, 런던에 살면서 사랑과 희생의 의미를 다시 써내려간다. 김수민 옮김, 400쪽, 창비,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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