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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당 타이 손 "베트남 전쟁속 달빛아래서 연주...쇼팽과 운명적 연결"

등록 2022.08.16 10:4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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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1980년 쇼팽 콩쿠르 동양인 최초 우승
전쟁때 어머니이자 첫 스승이 피아노 끈 이어
물소가 끄는 수레로 공수…유년시절 음악적 성장
"쇼팽음악은 머리 아닌 감정·감성으로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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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 (사진=마스트미디어/Hirotoshi Sato 제공) 2022.08.1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쇼팽과 나는 매우 운명적인 연결이 있습니다."

1980년 제10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 우승자가 탄생하자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당시 이력서에 '모스크바 음악원 재학 중'이라는 단 한 줄밖에 쓰지 못한 22살의 베트남 출신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이 그 주인공이었다. 전쟁의 폐허 속 음악의 불모지에서 온 청년은 처음으로 도전한 콩쿠르에서 기적을 써 내려갔다.

섬세한 연주로 대표적인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꼽히는 당 타이 손(64)이 3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16일부터 춘천, 통영을 거쳐 2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공연을 앞두고 서면으로 만난 그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유학하며 피아노에 대한 테크닉과 외면적인 틀을 다시 세우는 것을 배웠지만, 내면적인 부분은 (어릴 적) 기적을 통해 이미 채워져 있었다"고 말했다.

쇼팽 콩쿠르가 생애 첫 리사이틀과 협연 데뷔였을 정도로 무대 경험이 전무했던 그였다. 하지만 몸속엔 이미 쇼팽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인도차이나 전쟁 속 프랑스인들이 버리고 간 피아노로 하노이음악원을 공동 설립한 베트남 1세대 피아니스트인 그의 어머니이자 첫 스승 타이 티 리엔이 그 운명의 끈을 이었다.

"1970년 쇼팽 콩쿠르에 초대받았던 어머니는 그곳에서 경험한 음악에 크게 자극 받아 모든 쇼팽 레퍼토리 음반과 악보를 구해왔어요. 당시 전쟁 중이었던 베트남에선 음악을 배울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전무했지만, 저는 쇼팽에 관해선 모든 걸 경험할 수 있었죠. 이 우연한 계기로 나는 내 피에 흐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쇼팽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어요. 이는 나의 유년 시절을 가득 채우고 음악적 성장을 도왔죠."

포화 속에서도 음악은 놓지 않았다. 1965년 베트남 전쟁이 본격화되며 하노이 음악원 초등과정에 갓 입학했던 7살의 당 타이 손도 어머니와 깊숙한 산속 시골 마을로 몸을 피했다. 물소가 끄는 수레로 공수해 온 피아노는 현도 끊어지고 페달도 망가진 처참한 상태였지만, 어머니와 음악원 학생들, 당 타이 손은 달빛 아래 연주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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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 (사진=Hirotoshi Sato) 2022.08.1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전쟁에 대한 경험과 정글에서의 피난 기간에 나는 사람들과 아주 가까이, 서로를 의존하는 인류애와 거대한 자연 그 자체를 겪고 배웠어요. 기술과 테크닉은 이후 발전시켰지만, 그 내적인 음악과 예술적인 감성은 어린 시절에 채운 거죠."

1977년 가을부터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수학했던 그는 단지 세계 무대에서 자신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콩쿠르에 참가했다. 우승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그는 "심사 결과를 들었을 때 엄청난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저 아무도 모르는 한 명의 음악학생이었다"고 회상했다.

우승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그와 가족 그리고 베트남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반 공산주의 시인이었던 아버지는 큰 병원에서 결핵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게 됐다. 베트남 정부의 클래식 음악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고, 사람들의 인식도 변했다. "당시 나는 혁명적인 상징이었다"고 했다.

우승 후 세계 여러 무대에 설 수 있었지만, 그는 학교로 돌아갔다. 유학한지 3년도 안 됐던 때였고, 더 연마하고 싶은 음악이 많았다.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해요. 천천히 시간을 갖고 커리어를 발전해나가기를 선택했고, 지금까지 음악을 이어오게 됐죠."

이번 공연은 프랑스 작곡가들 작품과 쇼팽의 춤곡으로 꾸민다. 1부에선 라벨의 '고풍스러운 미뉴에트'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드뷔시의 '영상' 1권, 프랑크의 '전주곡, 코랄과 푸가'를 들려준다. 2부는 폴로네이즈부터 왈츠, 마주르카와 자주 연주되지 않는 에코세즈, 타란텔라 등 쇼팽의 대표적인 춤곡을 선사한다. 그는 "제가 어떠한 피아니스트인지 드러내기에 가장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자신했다.

"예술가로서 우리는 탁월한 것을 선보여야 하죠. 레스토랑을 예로 들면, 메뉴판이 책처럼 두껍고 끝도 없이 여러 음식을 다루는 곳을 선호하지 않아요. 그보단 1~2페이지로 정리된 메뉴를 내온다면 안심하죠. '오늘은 잘하는 음식만 골라서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죠. 며칠 전 쇼팽 페스티벌 무대에서 폴란드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봤어요. 새로운 감각을 자극하고 새로운 시작을 주는 프로그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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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 (사진=Hirotoshi Sato) 2022.08.1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쇼팽의 음악이 그에게 더 가깝게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 "쇼팽이 생전 겪었던 고난과 역경, 조국에 대한 향수, 민족주의에 사로잡힘. 둘 다 조국이 어려움을 겪은 시기를 경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의 음악적인 감각과 아름다움이 내게 무척 개인적으로 다가오며 너무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거예요. 쇼팽의 음악은 머리와 의도로만 연주할 수 없어요. 감정과 감성으로 완성되죠."

드뷔시와 라벨 역시 그에게 영감을 주는 중요한 작곡가다. 어머니 영향이 컸던 그는 "처음 피아노 건반을 만진 순간부터 11년간 프랑스 음악에 다가가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프랑스령이었던 베트남에 거주하던 프랑스 피아니스트로부터 피아노를 처음 배웠어요. 이후 프랑스에서 공부하며 프랑스 음악의 스페셜리스트가 됐죠. 프랑스 음악은 단순히 '인상주의'로 표현할 수 없어요. 그 색감과 빛부터 시적으로 가득한 요소들까지 마치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소리의 표현이 중요하죠."

20여년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후학을 양성해온 그는 미국 오벌린 컨서바토리, 뉴잉글랜드컨서바토리 교수로도 활동하며 실력 있는 제자들을 키워내고 있다. 지난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브루스 리우도 그의 제자다.

"제 감정과 감성을 음악을 통해 나누고 싶어요. 음악은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좋은 언어죠."


◎공감언론 뉴시스 ak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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