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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습격범이 일깨운 집단 트라우마…치료법은 '엄벌'

등록 2024.01.31 16:19:47수정 2024.01.31 18: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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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습격범이 일깨운 집단 트라우마…치료법은 '엄벌'



[서울=뉴시스] 장한지 기자 = "입원한 첫날엔 의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다음날 이곳저곳 아프고 쑤시고 정신적 충격이 더 악화된 것 같더라."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습격당한 다음 날 저녁 의원실 관계자가 통화에서 한 말이다.

그날 밤 악몽을 꿨다. 띵동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었더니 어린 친구가 광기 어린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는 흉기로 복부를 찔렀다. 꿈인데도 그 아이의 눈빛이 잊히지 않고 장면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서 당황스러운 아침을 맞았다.

배현진 습격범의 경우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했으나 수행비서는 그로부터 "정치를 이상하게 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우발적 범행이 아니라는 취지로 증언했다고 한다. 경찰은 명확한 범행 동기와 계획 범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수사 중이다.

무차별 흉기난동에 반복되는 습격까지, 언제부턴가 '내가 모르는 누구에게 당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일상의 공포가 사회에 자리 잡아가고 있다. 갈등을 빚거나 일면식이 없는 상대로부터 내가 테러를 당할 수 있다는 공포심이 생긴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범죄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데서 시작한 '증오범죄'라고 말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분노하고 이를 '남 탓'으로 돌리면서 증오범죄가 발생한다는 분석이다. 특히 증오와 분노를 해소하지 못하고 사회가 이를 방치한다고 느낄 때 정치권에게로 화살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더욱이 최근 들어선 범행 당시 장면이 유튜브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타고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 범행의 방법을 몰라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범죄자가 저지른 범죄 행위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모방범죄'가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범행 영상과 사진 등이 무분별하게 전파되면서 집단 트라우마도 유발하고 있다.

문제는 범행의 발생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증오범죄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는 경고까지 나온다.

이윤호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상부 지시가 있는 조직적 테러만 떠올렸다면, 최근에는 개인의 테러를 뜻하는 '론 울프(lone wolf·외로운 늑대) 테러리스트'라는 단어도 등장했다"며 "미국에서는 종교적·정치적·인종적 편견에 의한 증오범죄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사회 전반에 대한 증오가 범죄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이 일어난 지 고작 반년 지났다. 6개월 새 서현역 등 흉기난동과 각종 정치인 습격 사건이 계속적으로 발생했다. 잊을 만하면 각인시켜주니 트라우마가 치유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법원이 오늘 신림동 흉기난동범 조선(34)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흉악범죄와 이를 모방하는 범죄에 대한 엄벌이 집단 트라우마 치유의 시작점이다. 관대함에 앞서 단호함이 필요한 때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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