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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비석 앞으로 두 줄 더 늘었더라"…소방관 참변 언제까지

등록 2024.02.03 09:00:00수정 2024.02.03 09: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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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2023년 10년 간 소방관 40명 순직

정치권에서는 위험·화재수당 인상 등 약속

소방 내부는 인력부족, 예산, 처우 등 지적

현장지휘관 역량 강화해야 한다는 분석도

[문경=뉴시스] 이무열 기자 = 지난 2일 경북 문경시 신기동의 한 육가공업체 공장 화재 현장에서 국과수, 소방, 경찰 등 관계기관 10곳이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2024.02.02. lmy@newsis.com

[문경=뉴시스] 이무열 기자 = 지난 2일 경북 문경시 신기동의 한 육가공업체 공장 화재 현장에서 국과수, 소방, 경찰 등 관계기관 10곳이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2024.02.0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혜경 기자 = "8년 전 현장에 출동 갔던 남편이 하루아침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100일 된 아기랑 단 둘이 세상에 남겨졌을 때 그 참담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왜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는지, 대책은 없는 건지 정말 묻고 싶다."

지난 2016년 강풍 피해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의 아내인 A(45)씨는 3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문경 화재'로 순직한 두 소방관에 대해 이같이 말하며 안타까워했다. 

A씨는 "남편 유골이 안치된 현충원에 갈 때마다 비석이 늘어난 걸 볼 수 있다. 남편 비석 앞으로 두 줄이나 더 늘었다. 순직한 소방관들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제는 이런 희생을 멈춰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지난 31일 경북 문경시 육가공 제조업체 화재현장에서 고(故) 김수광(27) 소방장과 박수훈(35) 소방교가 화마에 참변을 당했다. 화재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두 사람은 건물에 사람이 남아있을지 모른다고 판단해 수색에 돌입했다가 목숨을 잃었다. 이들이 건물 안을 수색하던 중 불길이 급격히 확산됐고, 건물이 붕괴되면서 탈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화재 등 현장에 투입됐다가 유명을 달리하는 소방관들의 비극은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제주도 감귤 창고에서 화재에서 5년 차 소방관이 순직했고, 같은 해 3월에는 전북 김제 주택 화재현장에서 소방관 1명이 세상을 떠났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 간 위험직무에 투입됐다가 순직한 소방관들은 40명으로 집계됐다. 2011년부터 2022년 1월까지로 하면 55명이다. 매년 4~5명의 소방관이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반복되는 비극으로 소방관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여권에서는 소방관의 위험 수당과 화재진화 수당 인상을 약속하기도 했다.
[문경=뉴시스] 이무열 기자 = 지난 2일 경북 문경소방서에 마련된 고(故) 김수광(27) 소방장과 박수훈(35) 소방교의 분향소에서 소방관들이 추모하고 있다. 2024.02.02. lmy@newsis.com

[문경=뉴시스] 이무열 기자 = 지난 2일 경북 문경소방서에 마련된 고(故) 김수광(27) 소방장과 박수훈(35) 소방교의 분향소에서 소방관들이 추모하고 있다. 2024.02.02. [email protected]


하지만 소방 내부에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방노조 관계자는 "위험·화재수당을 인상해준다고 하는데, 수당을 올려준다고 이런 사고가 없겠느냐"며 "돈이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인 시스템을 손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될 때마다 나오는 지적은 인력부족 문제다. 전국 소방공무원 수는 최근 5년간 약 2만명이 충원돼 총 6만7000명에 달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소방 관계자 A씨는 "2만명이 충원됐다고 하지만, 소방관은 3교대 근무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6500명이 충원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인력난은 여전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과거에 비해 재난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규모가 커진 것도 인력 부족의 원인"이라고 했다.

소방공무원의 신분도 문제로 지적됐다. 소방공무원은 지난 2020년 국가직으로 전환됐다. 지방직과 국가직으로 이원화 돼 있다 보니 지자체 여건에 따라 소방관 처우가 다르고, 세월호 사건 같은 대형 재난이 터졌을 때 지휘체계 문제 등이 있어 국가직으로 일원화한 것이다.

하지 '무늬만 국가직'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지자체에서 예산 책정이나 인사권을 쥐고 있어, 사실상 지방직 때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소방노조 관계자는 "말은 국가직이지만 아직도 시도에 소속돼 있어 모든 예산을 시도에서 받아 쓴다"며 "예산이 열악한 지방에서 소방공무원에게 얼마를 투입하겠느냐"고 비판했다.

소방안전교부세 문제도 소방관들이 불안함을 느끼는 대목이다. 소방안전교부세는 소방의 부족한 예산을 보충하기 위해 지난 2015년 도입됐다.

소방안전교부세는 행정안전부가 각 시도에 교부하는데, 도입 당시 특례조항을 마련해 사업비의 75% 이상은 소방장비 확충 등 소방 분야에 사용하도록 규정했다. 이 조항으로 소방관들은 안전장비 등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었다. 이 조항은 지난해 12월 말 효력이 사라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특례조항이 사라지는 데 대해 소방에서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1년 더 연장됐다.

소방 관계자는 "내년에 특례조항이 연장이 될 수 있을지 심히 우려스럽다"며 "소방장비 확충을 위한 특례조항이 연장되지 않으면 소방 장비 지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결국 안전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문경 화재현장 사고에 대해서는 인력이나 예산, 장비가 문제가 아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장지휘관이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해 소방관들이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가 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한 소방노조 관계자는 "현장 지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방관의 안전"이라며 "이번 경우처럼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 건물의 경우엔 건물 내부 진입에 신중했어야 한다"고 했다.

동시에 실전훈련 같은 소방관들이 교육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소방 관계자는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변경됐지만 실질적으로는 바뀐 게 없다. 교육훈련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전국에 지방소방학교가 8개 가량 있는데, 지자체마다 교육 내용이 다르다보니 국가 차원의 일괄적인 교육이 힘들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소방관들을 정기적으로 교육훈련에 투입시키려고 해도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현장 대응 인원이 부족해지는 문제도 있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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