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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서울 쪽방촌 사고…건물주는 '수리보다 수익'

등록 2024.03.23 15:00:10수정 2024.03.23 15:4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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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1990년대 말 외환 위기 이후 형성

서울 시내 쪽방 건물 283개동, 방 3481개

월세 20만~30만원…방 안 취사로 화재 위험

지난 2021년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한 건물에서 보이는 쪽방촌 모습. 뉴시스DB.

지난 2021년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한 건물에서 보이는 쪽방촌 모습. 뉴시스DB.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서울 시내 대표적인 빈곤층 주거 지역인 쪽방촌에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쪽방촌 건물주들이 시설 개선 없이 월세 수익만 추구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 사회에서 가장 좁고 열악한 거처인 쪽방촌이 사고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이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중구 후암로 쪽방촌에 있는 한 5층 건물의 3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처음 불이 시작된 방에 살던 50대 남성 A씨가 숨지고 같은 층에 살던 70대 남성이 얼굴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이 건물에 살던 다른 3명은 대피했다.

지하층 주민을 제외한 3층과 4층, 5층에 사는 주민 15명은 근처 다른 쪽방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소방 당국은 이동식 가스버너가 방 안에서 작동되는 상태에서 주변에 불이 붙어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쪽방촌 화재는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1월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불리는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불이 나 주민 500여명이 대피했으며 2022년 크리스마스에는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화재로 60대 주민이 다쳤다. 2018년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가스버너로 라면을 끓이려다 난 불에 60대 주민이 숨졌고, 2007년에는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쪽방촌에서 불이 나 50대 남성 1명이 사망하고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쪽방이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다. 경제 위기로 노숙인이 급격하게 늘면서 이들이 여름에는 거리 생활을 하다가 날이 추워지면 쪽방으로 가 밤을 보냈다. 돈의동, 창신동, 남대문로5가, 동자동, 영등포역에 쪽방촌이 형성됐다. 이들 지역은 주로 역(기차역, 전철역), 인력시장, 인력소개소, 재래시장 등과 인접해 있으며 노숙 이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뉴시스]동자동 쪽방촌 지도. 2024.03.22. (사진=박소연의 '이동하면서 정주하기의 실천과 공간-서울시 동자동 쪽방촌의 조선족' 논문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동자동 쪽방촌 지도. 2024.03.22. (사진=박소연의 '이동하면서 정주하기의 실천과 공간-서울시 동자동 쪽방촌의 조선족' 논문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2022년 말 기준 서울 시내 쪽방 건물은 283개동이고 쪽방 개수는 3481개(건물당 12.3개 쪽방)다. 이 중 공실(1086개)을 감안하면 쪽방 입주율은 68.8%다. 건물당 쪽방 개수는 남대문 쪽방 지역(26.7개)과 서울역 쪽방 지역(19.1개)이 많다. 이 지역은 건물당 평균 거주인 수도 많다.

서울역 인근인 용산구 동자동은 국내 최대 규모 쪽방촌이다. 성인 남성이 누워 발을 뻗을 수 있는 1~2평 남짓한 방들이 30년 이상 노후화된 건물 70여개에 조밀하게 모여 있다. 이곳에 1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거대한 빌딩 사이에 위치한 동자동 쪽방촌은 목돈이 없는 빈곤층이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가장 값싼 주거 공간이다.

쪽방촌에는 뚜렷한 기술 없는 단순 일용직, 직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하층 서비스직, 가정이 해체된 단신 생활자, 질병이나 장애, 경제 파탄, 생활 곤란 등으로 노숙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주로 살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쪽방 주민 수는 2010년까지 6000명을 웃돌다가 이후 소폭 감소했고 2014~2016년에는 다시 6000명을 넘어섰다. 2017년 이후 감소세를 이어가며 2022년에는 4775명으로 줄었다.

쪽방촌이 명맥을 이어가는 가장 큰 요인은 다른 주거 방식에 비해 저렴한 비용이다. 쪽방 월세는 20만~30만원이 절반 이상이다. 10만~20만원 수준인 쪽방이 나머지 40%를 차지하고 있다. 보증금은 아예 없는 경우가 90%를 넘는다.
[서울=뉴시스]서울 지역별 쪽방 개수 및 거주 인원. 2024.03.22. (도표=진미윤·김경미의 '쪽방의 개념 재정의와 실증적 탐색' 논문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서울 지역별 쪽방 개수 및 거주 인원. 2024.03.22. (도표=진미윤·김경미의 '쪽방의 개념 재정의와 실증적 탐색' 논문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현재 한국 사회 흐름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쪽방촌은 존속할 가능성이 크다.

진미윤 LH 토지주택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김경미 LH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원은 '쪽방의 개념 재정의와 실증적 탐색' 논문에서 "기존 쪽방이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과 함께 했다면 고시원 등 지금의 쪽방형 거처는 늘어난 1인 가구(2022년 780만명), 늦추거나 미뤄진 결혼, 길어진 노후의 빈 손, 갈라선 가족이 더 많아진 오늘날의 사회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저출산·고령화와 사회 전반의 양극화가 장기화되면서 더욱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쪽방촌 존속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쪽방 내부가 열악해 사고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방과 방 사이에 목재 합판이나 얇은 시멘트로 벽을 만들어 공간을 나눈 탓에 방음은 거의 되지 않는다. 각 방에는 취사시설과 화장실, 세면실, 목욕실이 없다. 건물에 하나씩 또는 한 층에 하나씩을 공유하고 있다.

장판과 벽지를 교체할 시기가 지나 변색된 부분이 많다. 대다수 방 안에는 창문이 없어 환기가 되지 않는다. 가구를 따로 두기 어려워 방바닥에는 전기장판, 요, 이불, 휴대용 가스버너, 소형 냉장고, 주방 식기 등이 널려 있다. 휴대용 가스버너와 전기장판을 방 안에서 사용하고 있어 화재 위험이 크다.

방을 쪼개는 과정에서 쓴 칸막이가 대부분은 가연성 재료로 제작됐고 출입문도 목재로 된 경우가 많아 불이 번지기 쉽다. 또 창문이 없어 연기가 배출될 곳이 없으므로 짧은 시간에 연기와 유독가스로 인한 피해를 입기 쉽다.

이처럼 상황이 열악하지만 쪽방촌 건물주들은 시설을 개선할 의지가 부족하다. 진 위원과 김 연구원은 "건물주(혹은 임대인)는 비용이 드는 환경 개선이나 생활 필수 시설은 제대로 공급하지 않고 방을 여러 개 더 만들어 수익만 극대화하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쪽방촌 건물주들에게 쪽방은 월세 수입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창구다.

진 위원과 김 연구원은 "쪽방형 거처의 보증금은 차치하고 월세만 하더라도 한 달에 총 520억원, 1년에는 총 6240억원에 달한다"며 "기존 쪽방의 경우에도 건물주가 얻는 월세 수입은 연간 126억여원으로 추산된다. 일반 주택인 다세대, 다가구, 점포겸용 주택인 근생빌라에 성행하는 불법 쪼개기 원룸까지 감안한다면 눈 먼 월세 수익의 규모는 상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뉴시스]쪽방 주민 수. 2024.03.22. (도표=진미윤·김경미의 '쪽방의 개념 재정의와 실증적 탐색' 논문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쪽방 주민 수. 2024.03.22. (도표=진미윤·김경미의 '쪽방의 개념 재정의와 실증적 탐색' 논문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이처럼 빈곤층의 생명을 담보로 건물주들이 돈을 버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지만 당장 쪽방촌을 재개발하거나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국토교통부는 동자동 일대 약 4만7000㎡ 부지를 재개발해 2030년까지 총 2410가구 규모 주택지구를 조성하겠다고 2021년 발표했지만 건물주들의 반발 속에 3년간 사업이 지지부진하다.

전문가들은 쪽방촌을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입주민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진 위원과 김 연구원은 "법과 제도를 제개정해 관련 규정을 만들고 이를 위반하거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 단속을 강화하는 등 근절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런 공식화(혹은 합법화)의 과정은 기대만큼 효과적이지는 않다"며, "새로운 기준이 임대료 인상으로 전가되거나 건물주가 해당 건물을 다른 용도로 변경하는 등 오히려 취약한 임차인을 더 취약한 곳으로 내몰 수 있다"고 짚었다.

박소연(서울대 지리학과 석사과정)도 '이동하면서 정주하기의 실천과 공간-서울시 동자동 쪽방촌의 조선족' 논문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나 재개발 계획 등 쪽방촌 공간에 개입하는 정책들이 특정한 형태의 이동이나 정착을 강요하거나 제거하는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일정 수준 이상 돈을 벌면 수급의 대상이 되지 못해 쪽방촌 주민들이 노동을 하기 어렵게 한다"며 "공공 재개발 계획은 주민들을 고려한 정책이라고 하지만 명의 도용 등 외적인 요인들로 인한 이동을 겪으며 쪽방으로 온 이들을 위한 안전망이 부족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당장 쪽방촌 주민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화재 대책부터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고행현(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학원)은 '도시의 소형 밀집 주거공간의 화재위험도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소형 수동식 소화기 1개 이상을 세대별, 층별로 설치해야 한다"며 "쪽방의 경우 대부분 실이 하나이므로 단독경보형 감지기는 각 실에 하나씩 설치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쪽방 주민에게 화재 발생 사실을 조속히 알리는 것 역시 필요하다. 고행현은 "쪽방촌의 경우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많으므로 피난 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조기 감지, 경종 또는 사이렌 등과 함께 실내·외에 방송 설비를 설치해 그 지역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대형 스피커와 확성기 등을 통한 육성 방송도 함께 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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