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일본으로 간 휴 잭맨, 너무 우려먹는다…영화 ‘더 울버린’
휴 잭맨은 2000년 ‘엑스맨’을 시작으로 ‘엑스맨2’(2003), ‘엑스맨: 최후의 전쟁’(2006),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에 출연해왔다. 이 시리즈의 프리퀄인 ‘엑스맨: 퍼스트클래스’(2011)에 카메오 출연한데 이어 원년 감독 브라이언 싱어가 컴백, 내년 개봉하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도 등장할 예정이다. ‘더 울버린’은 시기상 ‘엑스맨: 최후의 전쟁’의 다음 편으로, 1982년 발행된 한정판 코믹북 ‘울버린’ 시리즈 중 ‘일본 사가’에 바탕을 두고 마블 코믹스의 일본 뮤턴트(돌연변이) 캐릭터인 ‘실버 사무라이’와 ‘바이퍼(독사)’를 때려 넣었다. 이 영화에서 실버 사무라이는 돌연변이가 아니라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은빛 무사복장 로봇이다. 왜 한국계 배우 윌 윤 리가 실버 사무라이로 잘못 알려졌는지 모르겠다.
시리즈가 무한 확장되다보니 편마다 뒤죽박죽, 오류와 모순이 다수 존재한다. 마블 코믹스의 원작 만화부터 꿰고 있는 ‘광팬’이어서 이번 편도 빼놓을 수 없다면 모를까, 혹은 여전히 일본문화의 신비감에 빠져 보고픈 서구 관객이라면 모를까, 미흡한 완성도를 감안하면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이것저것 흥미로운 요소들을 조합하긴 했는데 제대로 융화되는 것이 없다. ‘엑스맨’ 시리즈 영화 중 최초로 3D로 컨버팅했지만 3D영화다운 맛도 별로 없다.
무대만 일본으로 옮겼을 뿐, 슈퍼히어로의 정체성 고민이라는 닳고 닳은 소재에 달리는 열차(여기서는 초고속열차 신칸센) 위에서의 싸움 등 새로울 것 없는 액션들과 뻔한 스토리에 러닝타임 128분이 참 길게도 느껴진다. 인물들의 실제 정체, 그들 간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들이 유일하게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 되나 캐릭터에 일관성이나 줏대도 없고 이해하기도 좀 힘들다.
1832년 태어나 남북전쟁, 1·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등에 참전해온 울버린이 1945년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지던 시점, 포로로 잡혀있다가 할복 자살하려던 젊은 일본인 장교 야시다(야마무라 켄)를 구해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가 치유능력으로 ‘영생불사’ 불멸의 삶을 사는 울버린은 이후 전편에서 겪은 일들로 인한 트라우마, 자신이 죽인 애인 진 그레이(팜케 얀센)의 환영과 악몽, 외로움에 시달리며 산 속에서 고행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죽음을 앞둔 늙은 야시다(야마노우치 할)의 부름을 받고 일본으로 향한다.
일본어로는 ‘쿠주리’로 불린다. 악몽에 나오는 긴 발톱과 이빨을 가진 야수를 뜻한다고 한다. 부상을 당한 그를 치료해주는 것도 수의학과 학생인데 대동물이 전공이라고…. 게다가 이번 편에서 그의 주적 가운데 하나인 닥터 그린(스베트라나 코드첸코바)은 알고보니 독사를 닮아 긴 혀로 독을 내뿜고 허물도 벗는 돌연변이인 ‘바이퍼’다.
야시다는 울버린의 본명 로건과 비슷한 ‘로닌’(낭인)으로 울버린을 칭하기도 하는데, 주인없는 사무라이라는 의미의 이 단어가 영화에 등장하는 기모노, 검도, 일본 전통가옥과 다다미, 일본 음식과 각종 문화들처럼 볼거리 이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여간 이런 설정들은 자신의 능력을 잃게 될 순간이 와서야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과 그리 연결되지는 않는다.
어찌저찌 야시다 가문과 엮인 울버린은 야시다의 손녀인 마리코(오카모토 타오)를 보호하게 되는데, 마리코의 남자관계도 다소 복잡하다. 어려서부터 좋아 지내던 하라다(윌 윤 리)도 있고, 법무장관 노부로(브라이언 티)와는 정략적으로 약혼한 사이다. 그런데 갑자기 울버린과 정분이 나 하룻밤을 보낸다. 둘 사이의 로맨스는 구색 맞추기처럼 뜬금없을 뿐더러 인종차를 넘어 두 배우의 17세 연령차도 참 언밸런스다. 어찌됐든 너무도 다른 배경을 지닌 두 사람의 이런 풋감정이 지속될 수 없는 것은 익히 예상할 수 있고, 마지막에 울버린이 마리코를 “공주님”이라고 부르며 공주와 기자의 한시적 로맨스를 그린 ‘로마의 휴일’ 흉내를 냈음을 드러낸다.
일본이 주요 배경인 만큼 일본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189㎝인 잭맨의 키를 고려했는지 주요 일본 여배우들은 170㎝대 패션모델 출신들로 캐스팅했다. 오카모토 타오(28), 후쿠시마 리라는 하나같이 삐쩍 마른 큰 키에 일본적인 개성이 어린 얼굴들이다. 출연진에는 한국계도 섞여있다. 미국으로 이민한 한국인 부모를 둔 윌 윤 리(42),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일본 오키나와에서 태어난 브라이언 티(36) 등이다. 스태프로 참여한 대부분의 일본인이 알파벳이 아닌 한자 이름을 엔딩크레디트에 그대로 올린 것은 특기할 만하다.
한국에서는 15세이상 관람가로 25일 개봉한다. 미국에서 26일 개봉하는 것을 비롯해 7, 8월 내 세계에서 모두 상영을 시작한다. 일본에서만 유독 9월13일에 개봉한다. 일본문화의 매력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근친끼리의 배신, 탐욕 등 일본인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탓에 생길 안티 여론을 의식한 것은 아닐는지, 문득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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