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짚어본 강릉 펜션 참사…10명 사상 부른 '3개의 빈틈'
규정 허점, 안전불감증, 수능 이후 학습 공백
농어촌민박, 숙박시설인데 경보기 의무 아냐
숙박업소 운영자, 보일러 업계 안전불감증도
"해외는 80%가 일산회탄소 경보기 설치돼
보일러 설치 무자격업체 3~4만여 곳 추정
수능 후 사실상 방치…허술한 교육 시스템
"미국은 SAT 후 공백 때 프로그램 다양해"
"수능 시점 한 달 정도 늦추는 것도 방법"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강릉 펜션사고로 세상을 떠난 대성고등학교 학생들의 발인이 엄수된 지난 21일 오후 서울 은평구 대성고등학교에서 마지막 인사를 마친 운구차량이 장지로 출발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대형 참사 배경의 '단골' 격인 규정 허점과 현장 안전불감증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했고, 대학수학능력시험 후 학생들의 학습 공백에 대응하는 프로그램 미비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무심코 지나쳐 온 각종 '빈틈'이 아이들을 희생자로 만든 것이다.
◇안전규정에 경보기는 없어
이번 사고 원인으로는 일산화탄소 누출이 지목된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학생들이 쓰러친 채 발견된 지난 18일 현장에 출동한 구조대원이 간이 측정한 일산화탄소 농도는 155ppm이었다. 정상 농도(20ppm) 대비 7배 이상 높았다.
경찰은 지난 19일 브리핑에서 사망 학생 3명의 혈중 일산화탄소 농도가 치사량(40%)을 훌쩍 넘은 48%·56%·63%으로 판독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방 안이 일산화탄소로 가득 찼지만 펜션에는 경보기가 없었다. 다른 숙박업소와 달리 농어촌민박의 경우 경보기 의무설치 대상 시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농어촌정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농어촌민박은 소화기와 단독경보형감지기를 설치하면 소방안전 기준을 통과할 수 있다.
반면 같은 숙박시설인 호텔과 호스텔, 여관 등은 가스누출 경보기를 포함해 스프링클러, 누전경보기, 제연 설비, 피난유도등과 같은 소화·경보·피난·소화용수·소화활동설비를 시설 면적에 따라 갖춰야 한다. 이곳들은 공중위생관리법과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소방시설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1월 농어촌민박사업 시행지침을 개정하면서 소방, 위생 등 각종 안전관리 내용을 강화하면서도 개정안에 가스경보기 관련 내용은 포함하지 않았다. 농식품부는 이번 참변을 계기로 시행치침을 다시 개정해 설치를 의무화할 계획이다.
결국 숙박업소 중 농어촌민박이, 안전 규정 중 가스경보기 내용이 각각 법망에서 빗겨나가면서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원래 농어촌 사람들이 농사로만 살기 어려우니까 혜택을 주기 위해서 만든 게 농어촌민박법인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면서 "다른 부분은 완화시켜주더라도 안전에 대해서만큼은 국민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다른 기준과 동등한 대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농어촌민박은 소방차 출동거리가 멀어서 접근성도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박미소 수습기자 = 강릉 펜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대성고등학교 학생들의 발인이 엄수된 21일 오후 운구차량이 서울 연세세브란스 병원에서 나오고 있다. 2018.12.21. [email protected]
운영자들이 가스경보기 설치 필요성을 못 느끼는 안일한 인식도 문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가스보일러(도시가스·LPG)로 인한 사고는 최근 5년간(2013~2017년) 총 23건이 발생했다. 사상자는 총 49명인데, 이중 화재 부상자 1명을 제외한 48명(98%·사망 14명·부상 34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대부분의 가스보일러 사고가 일산화탄소로 인해 발생하는데도 '경보기를 설치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거나 한다고 해도 외면하는 것이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해외는 80% 정도 일산화탄소 경보기가 설치돼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경보기 설치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다"고 밝혔다.
보일러 업계에 무자격 업체가 만연하다는 점도 안전불감증 중 하나로 지목된다.
가스보일러는 누구나 대리점이나 온라인 등을 통해 구매할 수 있다. 다만 설치·시공은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가스시설시공업을 등록한 자(면허보유자)가 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경찰과 강릉시 등에 따르면 사고가 난 펜션의 가스보일러를 설치한 업체는 시에 가스시설시공업 등록을 한 업체가 아니다. 경찰은 사고 가스보일러 설치 당시 기사도 무자격자인지를 수사 중이다.
명확한 데이터는 없지만 보일러 업계는 설치 무자격업체가 전국에 3~4만여 곳 정도가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열관리시공협회에 따르면 설치자격이 등록된 업체는 총 1만1000여개다. 등록된 업체의 3배 이상이 무자격업체인 셈이다.
전길수 한국열관리시공협회 사업운영본부장은 "소비자들은 무자격자인지, 자격 갖춘 등록자인지 잘 모른다"면서 "등록된 업체보다 비용도 싸다. 대개 보일러 1대 설치하면 60만원 정도인데, 무자격자는 10여만원 정도 싸게 받으니까 소비자들은 싼 맛에 의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무자격업자가 시공을 진행하면 사고가 날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색출돼야 한다"면서 "협회에서도 공사현장 조사에 나서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강릉=뉴시스】김선웅 기자 = 강원 강릉시 가스중독 사고가 발생한 펜션에서 19일 국과수 관계자들이 현장감식을 진행하며 보일로 연통을 옮기고 있다. 2018.12.19. [email protected]
이번 사고의 경우 학생들이 다닌 서울 은평구 대성고 측과 교육부 등에 직접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학생들은 학교에 개인체험학습을 떠난다고 신고를 했고 정상적 절차를 거친 승인에 부모 동의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큰 틀에서 볼 때 수능 이후 학생들이 급격히 흐트러질 수밖에 없는 국내 교육 시스템은 이번 사고에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에도 이름만 '개인체험학습'일 뿐 사실상 그냥 여행이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수능 시점을 조정하거나, 수능 이후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식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교육계 내에서는 예전부터 수능을 왜 11월에 봐서 한 달 동안 관리가 안 되는 상황을 만드냐는 불만이 있었다"며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수능을 한 달 정도 늦추는 게 좋은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SAT를 보는 미국의 경우도 한 달 정도 공백이 생기는데, 학교 교과 차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면서 "수능 후부터 방학 전까지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짚었다.
'수능 창시자'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는 "강릉 펜션에 간 학생들은 분명히 친구들끼리 가길 원했을 것이고, 아이들끼리 돈 모아서 놀러간 자체를 뭐라고 할 수는 없다"며 "학생들이 뭘 필요로 하는지 조사 후 맞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수능 이후 학생들이 입시 준비 때문에 하지 못한 것들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기회에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면서 "자유학기제를 조금 더 발전시켜서 고3 학생들에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편 사망한 세 학생의 발인은 지난 21일 엄수됐다.
원주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중인 2명은 의식은 회복하지 못하고 있지만 자가호흡을 정상적으로 하는 등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릉 아산병원에 입원 중인 학생 5명 중 1명은 빠르게 상태가 호전돼 21일 오후 퇴원했다. 이중 2명도 의식을 찾아 일반병실로 옮겨져 이르면 다음주 중 병원을 나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머지 2명도 아직 중환자실에 있긴 하지만 건강이 회복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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