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2차 정상회담 앞두고 실무협상 빠르게 진전시킬 가능성
파격적인 비핵화 의사 밝혔다는 김정은 위원장
실무 대표 통전부 인사로 교체했다는 관측 대두
이 같은 관측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장관이 22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행한 화상 연설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협상 파트너를 처음 만날 수 있었다"고 말함으로써 시작됐다.
또 지난 17일 미국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할 당시 박철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 부부장(추정)과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김혁철 전 주스페인 대사 등을 대동한 것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최강일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도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미에 동행했으나 그는 트럼프 대통령 면담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지난해 5월 미국을 처음 방문할 당시 통역만을 대동한 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었다.
한편 김영철 부위원장의 미국 방문 이전까지는 비건 특별대표의 협상파트너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지목돼 왔다. 지난해 6월의 1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실무협상에는 성 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와 최선희 부상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비건 특별대표는 지난해 8월 임명된 이후 10월에 폼페이오 장관을 수행해 평양을 방문했으나 당시 최선희 부상이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하기 위해 평양을 비우면서 상견례를 하지 못했다. 이후 비건 대표는 오스트리아 등지를 여행하면서 최선희 부상과 만날 것을 기대했으나 북측이 호응하지 않아 무산됐었다.
그러나 비건 특별대표는 김영철 부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한 직후인 19일 스웨덴으로 가 22일까지 최선희 부상과 숙식을 함께 하면서 협상했다.
이에 따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밝힌 "협상 파트너를 처음 만날 수 있었다"는 발언이 최선희 부상을 뜻하는지 아니면 김영철을 수행한 박철, 김혁철, 김성혜 중 한 사람을 뜻하는지를 두고 혼선이 빚어지는 상황이다.
다만 김영철 부위원장은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된 이후로 북미 핵협상을 총괄해 왔으며 이에 따라 이번에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실무협상도 외무성이 아닌 통전부가 담당하는 것으로 정리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최근 미 월 스트리트 저널(WSJ)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2009년부터 북한 군부를 대표하는 김영철 전 정찰총국장과 오래 접촉해 왔다고 보도한 바 있다. 지난해 6월의 북미정상회담도 정보기관 채널을 통해 북측의 정상회담 개최 의사를 확인한 뒤에 개최를 확정했었다는 것이다.
한편 북한이 실무협상 대표를 통전부 인사인 박철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교체한 것이 사실이라면 시사하는 의미가 적지 않아 보인다.
최초의 북미 핵협정인 1994년 북미 제네바협정 협상의 북측 대표는 강석주 외무성 부상이었으며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진행된 6자회담의 대표는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었다. 2012년의 2.29 합의도 외무성이 전담했었다. 지난해 1차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실무회담 대표 역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었다. 북한에서 핵협상 창구는 외무성이 전담해온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통일전선부가 핵협상 전면에 나서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 같은 변화가 생긴 배경은 몇가지로 추정해볼 수 있다.
우선 외무성이 전담해온 핵협상에서 북한은 매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해 왔다. 1994년 제네바합의는 물론 6자회담 협상에서도 북한의 주장이 거의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 협정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실패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북한이 합의 내용을 지킬 의사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합의문을 작성하면서 북측은 교묘하게 이중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들을 포함시켰다. 이로 인해 북미 간에는 합의 직후부터 신경전을 벌였으며 결국 약속을 서로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면서 번번이 합의가 무산됐었다. 이런 교묘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협상의 전면에 나선 것이 외무성이었다. 특히 외무성 출신 북한 협상대표는 협상 의제를 극단적으로 세분화하는 방식으로 최종 합의에 이르는 것을 지연시키는 이른바 '살라미전술'로 악명이 높았다.
만일 이번에 북한 실무협상 대표가 김영철이 직접 관장하는 통전부 인사(박철 부부장)로 바뀐 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이 과거처럼 세세한 부분을 챙기면서 협상을 지연시키기보다 중요 이슈에 대한 합의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방식으로 협상 전략을 바꾸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사실이라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상당한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실무협상 대표를 교체한 배경으로 추정되는 것이 외무성과 통전부 사이의 알력이다. 북한에서 외무성의 위세는 통전부를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김영철 통전부장이 미국과 핵협상을 총괄하면서 외무성 사람들이 통전부의 통제와 간섭을 받게된 셈이다. 이에 따라 양 부서 사람들 사이에 알력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통전부를 담당하는 김영철은 북한 군부와 정보조직을 대표하는 인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오른팔이다. 한편 외무성을 담당하는 최고 책임자는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학창 시절을 보낼 당시 주스위스대사였던 이수용 당 부위원장 겸 국제부장으로 왼팔이다. 두 사람이 누가 우위에 서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선희 외무성 부상 역시 최영림 전 총리의 딸로서 자존심이 강해 쉽게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따라서 김영철이 외무성 실세인 최선희 부상을 마음대로 부리기가 껄끄러울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김영철 부위원장의 주도로 기존의 실무협상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했다면 최선희 부상과 조율하기가 껄끄러울 가능성이 큰 것이다.
1차 정상회담을 앞둔 성 김-최선희 실무협상은 사실상 아무런 성과없이 끝났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성급하게 회담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1차 회담 합의 내용이 북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들로만 채워졌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2차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또 북한 김정은 위원장도 연초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과감한 비핵화 조치를 취할 의사를 밝혔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양보를 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과감한 조치를 약속한 김정은 위원장의 입장을 2차 정상회담에서 실현하려면 실무협상 단계에서 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실무협상 대표를 바꾼 배경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실무협상 대표를 통전부 인사로 교체한 것이 사실이라면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실무협상은 이전과 달리 빠르게 진전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또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상당한 성과가 나올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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