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산불][르포]화마 휩쓴 속초·고성 잿더미만 남은 전쟁터였다

【속초=뉴시스】김경목 기자 = 5일 오후 산불 피해가 큰 강원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의 무너진 가옥이 폭격을 맞은 듯 하다. 2019.04.05. photo31@newsis.com
마을 초입에 위치한 철골 재질로 지어진 주류창고는 산불의 화염에 엿가락처럼 휘어져 폭삭 주저앉아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주류창고 맞은편 농장의 주택과 창고 등도 숟가락 한 개, 양말 한 켤레를 건질 수 없을 정도록 전부 탔다.
마을회관 뒤 산자락에 옹기종기 자리잡은 가옥 12채는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록 폭삭 내려앉았다.
그 모습은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듯 내려앉고 깨지고 타는 등 처참했다.
2010년 연평도가 북한군 포격에 잿더미가 됐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가옥 뒷편 야산은 화마가 쓰나미처럼 휩쓸면서 본래의 황토색 흙 빛깔을 잃어버렸다.

【속초=뉴시스】김경목 기자 = 5일 오후 산불 피해가 큰 강원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의 주민이 볍씨에 붙은 불을 끄려고 물을 붓고 있다. 2019.04.05. photo31@newsis.com
홀로 지내시던 어머니 집을 찾은 60대 아들은 볍씨에 붙은 불을 끄느라 쉴 새 없이 양동이에 물을 담아 부었다.
아들은 운이 좋게도 축사 출입문만 그을리고 불이 번지지 않아 암소 1마리와 송아지 1마리를 잃지 않았다.
아들은 소 2마리와 볍씨라도 건졌다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70대 할머니는 "자다가 몸만 빠져나왔어. 당장 오늘 약도 먹어야 하는데 빨리 피하라고 해서 혈압약을 못 챙기고 나왔다"며 "조카 사위가 처방전을 받아서 약을 갖고 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사람이 안 다쳤으면 됐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속초=뉴시스】김경목 기자 = 5일 오후 산불 피해가 큰 강원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의 한 농장이 밤새 할퀴고 간 화마에 온통 잿더미다. 2019.04.05. photo31@newsis.com
농장이 잿더미가 된 농장주 김택수(70)씨도 "불이 났다고 빨리 나오라고 해서 약도 못 챙기고 그냥 나왔다"며 "칫솔조차도 없다"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김씨는 "정부가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보상을 빨리 해줘야 먹고 살 것이 아닌가"라며 정부 지원이 조속히 이뤄지길 기대했다.
장천마을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 동쪽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영랑호 일대도 밤새 폭격을 맞은 듯 온통 잿더미였다.
신세계 영랑호리조트 퍼블릭골프장은 9홀 전부의 잔디가 새까맣게 탔고 리조트 내 식당 등 건축물 2동은 불똥이 날라와 불이 붙어 내부 시설이 전부 소실됐다.
콘도 7동과 창고 3동도 모두 탔다.

【속초=뉴시스】김경목 기자 = 5일 오후 산불 피해가 큰 강원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의 한 주류창고가 폭격이라도 맞은 듯 온통 잿더미다. 2019.04.05. photo31@newsis.com
고성·속초 대형산불은 전날 오후 7시17분께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성콘도 인근 도로 전신주 변압기 개폐기에서 발생한 스파크가 풀숲에 옮겨붙으면서 태풍급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번졌다.
발화 지점에서 영랑호리조트까지는 불과 9.1㎞.
순간최대풍속 초속 30m급의 매우 강한 바람의 힘이 불똥을 하늘로 올려 바람 방향으로 날라가다 떨어지면서 불을 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마치 게릴라전을 방불케했다.
속초와 고성은 밤새 불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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