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폐지 난감해진 교육당국, 공론화로 불 지필까
위법성 전면 내세웠지만…국정과제 동력 약화 불가피
시행령 개정 방법은 역풍 위험, 안정성 담보도 어려워
국가교육회의·국회 등 통한 사회적 합의 필요성 '솔솔'
【세종=뉴시스】강종민 기자 =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26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경기교육청과 전북교육청이 경기 안산동산고와 전북 상산고에 대한 자율형사립고 지정취소 결정에 대한 동의 여부를 발표하며 얼굴을 만지고 있다. 교육부가 상산고를 구제하는 결과를 낳으면서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라는 국정과제가 힘을 잃게 됐다. 일각에서는 사회적 합의를 거친 고교체제 개편 요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2019.07.26. [email protected]
재량권을 넘어선 평가였다며 책임을 교육청으로 돌렸지만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의 동력이 떨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혼란과 갈등을 줄이기 위해 자사고 뿐만 아니라 고교체제 전반을 놓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교육부는 이날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전북교육청의 상산고 자사고 지정취소 동의신청에 부동의한다고 밝혔다.
상산고의 자사고 지정취소 여부는 자사고 폐지의 척도로 관심을 모았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의지를 표명한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타 시도보다 기준점을 10점 높여 80점으로 평가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상산고는 79.61점을 획득해 0.39점 차이로 탈락했다.
타 시도교육청이었으면 자사고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점수를 획득한 상산고가 탈락하자 학교와 학부모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가세하며 상산고 지키기에 나섰다. 반면 진보성향의 교육시민단체들은 국정과제임을 강조하며 맞불을 놓으면서 갈등과 혼란은 커져갔다.
교육부가 학교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세운 카드는 '위법성' 여부다.
교육부는 논란이 됐던 기준점수 '80점'은 교육감의 권한이라고 인정했지만 사회통합전형이 법적 근거가 없다며 재량권의 일탈·남용을 문제 삼은 것이다.
교육부가 결정의 당위성 확보와 혼란 최소화를 위해 법리적 판단을 들고 나왔지만 상산고 구제라는 결과는 교육부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다. 일반고에 비해 등록금이 비싼 자사고가 경제력에 따른 교육격차를 만들고 우수학생을 선점해 일반고 황폐화를 유발한다는 이유에서다.
교육부의 이번 결정으로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가 후퇴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교육부는 상산고와 마찬가지로 반발이 컸던 경기 동산고에 대해서는 지정 취소에 동의했다. 학생 충원 미달 등의 사유로 학교가 자발적으로 일반고 전환을 신청했던 전북 군산중앙고에 대해서도 학교와 교육청의 의견을 존중했다.
다만 교육당국 스스로가 상산고의 일반고 전환에 제지를 가한 만큼 전면에 나서 자사고 폐지를 요구하거나 주장하기에는 한계가 따른다. 교육부는 상산고를 통해 절차적으로 정당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으면 구제된 선례를 남겼다. 당장 8개 자사고가 지정 취소된 상태인 서울에서도 교육부 동의 여부에 따라 자사고 지위를 유지할 학교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교육부의 부동의 결정에 자사고 폐지를 주장했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자사고 존치를 요구했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모두 전면적인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어렵게 됐다는 평가를 내놨다.
내년에는 올해 재지정 평가를 받지 않은 16개 자사고 외에 외고 30개교, 국제고 6개교 등 52개 학교의 지위 연장을 위한 평가가 진행된다. 이미 올해 자사고 24개교 중 절반이 넘는 13개교가 평가를 통해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게 됐고 평가에서 탈락해도 교육부에 의해 구제된 학교가 나오면서 내년 평가 역시 국정과제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올지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평가를 통한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 여의치 않음을 확인한 '자사고 폐지론자'들은 전선을 법령 개정으로 옮길 가능성이 크다. 자사고의 설립 근거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1조의3에 있다. 시행령은 정부가 발의해 국무회의 의결을 거치면 개정할 수 있어 정부의 의지대로 바꿀 수 있다. 유아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국가관리회계프로그램 에듀파인을 유치원에 의무적용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다만 시행령 개정을 밀어붙일 경우 고교체제를 정부가 독단적으로 정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시행령이 정부가 권한을 가진 만큼 정권에 따라 자사고 유지·폐지가 반복될 수 있어 연속성이 없다는 단점도 있다.
결국 정권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중장기적 고교체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사회적 합의를 거쳐 시행령이 아닌 법적으로 고교체제를 정해 안정·지속성을 확보하자는 논리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지난 17일 기자회견에서 교육부가 의지가 없다면 국가교육회의 공론화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이루자고 제안했다.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전경원 소장은 "내년엔 더 많은 학교에 대한 평가가 있어 관심과 갈등이 더 커질 것"이라며 "공론화 과정을 통해 내년 이후에 고교체제 문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총 조성철 대변인은 "국가교육회의에서 설문조사 등을 통해 진행하는 공론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수렴을 하고 법률로 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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