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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넘어북한] '한중미' 사이에서 은근히 신난 북한?

등록 2020.10.30 21: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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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간 전시작전권, 종전선언 문제 언제든 불거질 가능성

중국은 한국전쟁 항미원조(抗米援朝) 내세워 미국 대항

북한은 친미 한국 비난하고, 중국엔 맞장구치며 입지 다져

한국은 미중 갈등 심화에 겸손, 신중, 기민함 필요

【서울=뉴시스】강영진 박수성 기자 = 미중 간 패권 경쟁 속에서 최근 북한은 중국과 밀월 분위기를 만들고, 한국은 미국과 불협화음을 보였습니다. 중국은 지난 23일 중국인민지원군의 한국전쟁 참전 70주년 기념행사에서 항미원조(抗米援朝)를 강조하며 미국에 대항하는 메시지를 담아 국제정세가 더욱 미묘해지는듯합니다. 이번 <창넘어 북한>에서는 현 상황을 바라보는 북한의 생각과 한국의 대응을 고민해 봤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뉴시스 북한 에디터 강영진입니다.

오늘은 우리나라를 둘러싼 미묘한 국제정세를 두루 살펴보겠습니다. 이색적으로 칼럼 분위기로 꾸며볼까 합니다. 생경한 주장에 거슬리는 대목이 있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지난 6월 이수혁 주미대사가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국가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국가’라고 한 발언에 대해 미 국무부가 “한국은 수십년 전 권위주의를 버리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을 때 어느 편에 설지 이미 선택했다”고 논평한 일을 기억하시는 지요?

미국 정부가 이대사의 발언을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 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공식화한 것으로 받아들여 내놓은 논평입니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게 미국과 중국 중 한쪽을 택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었습니다.

공식 입장은 물론 표면적일 뿐입니다. 미국이라고 다른 나라들이 중국 편에 서는 건 물론이요, 미국 편에 서지 않는 것조차 좋아할 리가 없다는 건 세 살 먹은 아이도 알 만한 일입니다. 하물며 70년 동맹인 한국이 공개적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겠다고 나서는 듯한 분위기를 미국이 묵과할 순 없었겠지요.

이외에도 한미 사이에 신경 쓰이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북한 핵문제 해결에 앞서 종전선언부터 해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주장이나 내년까지 전시작전권을 무조건 넘겨야 한다고 밀어붙인 일들입니다. 많이 거론되는 방위비 문제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요구가 터무니없다는 걸 미국 정부도 알기 때문에 큰 갈등 요인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여튼 이런저런 일로 심기가 상했는지 미 정부의 태도가 냉랭해졌습니다. 얼마 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SCM) 때 예정됐던 한미 국방장관의 공동기자회견을 미국이 취소한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SCM 뒤의 공동기자회견은 미국이 한국에 대한 안보공약을 재확인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행사입니다. 물론 SCM 뒤 발표된 공동성명엔 안보공약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자회견에서 미국 국방장관의 육성으로 안보공약을 강조하는 것과는 분위기가 한결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이 미국으로 날아갔습니다. 이대사의 발언이나 전작권, 종전선언을 밀어 부치는 청와대를 두고 미국이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이 뭐냐고 따지듯 묻지나 않았을까 궁금합니다. 서실장이 미국 현지에서 종전선언 문제에 대해 한미간 생각이 다르지 않다고 강조한 건 미국의 불만을 다독이는 제스처였을 겁니다.

한미 사이의 갈등은 서실장의 행보로 일단 봉합된 듯합니다. 코앞에 닥친 대통령 선거 때문에 미국 정부도 문제를 확대할 여력이 없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앞으로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습니다. 종전선언이든 전작권이든 우리 정부로서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한미간에 미묘한 기류를 눈치채고 신바람을 냈습니다. 어제 조선중앙통신이 서훈 실장의 미국 행보에 대해 ‘상전의 비위를 맞추느라 별의별 비굴한 행동을 다 부렸다’고 비난하고 나섰지요. 한 건 잡았다는 식으로 특유의 독설을 내뱉었습니다. 오랜만에 문대통령까지도 싸잡아서 비난했습니다.

북한은 자기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려고 독설을 내뱉는 버릇이 있습니다. 우리 정부에게 미국 말을 듣지 말라고 못을 박고 싶었겠지요. 그렇지만 저들의 독설에는 도저히 적응이 안됩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저급한 언어생활 수준이 개선되질 않으니 말이죠. 몇 십년 동안 사회가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한 때문일까요? 얘기가 잠시 샛길로 빠졌습니다.

최근 한반도 정세에서 주목되는 현상 중 한가지가 바로 한국전쟁에 관한 중국 정부의 입장입니다.

얼마 전 BTS의 밴플리트상 수상 소감을 두고 중국 네티즌 일부가 시비를 걸었던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한국과 미국의 한국전 희생자들을 기억하자’고 한 말이 한국전에서 죽은 수십만 중국 인민군들을 모욕했다는 억지 주장이었습니다. 당시는 뜬금없이 왜 억지를 쓰는지 납득이 안됐지요. 곧이어 한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출신 아이돌 가수들이 일제히 한국전에서 숨진 중국 영웅들을 기억하자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BTS처럼 수상소감을 밝힐 처지도 아닌 저들이 굳이 왜 끼어드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의 한국전 참전 70주년 기념식에서 연설하면서 이른바 항미원조(抗米援朝)를 강조하는 걸 보고 모든 것이 선명해졌습니다. 중국 정부가 중국 네티즌과 중국계 아이돌의 행동을 뒤에서 조종하는 건 아닌지 싶네요.

중국은 요즘 전에 없이 항미원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한국전쟁에서 미 제국주의에 승리를 거뒀다’는 주장입니다. 앞으로 미국과 정면 승부를 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행동입니다. 중국 국민들을 향해 미국과 싸우더라도 70년 전처럼 이길 수 있으니 미국에 당당히 맞서라고 독전하는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북한이 그런 중국에 맞장구를 치고 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층 전부가 중국인민군 무덤을 찾아 참배하고 김위원장과 시주석이 서로에 대해 한껏 애정을 표시하는 '연애편지'도 주고 받았습니다.

중국은 미국과 맞서겠다는 의지 때문이라지만 북한은 왜 그럴까요. 한국전쟁 이래 북중관계가 언제나 좋았던 건 아니었는데 말이죠.

지금으로선 중국과 미국 사이의 대립이 심해지면 북한의 입지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유엔제재가 유지되는 한 북한이 의지할 나라는 사실상 중국밖에 없으니까요. 한국전쟁 때 수십만명이 목숨을 버려 구해준 중국이니까 지금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북한을 도와줘야 한다고 분위기를 잡는 겁니다. 자력갱생을 외치지만 중국의 도움이 끊어지면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 형편이니 이해가 되는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북한과 입장이 다릅니다. 미국은 우리에게 안보나 경제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나라입니다.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중국은 경제면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반면에 안보면에선 잠재적으로 적국입니다. 공산당 1당 독재에 갈수록 시진핑 1인독재를 강화하고 있는 중국이 민주국가로 바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중국처럼 공산국가가 될 가능성은 더욱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현재로선 미국도 중국도 놓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중국과 미국은 갈수록 심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여기서 누가 잘하고 누가 잘못하는 지를 따지는 건 정말 부질없는 일입니다. 우린 결국 국익을 좇아서 처신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말이 쉽지 어떻게 국익을 좇아야 하는 건 지가 아리송합니다.

이럴 땐 말을 삼가고 정세를 관망하면서 신중하게 행동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수혁 대사처럼 오해를 살 수 있는 말은 입밖에 내지 않으면서 말이죠. 또 이럴 땐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가 미국과 중국의 싸움을 말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절대로 입밖에 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섣불리 굴다가 게도 구럭도 다 잃기 십상이니까요.

그렇더라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운명의 시간이 갈수록 빨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사라지진 않습니다. 말은 삼가면서도 정세를 기민하게 살피다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땐 과감히 결단을 내릴 준비를 해두는 게 필요합니다.

앞서 북중관계가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실제로 김정일이 사망하기 직전인 2000년대 후반 평양에서 열린 해외공관장회의에서 최진수 주중국 대사에게 ‘중국 사람들 믿는 것 아니야’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심지어 김정은에게 그런 유언을 남겼다는 말도 있습니다. 중국이 북한의 명줄을 쥐고 흔들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1992년 한중수교 때 북한은 중국에 처절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공산권 붕괴로 북한이 큰 위기에 빠져 있는데 항미원조를 외치던 중국이 덜렁 한국과 수교해버렸으니까요. 지금 시진핑 주석은 항미원조를 강조하면서 북한에 간이라도 빼줄 것 같이 굴지만 중국의 국가 전략에 따라 언제든 배신할 수 있다는 걸 북한은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김정은이 2018년 미국과 핵협상을 벌인 건 중국에 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진 않았을까요?
나아가 1990년대 초반부터 북한이 핵을 빌미로 끊임없이 미국과 협상을 벌여온 것도 중국을 믿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닐까요? 북한이 중국을 믿었다면 경제발전기회가 원천 봉쇄되는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굳이 핵무기를 가지려고 하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 말이죠. 우리가 미국을 믿고 핵무장을 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좀더 과감하게 생각해본다면 중국이 최근 북한에 공을 들이는 건 중국이 북한을 배신했던 것처럼 중국이 미국과 정면 대결을 각오하는 이 시점에서 북한도 중국을 배신할 수 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해 그러는 건 아닐까요? 아무래도 북한이 중국을 배신하는 시나리오도 우리 머릿속에 넣어둬야 할 것 같습니다. 북한도 믿지 못하는 중국인데 우리에게도 언제든 칼을 들이댈 수도 있다는 것도 유념해야겠지요.

그럼 미국도 중국처럼 믿으면 안 되는 나라일까요? 한미간에도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미 사이의 갈등 사례들 가운데 우리가 억울하다고 느낄만한 대목도 없지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미국은 지난 70년 동안 중국이 북한을 배신했던 것처럼 우리를 결정적으로 배신한 적은 없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거시적으로 볼 때 한미갈등은 주로 한국의 국력이 성장함에 따라 생기는 일종의 성장통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네요.

이수혁대사의 문제 발언도 전체 맥락을 보면 저와 비슷한 생각에서 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일각에서 우리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서 선택을 강요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선택을 강요 받는 국가가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국가라는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이었으니까요. 이대사는 '선택'보다 '자부심'을 더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도와 달리 '선택'만 부각되긴 했지만 말입니다.

창넘어 북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창넘어북한] '한중미' 사이에서 은근히 신난 북한?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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