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도 "정부 '2천명' 근거는 특별한 것 없어"…결국 '공공복리'가 이겼다
서울고법, 의대 증원 취소소송의 집행정지 기각
의대 증원 논의, 작년 10월 의사인력전문위 유일
의사협회·전공의협회, 의대 증원 의견에 '무응답'
2천명 수치 근거 미흡 인정…공공복리 영향 우려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서울 시내의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2024.05.16. [email protected]
[세종=뉴시스] 박영주 기자 = 재판부가 의대 증원 취소소송 집행정지를 기각한 배경에는 '공공복리'가 중요하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가 제시한 증원 규모 2000명에 대한 근거는 미흡하지만, 의대 증원의 필요성에 대한 취지는 인정한 셈이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판사 구회근)는 전날 교수, 전공의, 수험생 등이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를 상대로 낸 의대증원 취소소송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재판은 1심인 서울행정법원에서 원고들이 모두 '신청인 적격'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본안 심리 없이 바로 '각하' 결정을 내린 이후 열린 항고심이었다. 여기선 1심과 달리 의대생의 경우 신청인 적격이 된다고 봤고, 정부가 증원 규모를 2000명으로 정한 근거자료를 요구해 이목이 특히 집중됐다.
항고심 재판부는 증원 규모인 2000명 수치의 산출 근거는 다소 미흡하다고 봤다. 하지만 정부가 꽤 오랜 기간 증원을 논의해 온 점 등을 고려했다. 또 제주의대가 신설된 1998년 이후 27년 간 의대 정원이 유지된 점도 주목했다.
결정문을 보면 정부는 지난 2월6일 의대 입학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하기 전까지 의료현안협의체 18차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2차례, 보정심 산하 의사인력전문위원회 9차례의 회의를 진행했다. 다만 의대 정원 증원 규모의 구체적인 수치와 함께 논의된 회의는 작년 10월17일 열린 의사인력전문위원회가 유일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위원 10명 중 3명은 1000명 증원(점진적 증원 포함)을 제시했다. 다른 한 위원은 의약분업을 계기로 줄어든 351명을 환원한 후 의과대학 수용 역량 범위 내에서 1000명이든 2000명을 늘리자고 제안했다. 또 다른 위원은 5000명이든 1만명까지 최대한 증원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정부는 이러한 논의를 통해 의대 정원을 증원할 필요성이 크다고 보고 2025학년도부터 의대정원 확대를 추진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10월26일부터 대학별 증원 수요와 수요 역량을 조사했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현장 점검 등도 실시했다.
또 전국 40개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진행한 결과, 대학들은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최소 2151명, 최대 2847명 증원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 2030학년도에는 증원 규모를 최소 2738명, 최대 3953명까지 늘려야 한다고 봤다.
정부는 의과대학이 제출한 증원 수요를 토대로 서면 검토, 비대면 점검, 현장점검, 개별간담회 등을 진행했다. 이와 별개로 6개 의료계 단체에 의대 증원에 관한 의견 제출을 요청했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증원 규모에 대해 답하지 않았고 대한전공의협의회는 회신조차 하지 않았다.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의대 증원 법원 결정이 나온 가운데 17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4.05.17. [email protected]
정부가 2000명 규모를 처음 꺼내든 건 지난 2월이었다. 정부는 2월6일 보정심 심의·의결을 거쳐 긴급브리핑으로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확정했다.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해 현재 3058명에서 5058명으로 확대하고 향후 의사 인력 수급 현황을 주기적으로 검토하고 조정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때 2000명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는 처음 발표된 것이다. 당시 보정심 회의 참석자 23명 중 2000명 증원에 반대하는 취지의 의견은 4명, 찬성은 19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정부는 의과대학 학생 정원 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난 3월 세 차례 심사·회의를 거쳐 수도권과 비수도권 정원 편차 조정, 대학 간의 정원 규모 편차 조정 및 소규모 의대 우대, 지역 거점대 역할 강화 등을 기준으로 의대 정원을 2000명을 배정했다.
다만 강원대·경북대·경상국립대·충남대·충북대·제주대 등 6개 국립대 총장의 건의로 2025학년도의 경우 증원된 의대 정원의 50~100% 범위에서 자율적으로 신입생 모집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25학년도 의대 모집 정원은 차의과학대를 제외하고 1469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재판부는 정부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2000명 증원의 근거는 부족하다고 봤다. 2035년까지 부족한 의사 1만명을 확충하기 위해 의대 교육과정 등을 고려, 2025년부터 매년 2000명을 증원해야 2035년 합계 1만명 의사가 배출된다는 산술적 계산에 기한 것일 뿐, 2000명이라는 수치 자체에 직접적인 근거는 특별한 것이 없다는 판단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2000명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는 증원 발표 당일 처음 제시됐다 하더라도 정부는 의사 인력 확충을 꾸준히 논의해 왔고, 대한의사협회에 이에 관한 의견을 요청했으나 의협은 증원 규모에 관해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며 "정부가 의사 인력 증원에 관해 의사들의 허락을 받거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아울러 재판부는 필수의료·지역의료가 상당히 어렵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의대 정원 증원 필요성 자체는 부정하기 어려운 점, 일부 미비하거나 부적절한 상황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현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해 일정 수준의 연구와 조사, 논의를 지속 왔다는 점을 고려했다.
향후 의사 인력 수급 현황을 주기적으로 검토해 수정할 계획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므로 만일 현재의 증원 규모가 다소 과하다면 향후 얼마든지 조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점도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집행정지를 허용할 경우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고 이 사건 처분(의대 증원이) 명백히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의료계를 향해서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기 위한 의사 파업 등은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그 자체로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문제를 적절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4.05.17.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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