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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언의 책과 사람들]날 것 그대로 담은 조선 영화인들 이야기

등록 2021.07.03 06:00:00수정 2021.07.03 17: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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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화 선생의 ‘한국영화측면비사’

[서울=뉴시스]한국영화측면비사(사진=한상언 제공)2021.06.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한국영화측면비사(사진=한상언 제공)2021.06.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당연한 말이겠지만 제국은 식민지 원주민들의 삶을 역사의 큰 줄기로 삼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제국에서 온 식민지인들이 차지하기 마련이다. 일제 강점 하 조선 거주 일본인들의 삶은 '경성일보', '경성일일신문', '조선신보' 등 일본어 신문들과 '조선공론'이나 '조선급만주' 등 일본어 월간지에 자세하게 기록됐다.

그 당시 조선에서 발간된 일본어 신문을 펼쳐 보면 알겠지만 연예란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건너온 연예물을 공연하는 서울의 일본인 극장 소식과 일본 배우의 동향, 일본의 주요 촬영소 소식 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반면 조선인들의 활동은 주변적인 것으로 취급되어 삭제되거나 축소되어 기록되었을 뿐이다.

이 시기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조선 영화인들의 활동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 있었다. 바로 영화인 안종화이다.

그는 임성구의 혁신단에서 배우 생활을 시작한 신파배우였으며 1924년 부산에서 만들어진 조선키네마주식회사의 전속 배우로 '해의 비곡'의 주인공이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상업용 극영화인 '청춘의 십자로'(1934)의 연출자이다.

조선에서 연극과 영화가 막 움트기 시작할 무렵부터 관련 분야에서 활동하였기에 자신의 경험과 주변인들에게 들어 알고 있는 사실들을 기록하여 남긴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어찌보면 사명 같은 것이었다.

실제 그는 영화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는 당사자였거나 목격자였다. 연쇄극이 만들어지던 무렵 조선의 4대 신파극단 중 하나인 혁신단의 배우였으며, 윤백남이 '월하의 맹세'를 만들 때에도 그 제작과정에 참여했다.

1923년에는 토월회 공연을 돕기도 했고, 함흥에 만들어진 소인 극단 예림회에 문예부장으로 초빙되어 그곳에서 나운규를 비롯해 주인규, 김태진, 이규설 등 초창기 한국 영화계의 중요인물들과 조우했다. 심지어 카프 맹원들이 처음으로 제작한 영화 '유랑'은 안종화가 이끌던 조선영화예술협회 이름으로 만들어진 영화였다.

안종화는 영화사에 기록되지 못한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이야기를 여러 매체에 기고하면서 초창기 우리의 영화사를 보다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신극사 이야기'(진문사, 1955)와 '한국영화측면비사'(춘추각, 1962)라는 두 권의 책으로 결실을 맺었다.

초기 연극영화인들의 삶을 복원시켜준 이 책에 대한 연구자들의 평가는 일방적인 찬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억이 갖고 있는 한계로 인해 발생한 서술상의 오류, 분단으로 인해 축소되거나 삭제된 월북 예술가들에 관한 이야기는 자주 문제로 지적되었다.

하지만 공식적인 역사가 알려주지 못하는 당시 영화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알려준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보석같은 가치가 있다.

'한국영화측면비사'는 1998년 현대미학사에서 복각본으로 다시 나왔다.

복각본에는 영화평론가이자 영화사가인 김종원 선생의 해제와 서지학자 김종욱 선생의 정오표가 실렸다. 김종원 선생은 안종화 선생과의 개인적 인연에 대한 언급으로 해제를 시작했다.

홍안의 청년이 노경에 접어든 원로 영화감독의 촬영현장을 참관한 것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었을 것이다.

해제에서 선생은 연도와 인명 등 서술상의 오류를 지적하면서도 "1차 사료가 놓친 불충분한 정사의 공백을 상당부분 보충 복원 해주는 매우 중요한 증언"이라는 말로 이 책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책도 인연이란 게 있다. '신극사 이야기'는 10여 년 전에 꽤 상태가 괜찮은 책을 구해 지금도 소장하고 있지만 '한국영화측면비사'는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었다.

작년에 한국영화박물관에서 “혼돈의 시간, 엇갈린 행로”라는 이름의 전시 때에도 이 책을 장서가로 이름이 높은 엄동섭 선생께 빌려 진열할 수 있었다.

내가 '한국영화측면비사'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된 김종원 선생은 6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애장하고 있던 손때 묻은 책을 선물로 내게 주었다.

 마치 임자를 만나 다행이라는 듯 환한 표정으로 책을 건네주셨지만 어찌 섭섭하지 않았으랴. 책을 수집하는 입장에서 선생의 허한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받아 들면서 오랫동안 기다리던 친구를 만난 것과 같은 기쁨과 더불어 안종화와 김종원 두 분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한 가장 유력한 증언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어깨가 무거워졌다.

평생 소장해야 할 귀하고 의미 있는 책이 한 권 더 늘었다. 이게 다 오랫동안 만나기를 고대하던 책과의 인연을 맺어 준 김종원 선생 덕분이다.

▲한상언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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