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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투기사·출판계 대부 ‘학원 김익달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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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6-08-18 15:58:42  |  수정 2016-12-28 17:3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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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전쟁으로 온 강토가 잿더미로 변한 폐허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설계하고 정진한 이들이 ‘학원세대’다. 

 1952년 11월 피란지 대구에서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학원’이라는 잡지를 창간, 학원세대를 창조한 인물이 학원(學園) 김익달(1916~1985)이다.

 “50년대 60년대 ‘학원’을 탐독하며 얼굴도 모른 채 ‘학원’을 통해 서로 소통하며 자라난 세대가 바로 ‘학원세대’인 것이다. 그들은 민족상잔의 참혹한 전쟁을 직접 겪었고 1인당 국민소득이 100불도 안 되는 세계 최빈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으면서도 ‘학원’이 있었기에 행복하였다면서 어느 세대보다도 건강하게 성장하였다. 이 학원세대야 말로 70년대 80년대 이 땅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밑바탕이 되는 문화 세력의 중추가 된다.”

 ‘학원 김익달 평전’은 민족 자강과 미래 주체 양성에 매진한 김익달의 전기다. ‘학원’은 몇 번의 휴간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1979년 9월까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통권 293호를 발행했다.

 김익달은 1916년 5월9일 경상북도 상주군 화서면 중문리에서 4남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올해가 탄생 100주년이다. 지난 5월 기념 세미나가 열렸고, 8월 22~29일에는 서울시민청 갤러리에 100주년 전시회가 마련된다.

 평전을 쓴 윤상일 변호사는 “그에게 있어 출판이란 문화를 창조하고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살찌우는 사업이었다. 따라서 사업성이나 경제성이 있느냐가 기준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인가 아닌가가 판단 기준이었다. 그러기에 전쟁이 치열하게 진행 중 임에도 천막 교실에서 얄팍한 전시독본만으로 공부해야 하는 불행한 이 나라 학생들을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학원’을 창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농민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본국에서 농촌이 잘살지 못한다면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아무리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시기상조라고 말려도 농촌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기에 ‘농원’을 창간했고, 국가의 기본 단위는 가정이고 가정의 중심은 어머니이고 여성이 아닌가. 그리고 어머니의 의식이 깨어 있어야만 국가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여원’과 ‘주부생활’을 창간했다. 그래서 김익달에게는 출판계의 대부, 개척자, 기획 출판의 귀재라는 여러 가지 별명이 있지만 어떤 언론에서는 그를 가리켜 ‘문화의 투기사(投機師)’라고 했다. 그만큼 김익달은 문화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김익달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기본이 되면서도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어린 학생들, 농민, 여성들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그들을 위한 문화의 투기에 전력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464쪽, 2만4000원, 지상사

 rea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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