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가장 한국적인 도시가 웬 말"…외국어 간판이 점령한 전주

등록 2022.08.19 06:00:00수정 2022.08.19 08:54:43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정체 불명의 외래어 간판도 즐비해

연령 높아질수록 이해 어려움 겪어

"공공기관부터 무문별한 사용 자제"

[전주=뉴시스] 김얼 기자 = 전북 전주시 객사와 객리단길 일대에 외래어 간판을 사용한 가게들이 즐비해 있다. 2022.08.18. pmkeul@newsis.com

[전주=뉴시스] 김얼 기자 = 전북 전주시 객사와 객리단길 일대에 외래어 간판을 사용한 가게들이 즐비해 있다. 2022.08.18. [email protected]

[전주=뉴시스] 이동민 기자 = '가장 한국적인 도시'는 전북 전주를 지칭하는 문구다. 하지만 전주한옥마을을 제외하고 전주의 한국다움을 느끼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는 표현이 모호해 뜻 자체를 알 수 없는 국적 불명의 외래어 간판 또는 외국어 간판이 도심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18일 오전 방문한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의 상점가. 음식점과 옷 가게 등 다양한 업종의 가게로 즐비한 이곳을 둘러본 결과 외국어로 표기된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고유의 한글 이름까지 영어로 고쳐 사용하는 상점들도 눈에 띄었다. 해당 구간의 간판 중 우리말로 된 간판은 10개 기준으로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비교적 외국어가 익숙한 젊은이들에게는 간판을 읽고 목적지를 쉽게 찾아갈 수 있지만,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정보 소외 계층은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무슨 뜻인지 모르는 낯선 외국어 단어나 표현으로 소통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중앙동에서 만난 시민 강영순(62)씨는 "요즘 친구들이랑 커피를 마시러 가려고 해도 영어를 몰라 당황스러웠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며 "자식들이 알려줘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자꾸 까먹는다"고 하소연했다.
[전주=뉴시스] 김얼 기자 = 전북 전주시 객사와 객리단길 일대에 외래어 간판을 사용한 가게들이 즐비해 있다. 2022.08.18. pmkeul@newsis.com

[전주=뉴시스] 김얼 기자 = 전북 전주시 객사와 객리단길 일대에 외래어 간판을 사용한 가게들이 즐비해 있다. 2022.08.18. [email protected]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은 이른바 '객리단길'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한 일본식 선술집 간판은 모두 일본어로만 적혀 있어 일본 음식점인 것만 알 수 있을 뿐 어떤 종류의 음식을 판매하는지 유추할 수 없었다.

또 인근 카페의 경우 간판은 물론 안내판까지 영어로만 적혀 있는 등 정체불명의 외래어 간판이나 외국어 간판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이곳 객리단길은 전주한옥마을과 가까워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장소임에도 '전주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학생 문지원(23)씨는 "우리 세대야 간단한 영어 정도는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상에서 불편함이 작을 뿐인 것 같다"며 "우리 부모님 세대나 그 이상의 세대는 불친절한 간판 때문에 일상에서 불편함을 크게 느낄 것 같다"고 말했다.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는 '광고물의 문자는 원칙적으로 한글맞춤법, 국어의 로마자표기법 및 외래어표기법 등에 맞춰 한글로 표시해야 하며, 외국 문자로 표시할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병기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규제는 어렵다. 4층 이하에 설치되는 5㎡ 이하의 간판은 허가·신고 대상이 아니고,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의 외국어 간판은 '특별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인정돼 단속 대상에서 제외하기 때문이다.
[전주=뉴시스]이동민 기자 = 전주시립도서관의 외국어 안내문

[전주=뉴시스]이동민 기자 = 전주시립도서관의 외국어 안내문

교정교열 전문가 정혜인씨는 일반인의 외국어 간판을 문제 삼을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부터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그 예로 전주시립도서관을 꼽았다.

정씨는 "도서관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Jeonju's library history'"라며 "이것을 '전주도서관의 역사'라고 표현하면 누구나 읽기 편할 텐데 굳이 영어로 표기를 해놔 영어를 읽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이는 '언어폭력'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전주시립도서관을 찾아가 보니 책 검색 공간은 'Search corner'로, 이야기방은 'Storytelling room'으로 표기돼 있었다.

3·1운동 관련 책을 모아 놓은 공간은 '3·1운동 컬렉션'으로, 보고문학·기록문학을 모아놓은 곳은 '르포르타주 및 기타'로 표기돼 있기도 했다.

정씨는 "영어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디자인 때문에 그랬다고 답변한다"며 "이는 명백한 언어 사대주의로,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공기관부터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전주시립도서관 관계자는 "초창기에 디자인 때문에 영어를 많이 사용했고 지금은 조금씩 바꿔가고 있다"면서도 "영어로 적혀있는 'Jeonju's library history' 부분은 교체하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