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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홀로코스트 산업…‘어둠속의 빛’ 양가감정

등록 2013.03.29 01:01:10수정 2016.12.28 07: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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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태은 문화전문기자 = 현존 최고 여성감독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유태계 폴란드 감독 아그네츠카 홀란드의 영화 ‘어둠 속의 빛’을 보는 심정은 복잡하다. 또 ‘홀로코스트’인가….  본래 대재앙, 대참사를 의미하던 이 일반명사는 이제는 1930~40년대 나치에 의한 600만 유태인 대학살을 뜻하는 고유명사처럼 전 세계인에게 각인돼있다.  tekim@newsis.com

【서울=뉴시스】김태은 문화전문기자 = 현존 최고 여성감독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유태계 폴란드 감독 아그네츠카 홀란드의 영화 ‘어둠 속의 빛’을 보는 심정은 복잡하다. 또 ‘홀로코스트’인가….

 본래 대재앙, 대참사를 의미하던 이 일반명사는 이제는 1930~40년대 나치에 의한 600만 유태인 대학살을 뜻하는 고유명사처럼 전 세계인에게 각인돼있다.

 1945년 1월27일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유태인 포로수용소가 해방된 이래 유럽 각국과 미국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홀로코스트 영화는 다큐멘터리 뿐만 아니라 장편 극영화로도 끊임없이 제작되고 있다. 진부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치의 야욕이 유럽 전역을 뒤흔든, 20세기 인류 최대의 치욕적 사건으로 꼽히는 만큼 유태인들은 물론 유럽전역에 남긴 상흔은 상당하다. 그 개개인이 겪은 사연들만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 엄청난 비극을 바탕으로한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탈리아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1997), 아일랜드 작가 조 보인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2008), 프랑스와 영국 혼혈작가 타티아나 드 로즈네의 소설을 영화화한 ‘사라의 열쇠’(2010)처럼 이 비극적 사건에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한 영화들은 비유태인에 의해 만들어졌다.

 반면 유태인 감독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독일의 잔혹한 범죄를 고발하고 유태인의 생존과정을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개인적 체험과 동기도 반영됐다. 로만 폴란스키는 가스실에서 어머니를 잃었다. 일단 명성을 얻은 후에는 마치 의무감으로 약속이라도 한 듯 홀로코스트 영화를 발표한다. 할리우드의 천재 스티븐 스필버그는 ‘쉰들러 리스트’(1993)를, 폴란드 출신 거장 로만 폴란스키는 ‘피아니스트’(2003)를 내놨는데, 모두 기존에 이들이 추구해왔던 영화 세계와는 다소 동떨어진 작품들이다.

 세계 영화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할리우드, 그 할리우드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유태계 자본과 유태계 인사들임을 생각하면 그 영향력이 어떨는지는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쉰들러 리스트’는 아카데미 7개 부문을 수상하며 권위를 덧입었고, ‘피아니스트’도 아카데미에서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색상 등을 받았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부채감을 지닌 유럽에서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물론 그 소재만으로도 깊은 감동을 남기고, 감동의 명성만큼 완성도가 높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울=뉴시스】김태은 문화전문기자 = 현존 최고 여성감독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유태계 폴란드 감독 아그네츠카 홀란드의 영화 ‘어둠 속의 빛’을 보는 심정은 복잡하다. 또 ‘홀로코스트’인가….  본래 대재앙, 대참사를 의미하던 이 일반명사는 이제는 1930~40년대 나치에 의한 600만 유태인 대학살을 뜻하는 고유명사처럼 전 세계인에게 각인돼있다.  tekim@newsis.com

 이미 ‘유로파 유로파’(1990)로 홀로코스트를 다룬 적이 있는 아그네츠카 홀란드는 ‘어둠 속의 빛’(2011)을 통해 제2의 ‘쉰들러 리스트’를 추구한다. 나치 치하의 폴란드 도시 르보프의 하수도 터널에서 14개월간 숨어지낸 유태인들을 도와준 하수도 수리공 레오폴드 소하의 이야기다. 영화 속 히게 교수의 어린 딸인 크리스티나 히게의 회고록 ‘녹색스웨터를 입은 소녀’(2008)와 영국작가 로버트 마셜이 쓴 소설 ‘르보프의 하수구에서’(1990)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영화는 143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게 상당히 잘 만들어졌다. 다소 뜬금없다 싶게 등장하는, 여성감독이라는 선입견을 깨버리는 과감한 베드신들, 관객의 심장을 조이는 능수능란한 트릭 등 유려한 연출력을 자랑한다. 유태인들이나 소하를 마냥 미화하지도 않았고 있는 그대로의 삶의 모습들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려 한다. 나치의 가혹행위에 대해서는 절제한다고는 했지만, 초반 벌거벗은 한 떼의 여자들을 숲으로 뛰게 한 후 모두 총살하는 장면부터 인격을 모독하고 학대하고 손쉽게 살해하는 모습 등에서 그 공포와 불안감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한편으로는 현 유럽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의 예수도, 성모마리아도, 12사도도 유태인이라는 점을 은근히 강조하는 자부심도 드러낸다. 게다가 이 영화는 다수 독일인 프로듀서들의 참여로  만들어졌다. 많은 홀로코스트 영화들이 그렇듯이 독일은 자료를 제공하고 제작에 동참한다. 과거를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 영화는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걸려있다는 문구를 되새기게 한다. 유태인들은 영원히 잊지 않고 세대를 거듭해 이 역사를 되새김질할 것 같다. 이런 역사적 비극에 어떤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노르만 핀켈슈타인의 저서 ‘홀로코스트 산업’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부모 모두 폴란드 유태인 강제수용소 생존자인 이 유태계 미국인 학자는 “나는 부모님이 받은 고통을 결코 용서하지도 잊지도 않을 것”이라는 헌정사와 함께 ‘홀로코스트 신화’의 허상을 깨부수는 양심선언을 한다. 세계에서 인권 유린을 가장 노골적으로 저지르고 아랍 해방 운동가에 대한 고문과 암살을 합법화하는 야수적 국가 이스라엘이 이 신화에 의해서 ‘영원히 핍박 받는 자들의 보호막’으로 서술된다는 점을 폭로한다.

 또 홀로코스트를 초대형 돈벌이로 만들고 있는 자들을 비판한다. 이스라엘이 여전히 독일에게 터무니없는 피해배상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도 그 증거 중 하나다. 그러면서 홀로코스트만이 세계사 전대미문의 유일한 대형범죄가 아니었고, 유태인만이 피해자가 아님을 설파한다. 4월11일 국내개봉을 앞둔 ‘어둠속의 빛’에 대해 일부 국내 네티즌들까지 “영원히 계속 될 것 같은 유태인 고난영화, 왜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생각해봐야한다”는 평가를 하고 있는 이유다.

【서울=뉴시스】김태은 문화전문기자 = 현존 최고 여성감독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유태계 폴란드 감독 아그네츠카 홀란드의 영화 ‘어둠 속의 빛’을 보는 심정은 복잡하다. 또 ‘홀로코스트’인가….  본래 대재앙, 대참사를 의미하던 이 일반명사는 이제는 1930~40년대 나치에 의한 600만 유태인 대학살을 뜻하는 고유명사처럼 전 세계인에게 각인돼있다.  tekim@newsis.com

 한국에서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핍박받으면서도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5분의 1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지닌 유태민족과 동일시하는 분위기가 일면서 유태인에 대한 호의적 반응이 자리잡게 됐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우습게도 국제적으로 이러한 ‘피해자’ 보호막과 당위성을 열렬히 이용하는 것은 우리에게 식민지배로 착취를 일삼았던 일본이라는 것이다. 히로시마 원폭투척, 진주만 폭격 당시 미국에서 자행된 일본계 미국인 12만명의 수용소 강제억류 등을 들어 국제사회에서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그로 인한 이득을 추구하고 있다.

 물론 민간인들이 겪은 고초야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일본은 이러한 사건들의 배경에는 전쟁을 일으켜 전쟁범죄로 아시아 국가들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던 스스로의 원죄가 자리잡고 있음은 철저히 감춘다.

 어찌됐든 부러운 것은 유태인들이 자신들이 겪은 일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노력했고, 이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영향력있는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태인 고리대금업자의 아들로 명문 케임브리지 재학생 신분으로 1924년 파리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가 된 해럴드 에이브러햄의 실화를 그리고 있는 영화 ‘불의 전차’(1981)에서는 “유태인은 정말 선택받은 민족인가”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솔직히 여타 분야를 떠나 미디어와 영상매체를 이용한 이들의 영향력 확산은 놀라울 따름이다.

 그 바탕에 이를 지원하는 자본의 힘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고, 그 못지않은 고난을 겪은 우리는 왜 이렇게 하지 못할까, 속상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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