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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주효한 역발상, 주인공 바꾼 연극 '노래하는 샤일록' & '메피스토'

등록 2014.04.16 08:20:42수정 2016.12.28 12:3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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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연극 '노래하는 샤일록'

【서울=뉴시스】연극 '노래하는 샤일록'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원작의 조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극 두 편이 주목받고 있다. '노래하는 샤일록'과 '메피스토'다.

 '노래하는 샤일록'은 재일동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57)이 영국의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을 각색·연출한 것이다. '베니스의 상인'인 '안토니오' 대신 고리대금 업자 '샤일록'을 중심으로 꾸린다.  

 '메피스토' 역시 원작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의 '파우스트'를 뒤짚는다. 대학로의 소문난 콤비인 연출가 서재형(44)·극작가 한아름(37) 부부가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메피스트의 관점으로 극을 전개한다.

 ◇노래하는 샤일록

 말 그대로 '정의신표' 연극이다. 겉보기에는 희극이지만, 그 안에는 짙은 페이소스가 깔려 있다. '야키니쿠 드래곤'과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 '나에게 불의 전차를' 등을 통해 '슬픈 희극'을 선보인 정 연출의 장기가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만나 극대화됐다.

 셰익스피어는 등장인물들을 선악으로 나누지 않는다.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인물들을 통해 흑백 논리로 판단할 수 없는 사람과 세상살이를 그리는데, '정의신 월드'와 맞닿는 지점이다.

 '베니스의 상인'은 희극이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곁가지가 있다. 샤일록을 단순한 악당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비극적인 인물로 묘사한다. 당시 셰익스피가 산 런던의 시민이 유대인에게 품은 증오심이 투영됐다. '샤일록'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기독교인들에게 모멸을 당한다. 그를 무시한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에게 복수를 하려고 하지만, 결국 돈도 잃고 자식도 잃는 가련한 아버지일 뿐이다.

【서울=뉴시스】연극 '노래하는 샤일록'

【서울=뉴시스】연극 '노래하는 샤일록'

 정의신은 일본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인 재일동포의 가련함과 비극을 자신의 작품에 녹여넣어왔다. 이들과 샤일록의 처지는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극 내내 시끌벅적한 희극은 이런 아픔을 승화시키는 힘이다. '노래하는 샤일록'은 더구나 노래도 곁들여졌다. 기독교인에 홀려 자신을 배신했다가, 결국 미쳐버려 돌아온 딸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떠나면서도 노래한다. 그럼에도 현실을 긍정하고 살아가겠다는 의지다.

 베니스을 상징하는 무대 장치는 사실상 턴테이블 무대 위에 배치된 커다란 다리 하나다. 이보다 심플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다리를 힙겹게 건너고 건너는 샤일록과 등장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다리 자체가 인생을 상징하는 커다란 비유라는 걸 깨닫게 된다. 샤일록 역의 박기륭을 비롯해 배우들의 침이 튀는 혼신의 연기도 에너지를 더한다.

 다만,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자체가 폭발력이 강했던 전작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다소 밋밋할 수 있겠다. 정의신 의 여느 작품처럼 러닝타임(180분)이 긴데, 이 과정을 불식시키 위해 가끔 억지웃음을 유발하려는 과장된 장면은 옥에 티다.  

 ◇메피스토  

 서 연출이 메피스토 역에 뮤지컬배우 전미도(32)를 캐스팅한 것은 묘수다.  

【서울=뉴시스】연극 '메피스토'

【서울=뉴시스】연극 '메피스토'

 '파우스트'는 괴테가 60여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이다. 학문적인 탐구와 삶에 대한 인식을 통해 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회의에 빠지는 노학자 '파우스트'가 주인공이다.

 그에게 쾌락의 삶을 선사하는 대신 영혼을 넘겨받기로 한 유혹의 아이콘 메피스토(메피스토펠레스)를 통해 선과 악, 구원과 타락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을 그린다.  

 서 연출은 조연인 메피스토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으로도 모자라, 주로 남자 배우가 맡던 이 역을 여배우인 전미도에게 맡겼다. 자신이 메피스토를 연기하게 된 것에 대해 "남자를 유혹하고 타락의 길로 빠져들게 하는데는 여자가 더 셈세하고 매력적으로 그려질 수 있어서 아닐까"라고 답한 전미도는 옳았다.  

 전미도는 평소 자신의 목소리는 하나 남아 있지 않은 괴성으로 팜 파탈 이미지를 버무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메피스토를 창조했다. 100분간 전미도를 보는 내내 '괴력'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파우스트 역의 정동환(65)이 안정감 있게 연기를 받아주기는 한다. 그러나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닥터 지바고' '베르테르'에서 주로 청순한 역을 맡아온 그녀가 능수능란하면서도 사악한 메피스트로 감쪽같이 변했을 때, 배우와 연기를 보는 쾌감이란 것을 비로소 느끼게 된다.

 메피스토는 결국 파우스트를 유혹하는데 실패한다. 신은 인간이 방황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서는 선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면서 결국 파우스트의 편을 든다. 그럴 때 속절 없이 무너지는 메피스토는 가련하기까지 하다. 남자 배우가 연기했으면 그릴 수 없는 감정의 선이다.

 서 연출은 여성 메피스토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에 대해 "학문적이고 학구적인 파우스트의 시대가 아닌, 유혹적인 악인 메피스토의 시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극을 본 뒤 이 말을 떠올리면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된다. 서 연출과 한 작가, 그리고 전미도는 새로운 형태의 기막힌 연극을 만들었다.

【서울=뉴시스】연극 '메피스토'

【서울=뉴시스】연극 '메피스토'

 무대디자이너 여신동, 영상디자이너 김장연, 의상디자니어 이유선 등이 힘을 합친 무대 역시 환상적이다. '메피스토'가 공연 중인 CJ토월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석까지 책장 등으로 꽉꽉 채운 무대는 그로테스크의 절정이다. '왕세자 실종사건'에서 맛보기, 이어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 때 적극 운영한 코러스 사용도 일품이다. 특히 코러스 배우들은 메피스토의 정령 역을 충실히 하며 앙상블의 묘미를 선사한다.  

 ◇노래하는 샤일록 & 메피스토

 '노래하는 샤일록'과 '메피스토'는 조연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의 또 다른 결을 만들고, 풍성한 입체감을 살렸다. 고전의 재해석은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걸 두 작품은 증명한다. 

 '노래하는 샤일록'은 국립극단이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프로젝트 '450년만의 3색 만남Ⅱ'의 두 번째 작품이다. 20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볼 수 있다. 윤부진, 김정은, 이윤재 등이 출연한다. 2만~5만원. 국립극단. 1688-5966

 '메피스토'는 고전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해 선보이는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기획공연 'SAC 큐브' 클래식의 하나다. 이진희(31)가 순수한 세계의 상징 '그레첸'을 연기한다. '메디아'와 '왕세자 실종사건'등에서 이미 서·한 콤비와 호흡을 맞춘 작곡가 황호준을 비롯해 현대무용가 장은정 등이 힘을 보탠다. 19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볼 수 있다. 3만~5만원. 예술의전당 쌕티켓. 02-580-1300

 '노래하는 샤일록'= 정의신, 셰익스피어와 절묘한 만남 ★★★★  

 '메피스토'= 서재형·전미도의 신 연극 창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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