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것이 바로 셰익스피어다…연극 '리어왕'
【서울=뉴시스】박진희 = 배우 안석환(리어왕 역)이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연극 리어왕 프레스콜을 하고 있다. 연극 리어왕은 지난 5일 부터 26일 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화,수,목 오후 7시 30분 / 수,목,토 오후 3시와 7시30분에 공연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세 딸 중 두 딸에게 배신당한 뒤 폭풍이 휘몰아치는 황야로 쫓겨난 '리어왕'. 화려한 명성과 부귀영화로 영예를 누리던 그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반벌거숭이가 됐다.
광기, 허무, 분노 등 거친 감정을 쉴 새 없이 쏟아내며 미친 듯 방황하는 순간 사나운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그 속에는 셰익스피어의 인간과 삶에 대한 시(詩)적인 통찰이 녹아 있었다.
지난 5일 개막해 오는 26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용에서 공연하는 '리어왕'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오리지널로 재현한 무대다.
셰익스피어의 나라 영국 런던의 왕립연극학교 출신 강민재 연출이 이 위대한 문호의 정수를 보여주겠다며 야심찬 포부를 던진 공연이다.
인간의 저 깊은 곳에 있는 본성을 건드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최고봉으로 통하는 이 작품의 얼굴을 발견했다. 지난해 서거 400주년을 맞은 셰익스피어가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했다.
기름기를 뺀 무대와 소품은 담백했는데 덕분에 셰익스피어 원전을 그대로 올린 작품의 텍스트가 생생하게 살아났다.
【서울=뉴시스】박진희 = 배우 손병호(리어왕 역)와 오대석(켄트 공 역)이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연극 리어왕 프레스콜을 하고 있다. 연극 리어왕은 지난 5일 부터 26일 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화,수,목 오후 7시 30분 / 수,목,토 오후 3시와 7시30분에 공연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셰익스피어 원전 자체가 단순하면서 현대적이다. 리어왕과 그를 배신한 두 딸은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가득했던 세 번째 딸 모두 죽는 비극 속에서 맏딸 거너릴 남편인 알바니는 말한다.
"이 비통한 시대의 가혹한 슬픔에 우리들은 복종해야만 하오. 마땅히 해야 할 말은 삼가고, 우리가 느끼는 것만을 말합시다." 여전히 원통한 시대에 큰 울림을 주는 말이다.
아무리 연출이 훌륭하더라도 배우들의 호연이 없었다면 3시간(인터미션 15분 포함)에 가까운 공연을 몰입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무대는 물론 TV와 영화를 아우르며 카리스마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안석환·손병호, 두 배우의 리어왕은 이 연극을 두 번 이상 봐야 하는 명분을 줬다.
【서울=뉴시스】박진희 = 배우 이태임(레간 역/리어왕의 둘째 딸)이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연극 리어왕 프레스콜을 하고 있다. 연극 리어왕은 지난 5일 부터 26일 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화,수,목 오후 7시 30분 / 수,목,토 오후 3시와 7시30분에 공연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손병호의 리어왕은 또 다르다. 광기에 휩싸이는 리어왕이지만, 그의 리어왕은 일견 평온해 보인다. 그건 자신의 다른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었음을 깨닫기 때문에 손병호는 그 통찰을 보여준다.
악역이라 할 수 있는 맏딸 거너릴 역의 강경헌, 그리고 둘째 딸 '리건' 역의 이태임과 이은주는 그럼에도 인간적인 숨결을 불어넣는다. 이 작품으로 연극에 데뷔한 이태임은 '연극 초보'임에도 안정적인 연기와 발성을 보여준다. 막내 딸 '코델리아' 역의 정혜지는 쟁쟁한 선배들 속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이들을 포함해 연극에서는 대규모인 총 30여명의 배우들이 출연하는데 이들의 앙상블도 탄탄했다.
화려한 볼거리가 많은 지금, 컴컴한 극장 안에서 3시간을 몰입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이 비극을 생생하게 체험한 뒤에 관객들은 오히려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3시간짜리 비극이 준 보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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