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리뷰]남북관계의 타산지석, 연극 '오슬로'

등록 2018.10.15 06:35:00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리뷰]남북관계의 타산지석, 연극 '오슬로'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노르웨이 오슬로는 추운 도시로 기억된다. 연극 '오슬로'에서 각각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와 이스라엘을 대표해 평화협정을 하는 '아흐메드 쿠리에'와 '하산 아스푸르'도 자신들의 중재자로 나선 이들이 따듯한 캘리포니아 출신이 아니라 아쉽다는 농을 한다.
 
오슬로는 평화의 도시로 소환되기도 한다. 스웨덴 스톡홀름과 함께 노벨상 시상식을 나눠 여는 곳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협정인 '오슬로 협정'의 싹을 틔운 것도 이곳이다.

오슬로 협정을 다룬 작품으로 작년 토니상 연극 부문 작품상 등 영미권 각종 시상식을 휩쓴 미국 극작가 J T 로저스(50)의 연극 '오슬로' 아시아 초연이 개막했다. 국립극단이 11월4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긴장이 극에 달한 1992년이 배경. 미국이 주도한 평화협상은 번번이 실패한다. 유혈충돌은 두 지역을 더 갈라놓는다.

비참한 현실을 지켜보던 노르웨이 부부 '라르센'과 '모나'는 오슬로에 비밀 협상 채널을 만든다. 격의 없는 분위기로 회담 관련자들의 사이는 점점 가까워지고 그들은 결국 서로가 평화를 원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토니상의 후광을 빼면 사실 '오슬로'는 관람하기로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다. 정치적인 내용을 다루는데다, 인터미션 15분포함 러닝타임이 3시간짜리 공연이기 때문이다.
[리뷰]남북관계의 타산지석, 연극 '오슬로'

하지만, 로저스의 위트가 넘치는 대사와 국립감독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이 작품을 첫 연출작으로 택한 이성열 감독의 속도감 있는 연출은 무게감을 한껏 덜어낸다.

무엇보다 '오슬로'는 정치가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많은 관객의 공감을 살 만하다. 국경, 종교 등 각종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타협이 번번이 실패한 핵심은 각자의 신념, 서로의 존재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공습과 테러로 폐허가 된 도시와 그곳에서 죽은 민족을 생각하면, 협상은 차치하고 감정부터 앞서게 됐다. 라르센과 모나는 협상에 직접 개입을 하지 않는다. 대신 협상의 공간을 만들고 막후에서 조니 워커와 함께 양쪽이 인간적으로 친해질 기회를 만든다.

여기서 빛나는 건 캐스팅이다. 라르센 역에는 창작집단 '양손프로젝트' 배우 손상규, 모나 역에는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는 전미도가 캐스팅됐다. 자유분방한 연기가 특징인 손상규는 연구소를 이끄는 사회학자지만 히피 기질이 다분한 이 역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발군은 전미도다. '번지점프를 하다' '어쩌면 해피엔딩' '닥터 지바고' 등에서 사랑스런 여성 캐릭터를 도맡은 그녀는 부러 여성성을 강조하지 않은 이 극에서도 자연스럽게 빛을 발한다. 관객들이 극을 쉽게 이해하게 내레이터를 맡는데 따듯한 시선과 관점을 불어넣는다.
[리뷰]남북관계의 타산지석, 연극 '오슬로'

모나는 이성적인 캐릭터다.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남성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남성의 이상과 편견이 부여된 전형화된 캐릭터로 소비될 수 있었으나 전미도 연기의 여백은 그런 오류의 염려를 벗어난다.

'오슬로'를 더 높이 사는 점은 이 연극이 마냥 영웅담이나 긍정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모나는 1993년 9월13일 워싱턴에서 아라파트 PLO 의장과 라빈 이스라엘 총리 사이에 '잠정 자치정부 구성에 관한 원칙의 선언'이 이뤄질 당시 자신들의 자리가 앞에 놓여 있지 않자 당황하는 라르센을 향해 "당신이 주인공이 아니다"라고 한다.

극의 마지막에서 등장 인물들은 나란히 서 오슬로 협정이 마무리 된 이후에도 양국 사이에서 빚어진 비극, 부정적 사건들을 언급한다. 평화 협상의 지난함이 여전함을 보여준다.

'오슬로'가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다. 갑작스런 한반도 평화무드를 맞이한 남북도 앞으로 얼마나 많은 험난함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가. 그 험난함을 맞닥뜨렸을 때 '오슬로' 속 라르센과 모나처럼 함께 탱고를 춰보는 것도 괜찮을 법하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