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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안보다 후퇴 '중대재해법'…"위험의 외주화 부추기는 심각한 문제"

등록 2021.01.07 17:07:10수정 2021.01.12 16: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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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위 법안소위, 중대재해법 최종안 마련했지만

소상공인 처벌 대상 빠지고 50인미만 3년 유예도

노동계 반발, 경영계도 유감…당분간 진통 불가피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강지은 기자 = 노동자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등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마련됐지만, 노동계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나오고 있다.

적용 대상과 처벌 수위가 원안보다 크게 후퇴한 데다 유예 기간까지 부칙으로 달리면서 '모든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라는 당초 취지를 훼손했다는 이유에서다. 법 제정이 무색하게 '제2의 김용균'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특히 노동계뿐 아니라 경영계도 강한 유감을 표하고 있어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5인 미만 사업장' 처벌 대상 빠져…"상당수 노동자 배제"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법안소위)가 지난 5일부터 마라톤 심사를 거쳐 이날 최종 의결한 중대재해법 제정안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원안보다 적용 대상이 크게 약화됐다는 평가다.

우선 논란이 됐던 경영 책임자 정의는 '대표이사 또는 안전관리이사'로 정해졌다. 당초 원안은 '대표이사 및 안전관리이사'로 규정했는데, 이를 '또는'으로 수정한 것이다.

소위 위원장인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선에서 끝내는 것이 맞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했지만, 노동계는 "안전담당이사를 방패막이로 내세워 대표이사가 처벌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공무원 처벌특례 조항도 빠졌다. 원안은 사업장 감독의무 위반으로 해당 공무원을 1년 이상 징역 또는 3000만원 이상 3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지만 최종안은 재해 발생을 공무원 책임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 이를 삭제했다.

특히 최대 쟁점 중 하나였던 사업장 적용 범위를 놓고 노동계의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당초 원안은 모든 사업장을 적용 대상으로 했다. 그러나 정부는 소상공인의 경우 법 적용 시 타격이 크고, 학교는 올해부터 안전관리법이 적용되고 있다며 이들을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 결과 최종안은 중대산업재해 처벌 대상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하기로 했다.

중대재해법은 중대재해를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뉘는데, 산업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1명 이상 사망한 재해로 정의한 중대산업재해의 처벌 대상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은 예외로 두기로 한 것이다.

이를 두고 노동계에선 노동자의 상당수를 배제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후퇴한 내용으로 합의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01.07.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후퇴한 내용으로 합의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01.07. [email protected]

실제로 정의당에 따르면 2018년 기준 5명 미만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 가운데 79.8%를 차지하며, 5인 미만 사업장에서의 재해 사망 비율은 연간 20%에 달한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도 "이렇게 계속 예외를 두면 법 취지가 무색해진다"고 했다.

여기에 최종안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 같이 특정 원료나 제조물 등의 결함으로 발생하는 재해를 뜻하는 '중대시민재해'의 처벌 대상에선 면적 규모 1000㎡ 미만 및 10인 미만 사업장과 학교를 제외하기로 했다.

중대산업재해든 중대시민재해든 규모가 작은 소상공인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다만 백 의원은 "5인 미만 사업주만 처벌할 수 없을 뿐이지 중대재해법이 지향했던 5인 미만 사업장의 원청업체에 대한 처벌은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한선 사라진 처벌 수위…50인 미만 사업장 3년 유예

중대재해법 처벌 수위가 원안보다 대폭 낮아진 것도 노동계는 문제삼고 있다.

우선 최종안은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에 대해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는 '2년 이상 징역 또는 5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인 정부안보다 수위를 낮춘 것으로, 징역 하한을 낮추고 벌금 하한도 없앴다. 법인에 부과하는 벌금 역시 '사망 시 50억원 이하'로 하한선을 삭제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우리가 하한형 도입을 주장한 것은 검찰과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라며 "처벌의 상한선이 높아봤자 노동자 사망 사업장에 500만원 미만의 벌금이 부과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했다.

다만 백 의원은 이에 대해 "임의적 병과가 추가돼 벌금형과 징역형을 함께 선고할 수 있는 형태로 했다"며 "그만큼 피해자 보호를 두텁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액은 정부안대로 '손해액의 5배 이하'로 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 앞서 박주민 의원은 '5배 이상'으로 이를 규정했는데 정부 입장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노동계가 강하게 반대했던 조항 중 하나인 유예적용 기간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한해 3년간 유예'를 두기로 했다.

당초 정부안은 박주민 의원의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법 적용을 4년 유예한다'는 부칙을 살리면서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법 적용을 2년 유예'하자는 대목을 추가로 담았는데, 이를 300인 미만으로 다시 확대한 바 있다.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후퇴한 내용으로 합의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01.07.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후퇴한 내용으로 합의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01.07. [email protected]

일단 정부안보다 유예기간이 소폭 줄어들기는 했지만, 이 기간 또다른 '김용균'이 재발할까 노동계는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 경영 책임자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반복적으로 적발되거나 사고를 은폐한 사실이 확인되면 중대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는 '인과관계 추정' 조항이 빠지면서 노동계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전문가들 "핵심 알맹이 다 빠져" vs "법 제정 자체 의미도"

전문가들은 당초 제정 취지를 온전히 담지 못한 중대재해법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기업의 이윤 때문에 사람이 목숨을 잃는 행태를 방지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처벌조항을 두자는 것이 중대재해법 제정의 취지"라며 "그러나 핵심 알맹이가 다 빠진 의미 없는 법이 되버렸다"고 꼬집었다.

특히 그는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에 대해 "기업이 '쪼개기'를 하는, 오히려 위험의 외주화를 부추기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은 사업장 기준이 아닌 기업 단위로 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다만 아쉬움은 많지만 법 제정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럼에도 이 법의 상징적 의미는 굉장히 크다"며 "우리 사회에 산재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던져준 것이고, 기업에도 산재 예방이 곧 투자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단순히 제재만 강화하는 형식이라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의 문제점을 다시 반복할 수 있다"며 "소모적인 제재 공방, 노사 책임 공방으로 가는 것이 아닌 모든 구성원 전부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노동계는 물론 경영계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경영계는 유감스럽고 참담함과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추가적인 입법절차를 중단하고, 경영계 입장도 함께 반영된 합헌적·합리적인 법안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법안소위 논의를 마친 법사위는 이날 오후 전체회의를 열어 중대재해법 제정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여야는 오는 8일 본회의를 열어 중대재해법 등 민생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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