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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尹 곧 정리' 녹음파일 공개 안 하는 이유는?

등록 2021.08.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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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논란 속 녹음파일 공개 시 당 분열 우려

실익 없고 맥락상 공개 불가능한 내용 담겼을 수도

선관위원장 인선 앞두고 갈등 국면 악화 피할 수도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1.08.17. myjs@newsis.com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1.08.17.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준호 기자 = '저거 금방 정리된다'는 말이 논란이 일자 심야에 녹취록 일부를 공개하면서까지 반격했던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가 당내 대선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로부터 전체 통화내역 녹음파일을 공개하라는 요구에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19일 국민의힘에선 이 대표가 녹음파일 공개를 안 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당 안팎에서는 "서로 상처만 남고 소모적인 논쟁이라 모두 얻을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 전 지사는 전날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 이 대표에게 "오늘(18일) 오후 6시까지 녹취록이 아닌 녹음파일 전체를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대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SNS에는 "딱합니다"라는 한 줄짜리 입장문을 올렸다. '정리된다'는 대상은 '갈등'이 아니라 '윤석열'이라고 주장한 원 전 지사의 반박에도 이 대표는 공개적으로 재반박하지 않고 침묵했다.

정치권에선 이 대표와 원 전 지사 간 녹취록을 둘러싼 '이(李)-원(元) 갈등'이 녹음파일 공개로 새 분수령을 맞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일단 이 대표가 정면 대응 대신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대치 국면을 더 키우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대표가 녹음파일을 공개하지 않는 배경에는 우선 당의 분열을 우려한 측면에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이 대표를 놓고 일부 대선 캠프와 최고위원, 의원들 간 충돌이 잇달아 발생하자 당 안팎에서 "자중지란", "아사리판", "내부총질" 등의 비판이 쏟아져 이 대표가 상당한 부담과 압박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국민의힘에서 최다선 중진이자 당 경선준비위원장인 서병수 의원(5선)이 "내년 대선에서 이준석 당대표 역할이 중요하다"며 지도부를 흔들지 말라고 경고하자, 일부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대선주자간 내홍도 심화되고 있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하태경 의원이 원 전 지사를 향해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이 사적 통화내용을, 그것도 확대 과장해서 공개하고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말인가"라며 경선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이에 원희룡 캠프는 "이준석 대표가 하면 불가피한 것이고, 원희룡 후보가 하면 폭로전이냐. 하 후보는 이 대표 녹취록 공개 파문 때는 무반응을 보이곤 지금 와선 사적 통화 공개는 더티플레이라고 한다"고 비판했다.

[서울=뉴시스]국회사진기자단 =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금방 정리된다’ 발언에 맞대응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하기위해 들어서며 경윤호 공보단장과 대화하고 있다. 2021.08.18.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국회사진기자단 =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금방 정리된다’ 발언에 맞대응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하기위해 들어서며 경윤호 공보단장과 대화하고 있다. 2021.08.18. [email protected]

국민의힘 재선의원들에 이어 초선의원들도 집단 성명을 내 당내 갈등 상황을 비판했고, 서울시당에선 "대표와 후보와의 설전 때문에 현기증이 난다", "친이·친박으로 양분되어 쫄딱 망했는데 벌써 잊었나" 등의 쓴소리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한 중진의원은 통화에서 "이준석 대표가 녹음파일을 공개할 경우 원희룡 후보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어서 자신 없어서 공개 안 한 것 아니겠냐"며 "그렇지 않다면 당의 분열을 의식해서 이 대표가 데미지를 감수하고도 물러선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실익이 없고 맥락상 공개 불가능한 내용이 담겨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한다. 이 대표가 녹음파일을 공개할 경우 또 다른 갈등의 불씨를 낳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과 같은 맥락이다.

원 전 지사가 일정한 '시한'을 정해놓고 녹음파일 공개를 압박한 이면에는 동일한 녹음파일을 원 전 지사가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이 대표가 녹음파일 중 민감한 내용을 일부 편집·삭제한 채 전체파일로 속여 공개할 경우 원 전 지사가 자신의 녹음파일 전체본을 공개해 이 대표를 더욱 수렁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 이 대표가 이런 점을 의식해 녹음파일 자체를 아예 공개하지 않는 쪽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앞서 이 대표는 윤 전 총장과의 통화녹취록 유출 의혹에 대해 "유출되었다는 녹취파일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당연히 유출된 녹취록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언론사 취재에 응하면서 구두로 언급한 내용이 제3자에 의해 녹취록 문건 형태로 정리된 것이라고 부인했지만, 당대표실 측에선 내부 부주의에 의한 녹취록 유출 의혹을 시인해 이 대표의 해명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당대표가 대선주자와의 통화내용을 녹음한 자체도 정치적 도의에 맞지 않다는 비판을 이 대표가 수용한 측면으로 볼 수도 있다.

윤석열 전 총장에 이어 원희룡 전 제주지사 등 당내 대선주자와 갈등을 일으키자 이 대표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우군은 많지 않은 실정이다. 홍준표 의원이나 유승민 전 의원 측이 직간접적으로 이 대표를 지원사격하고 있지만 대다수가 이 대표의 리더십에 부정적 기류가 당 내에 감돌고 있다. 

이런 시점에 갈등의 근원인 녹음파일을 공개할 경우, 갈등만 증폭될 뿐 아무런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 이 대표가 결국 녹음파일 공개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대선캠프 관계자는 "최근 이준석 대표가 윤석열이나 원희룡과 같이 특정 대선주자들과 계속 부딪치고 갈등하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상대적으로 다른 대선주자들의 존재감은 묻혔다"며 "당대표가 대선주자들을 띄워야 하는데 오히려 묻히게 만들면 어떡하라는 건가. 군소 주자들이 존재감을 내려면 노이즈 마케팅이라도 하라는 것이냐"며 불만을 나타냈다.

이 대표가 다음 주 출벌하는 당 선관위원장 인선을 순탄하게 추진하기 위해 소위 '李-元 갈등' 파장을 최소화하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선관위원장을 인선을 앞두고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당초 서병수 경준위원장을 선관위원장으로 밀어붙이려 했지만, 비공개 최고위 회의에서 서 위원장이 고사하면서 '구인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대표가 당내 대선주자들과 갈등을 쌓을수록 선관위원장 내정 과정에서 잡음이 일어날 개연성이 높아진다. 지금도 특정 대선캠프에선 이 대표의 선관위원장 인선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선관위원장 임명은 당대표의 고유 권한이라는 생각이 확고한 이 대표로선 대선주자들을 더 이상 자극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정치평론가인 신율 명지대 교수는 통화에서 "이준석 대표가 말을 어떤 식으로든 신중하게 했으면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선관위원장을 누구로 하느냐는 문제가 남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가 일부 대선주자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문제에 얽혀버리면 굉장히 어려워진다. 본인이 원하는 걸 정작 못하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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