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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료진 부족하고 약 끊길판…의료붕괴 위기"[우크라 의료지원下]

등록 2022.04.06 14:17:30수정 2022.04.11 09:4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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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없는의사회 우크라 의료 코디네이터 인터뷰

이탈리아 출신 바바라 마까뇨 내분비내과 전문의

의료물자 공급망 타격 심각…응급 의약품 부족

당뇨병 치료 인슐린도 부족…만성 질환자도 고충

중증외상 등 응급 환자 즉각 대처 의료진도 부족

코로나 확산세 줄었지만 백신접종 37.5%에 불과

[서울=뉴시스]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진이 특별 개조된 의료 열차를 통해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일까지 러시아군에 포위된 마리우폴 내에서 부상을 입거나 피란 중 부상을 입은 환자들을 자포리지야서 리비우로 이송하고 있다. (사진=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2022.04.06

[서울=뉴시스]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진이 특별 개조된 의료 열차를 통해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일까지 러시아군에 포위된 마리우폴 내에서 부상을 입거나 피란 중 부상을 입은 환자들을 자포리지야서 리비우로 이송하고 있다. (사진=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2022.04.06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지난 2월 말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의료물자 공급망이 불안정해 의약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총알이나 파편 제거, 출혈 방지 등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의료진도 부족하고요. 의료시설도 공격 받아 제한된 응급 환자 대응 여력마저 잃고 있습니다."

지난달 초부터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의료지원 활동을 조정·관리해온 국경없는의사회(MSF) 의료 코디네이터인 이탈리아 출신 바바라 마까뇨(Barbara Maccagno) 내분비내과 전문의가 전하는 우크라이나 의료 상황은 암울했다. 그는 지난 5일 서면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의료체계가 붕괴 위기에 처했다고 알렸다.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전쟁이 한 달 넘게 격렬하게 이어지면서 응급 환자의 생명줄인 의료물자 공급망도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불안정한 의약품 공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고혈압, 당뇨병 같은 만성 질환자도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 동남부 마리우폴의 산부인과 병원 등 생존에 필수적인 병원도 100곳 이상 파괴됐다.

그나마 남아있는 병원들도 대부분 전쟁 중 발생한 응급 환자에 즉각 대처할 수 있는 의료진이 거의 없다. 쏟아지는 응급 환자에 대응하기도 빠듯하다보니 다른 일반 환자들은 치료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 의료체계가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진 것이다. 러시아가 앗아간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 뿐만이 아니었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타고난 생명을 보호받고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도 짓밟혔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응급 환자 대처가 어렵다고 하던데요.

"전쟁 중 부상을 당하거나 파편을 맞는 등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환자의 수가 늘고 있습니다. 대부분 응급 치료가 필요한 환자인데, 외상 치료나 수술이 필요한 경우도 많습니다. 많은 민간병원들이 전쟁 부상자를 받기 위한 공간을 만들고 있고요. 전쟁 중 발생한 응급 환자가 많다보니 다른 일반 환자들은 우선적으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의약품 등 조달 현황은 어떤가요?

"전쟁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의료물자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의료물자 공급망이 여러 지역에서 계속되는 격렬한 전투로 인해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자를 실은 트럭이 우크라이나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우크라이나행 항공편이 없어 공수는 전혀 불가능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전쟁 전 우크라이나 보건부와 협력해 운영한 내성 결핵(DR-TB) 및 HIV 치료 프로젝트를 통해 치료받던 환자들은 약을 지속적으로 공급 받았지만, 다른 만성 질환 환자들의 경우 물자 공급망이 붕괴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미 일부 병원에서는 당뇨병 환자에게 제공할 인슐린이 부족하다고 알려왔습니다. 의료물자 부족은 대도시 병원보다 지역의 작은 병원이 더 취약하고요."

[키예프/AP=뉴시스] 지난 2월28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중부에 위치한 오흐마데트 아동병원 지하실에서 소아암 환아들이 '전쟁 중지'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2022.03.01.

[키예프/AP=뉴시스] 지난 2월28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중부에 위치한 오흐마데트 아동병원 지하실에서 소아암 환아들이 '전쟁 중지'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2022.03.01.

-응급 환자 발생에 즉각 대처할 수 있는 의료진은 얼마나 되나요?

"우크라이나에는 고도로 전문화된 숙련된 의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원은 격렬한 전투가 벌어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대규모 사상자 유입(긴급 외상 환자 유입)에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 의료진이 총알·파편 제거, 출혈 방지, 효과적인 상처 치료 등 중증외상환자 치료와 수술에 대한 최근 임상 경험이 없기 때문이죠."

-러시아의 공격으로 의료시설도 파괴되고 있어 어려움이 더 클 것 같습니다.

"지난달 초 마리우폴에서 산부인과 병원이 공격을 받아 임산부와 신생아가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의료시설에 대한 공격은 응급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제한된 역량마저 잃게 합니다. 의료시스템이 붕괴될 위기에 처한 지역에서 시민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치료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전쟁법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지역별로 피해 정도가 다른데요. 의료 대응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마리우폴이나 동부 지역 다른 도시와 같이 전투가 가장 활발한 지역에서는 총상, 파편으로 인한 부상 등으로 인한 응급 치료나 수술이 필요한 경우 즉각 대응하는 것이 가장 시급합니다. 한 예로 국경없는의사회가 처음 우크라이나 서북부 지토미르나 수도 키이우 인근 지역 병원에 팀을 파견했을 당시 전쟁이 격렬했고 수술팀은 하루에 40~50명의 부상 환자와 마주했습니다. 비교적 전투가 활발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전쟁과 관련된 직접적인 외상보다는 다른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의료 역량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지 코로나 유행 상황은 어떤가요?

"지난 2월 하루 4만3778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팬데믹(대유행)이 시작된 이래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현재 코로나19 확산세가 감소하고 있지만, 백신 접종자 비율이 전체 인구의 약 37.5%에 불과한 실정이므로 우려됩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의료 지원을 어떻게 하고 있나요?

"우크라이나 전역의 의료시설에 물자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의료물자를 계속 들여오는 동시에 지역단체와 협력해 가능한 한 병원이 가장 필요로 하는 의료물자를 신속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또 병원들이 대규모 사상자 대응과 전쟁 부상자 수술에 대비할 수 있도록 르비우, 키이우, 지토미르, 빈니차, 자포리즈카 등 여러 지역 병원들과 협력해 의료진 훈련과 지원도 맡고 있습니다."

-2003년부터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요.

"지난해 이라크 모술에서 활동할 때 국경없는의사회가 설치한 임시 병원에서 임산부 환자를 받았습니다. 이 여성은 남편이 이슬람국가 단체(IS) 소속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환자가 당장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 만이 중요할 뿐이었습니다.(국경없는의사회의 중요한 활동 원칙 중 하나는 중립성이다. 분쟁 상황에서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고, 환자가 치료가 필요하면 지원한다. 러시아와 러시아의 동맹국인 벨라루스에서 활동 중인 것도 이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분쟁 지역 환자를 치료한 경험이 많습니다. 무력 충돌은 부상, 피란, 사망을 초래하고 필수 의료서비스에 지장을 줍니다.  의료진이 피란을 떠나면 의료시스템은 붕괴됩니다. 분쟁 가운데 갇힌 사람들은 거처, 위생시설, 식량과 의료 서비스 등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기 때문에 이런 지원이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서울=뉴시스] 국경없는의사회(MSF) 의료 코디네이터인 이탈리아 출신 바바라 마까뇨(Barbara Maccagno) 내분비내과 전문의. (사진=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2022.04.06

[서울=뉴시스] 국경없는의사회(MSF) 의료 코디네이터인 이탈리아 출신 바바라 마까뇨(Barbara Maccagno) 내분비내과 전문의. (사진=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202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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