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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국가책임 표류①]"쥐꼬리 피해보상 예산…심의위 쇄신부터"

등록 2022.07.24 08:41:13수정 2022.07.24 08: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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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출범 석달째…안 보이는 '백신국가책임제'

"인과관계 심의위 구성·심의방식·운영 쇄신해야"

"의사·시민사회단체 추천인사·법조인 수 고르게"

"위원장 중심 만장일치 아닌 다수결로 바뀌어야"

백신구매예산 6조2천억…피해보상 예산은 0.47%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코로나19 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 회원들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백신 부작용 보상 강화 반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7.21.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코로나19 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 회원들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백신 부작용 보상 강화 반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7.2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석 달째에 접어들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백신 부작용 국가책임제'가 보이지 않는다. 인류역사상 전례 없는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부작용(이상반응)간 인과관계 심의에 여전히 기계적 잣대(정립된 부작용 인정 기준)만 적용되고 있다. 심지어 인과관계 입증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백신 부작용 국가책임제가 제대로 실현되려면 인과관계 심의를 담당하는 위원회의 구성부터 심의 방식과 운영까지 전면적인 쇄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백신 부작용 국가책임제는 접종 부작용에 대한 인과성 입증 책임을 정부가 지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백신 접종은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자발적 행위라기보다 국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이뤄지는 공공 정책에 가깝다는 이유다. 하지만 질병관리청이 최근 내놓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피해보상 강화 대책은 피해보상 규모만 늘렸을 뿐, 정작 중요한 '회색지대'에 놓인 피해자들의 백신접종과 부작용 간 인과관계를 입증하려는 의지는 읽히지 않는다. 회색지대란 백신 접종과 부작용 간 개연성이 있다고 여겨지지만 객관적 입증이 어려운 경우를 말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백신 부작용은 매우 다양하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환자나 피해자에게 (인과관계)입증 책임을 떠넘기는 게 맞느냐"면서 "백신 접종 피해에 대한 적극적인 보상을 공약한 윤석열 정부인 만큼 회색지대 피해자에 대해 부작용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국가가 보상할 것인지를 대책으로 내놨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질병청 산하 예방접종 피해보상전문위원회에 따르면 코로나19 예방접종 피해보상 누적 신청건수는 8만1383건(이의신청 2286건 포함)으로, 이중 5만7637건(70.8%)이 심의를 거쳤다. 보상 대상으로 결정된 것은 1만9260건(33.4%)이다.

강윤희 전 식품의약품안전처 임상심사위원(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은 "백신으로 인해 발생했을 시간적·과학적 개연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료가 불충분한 경우 백신 외에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어떠한 근거가 없다면 인과성을 인정해줘야 한다"면서 "인과관계를 인정해야 자료가 쌓이고 부작용 원인 규명에도 다가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입증하기 어렵거나 정립된 부작용 인정 기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과관계 인정 또는 입증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배경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이상반응의 인과성 및 피해 보상 여부를 결정하는 의사결정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예방접종 피해보상전문위원회가 감염병 분야 등 의료인 중심으로 구성돼 있고 사실상 위원장의 견해가 결론이 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현재 예방접종 피해보상전문위는 의사 12명·약사 1명·변호사 2명 등 총 15명으로 구성돼 있다.

의료인, 법조인, 시민사회단체 추천 인사 등을 고르게 배치해 예방접종 피해보상전문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접종 역사가 짧아 과거 백신과 달리 부작용을 정확히 알 수 없고 회색지대 피해자가 많은 코로나19 백신의 특성과 사실상 접종이 의무화된 사회적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어서다.

의료사건 전문 변호사인 신현호 예방접종 피해보상전문위 전문위원은 "백신 접종과 부작용 간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역학조사는 과학적(의학적) 평가가 기본이지만, 규범적(사회적 상식을 바탕에 둔) 평가를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투입돼야 한다"면서 "예방의학전문의 등 의료인, 시민사회단체에서 추천한 교수·종교인 등 인사, 법조인을 3분의1씩 전문위원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규범적 평가란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정부 정책에 협조해 백신을 맞은 후 부작용이 나타났거나 사망한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상식을 의미한다.

김두경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은 "지역역학조사관이나 심의 전문위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건당 3분도 되지 않는 졸속심의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면서 "피해보상전문위를 해체한 후 피해자와 희생자 가족을 심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거나 피해자 측이 원하는 전문위원을 3분의1 이상 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청주=뉴시스] 강종민 기자 =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이 19일 오전 충북 청주 질병청에서 코로나19 예방접종 후 피해보상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2022.07.19. ppkjm@newsis.com

[청주=뉴시스] 강종민 기자 =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이 19일 오전 충북 청주 질병청에서 코로나19 예방접종 후 피해보상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2022.07.19. [email protected]

김 교수는 "감염내과 중심의 전문가로 구성돼 있고,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사회적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옛날식 의사결정을 한다"면서 "과거 백신부작용 피해제도를 모든 국민이 여러 차례에 걸쳐 계속 맞을 수밖에 없는 코로나19 백신에 적용하는 것은 새로운 백신과 변화된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관료적인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현행 인과성 심의 방식은 1995년 시행된 '전염병예방법'을 근간으로 만들어졌다. 과거 예방접종은 주로 소아가 대다수 접종했던 디프테리아·백일해·파상풍(DPT)백신, 홍역 등으로 수십년간 접종해온 터라 부작용이 잘 알려져 있었고, 접종 후 사망사고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은 접종을 시작한 지 겨우 2년째에 접어들어 부작용 관련 정보가 쌓여가는 초기 단계다. 인과성 심의 방식에 변화가 필요한 이유다.

전문위원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면 인과관계를 인정하고, 피해조사반에 속한 의료인이 피해보상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피해보상위원장이 피해조사반장을 겸임하고 있다.

강 전 임상심사위원은 "보통 과반수 이상이 인과관계가 있다고 평가할 때 관련이 있다고 결론 내린다"고 말했다. 신 전문위원은 "현재 만장일치가 돼야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분위기"라면서 "수사와 재판이 분리돼 있는 것처럼 피해조사반에 투입된 의료인은 어떤 경우라도 피해보상위원회에 발을 들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역학조사 과정에서 '인과관계 없음'으로 판단한 의료인이 심의 과정에서 인과관계가 있다고 평가 내리긴 어렵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전면적인 피해보상위원회 쇄신 등을 거쳐 백신 접종과 부작용 간 인과관계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 전 임상심사위원은 "예방접종 피해보상 심의 기준 중 근거자료 불충분으로 인과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④-1은 '인과성에 개연성이 있다'고 인정해 보상하고, 백신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인과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④-2는 '인과성 가능성이 있을 경우'로 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 전문위원은 "코로나19가 인류역사에서 처음으로 출현했는데, 정부가 (인과관계를)피해자에게 입증하라고 하는 것은 결국 구제를 거부하는 것과 똑같다"면서 "④-1을 ③번(인과성에 가능성이 있는 경우로)으로 올려야 한다"고 했다.

한편, 질병청에 따르면 정부가 코로나19가 발생한 첫 해인 2020년부터 올해까지 코로나19 백신 구매를 위해 투입한 예산은 총 6조2천억 원 가량에 달한다. 반면 현재 예방접종 피해보상 및 지원을 위해 확보한 예산은 약 292억 원 수준으로, 백신 구매 예산의 212분의1(0.47%)에 그친다. 신 전문위원은 "예방접종 피해보상 예산을 적어도 1조 원은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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