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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전 장기화에 러시아 문학도 휘청…학계·출판계 비상

등록 2022.10.1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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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외화 거래 제한에 원서 확보 등 난항

저작권 보호기간 만료된 작품 출간이 주 이뤄


[키이우=AP/뉴시스] 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성 미카엘 대성당 앞에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파괴된 러시아 전차들이 진열돼 있다. 2022.06.08.

[키이우=AP/뉴시스] 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성 미카엘 대성당 앞에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파괴된 러시아 전차들이 진열돼 있다. 2022.06.08.


[서울=뉴시스]신재우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이 문학계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2월 말 시작된 침공이 8개월 차에 접어들며 러시아 문학을 다루는 학계·출판계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금융 제재로 외화 거래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며 연구와 출판 등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어서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 교전이 장기화하면 러시아 문학에 대한 연구나 수입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며 향후 상황이 악화할 수 있음을 우려했다.

연구 분야, 러시아 현지 방문 어려워…"새로운 작품 발굴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

연구 분야에서는 러시아 현지 방문이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사태가 장기화하며 국내에서 러시아 원서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아 연구자들의 어려움이 크다.

슬라브문학 박사 학위를 가진 정보라 작가는 15일 뉴시스에 "개별 연구자가 러시아로 가서 책을 가져오는 것이 어려워졌다"며 "새로운 작품을 발굴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 작가는 러시아·폴란드 문학 전공자로 20년 이상 러시아 문학을 번역한 베테랑 번역가이기도 하다.

정 작가에 따르면 러시아 문학의 경우 검열 등으로 여러 판본이 존재하고 정식 출간이 아닌 지하 출판으로 유통된 작품도 있어 러시아 현지 도서관에서 이를 비교하지 않으면 연구와 번역에 정확성이 떨어질 수 있다.

현지 방문이 완전히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다. 박종소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로 연구가 완전히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다"라며 "침공과 코로나19가 겹치며 인적 교류가 없어진 것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현지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도 존재해 튀르키예 등을 통해 러시아로 입국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의 설명대로 현재 여러 대학의 전공생 중 소수는 러시아에서 유학 중이다. 다만 금융 제재로 인해 카드 거래가 되지 않고 한국 계좌와 연결이 되지 않아 위안화를 가져가 루블화로 환전하는 등 금전적인 불편함이 뒤따른다.

[서울=뉴시스] 올해 출간된 러시아 문학 작품 (사진=빛소굴, 문학동네, 디자인이음 제공) 2022.10.1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올해 출간된 러시아 문학 작품 (사진=빛소굴, 문학동네, 디자인이음 제공) 2022.10.1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출판 분야, "유럽 에이전시 없이 러시아 문학 계약 어려워"

러시아 문학을 출간하는 출판사들은 판권 계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 현지와 직접 거래가 어려운 만큼 유럽 등의 도시에 있는 에이전시를 통해 작품을 계약하는 방법 외에 합법적으로 러시아 현대문학을 계약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러시아 출판사와 계약 논의를 했는데 중국 계좌 등을 이용한 비정상적인 방법을 제안해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번역지원금 지급에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러시아 현대문학을 출간하는 현대문학 출판사 측은 "작품 출간을 준비하며 번역지원금을 신청하려고 했는데 지급이 즉시 이뤄지기 어려울 것 같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러시아문화원은 지금까지 해당 국가의 작품을 번역해 출간할 때 문화원 선정 작품에 대해서 일정 금액의 번역지원금 지원해왔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에서 직접 송금이 어려워짐에 따라 지원금 지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러시아 소설 출간을 준비 중인 은행나무 출판사 관계자는 "경제 제재가 없었다면 이미 번역지원금이 입금됐을 텐데 외화 거래 문제로 아직까지 입금받지 못하고 있다"며 "지원금이 출간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문제는 아니지만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최근 출판계에서는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된 러시아 문학 출간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저작권 보호기간이 저자 사후 70년인 만큼 1952년 이전에 사망한 작가의 작품은 판권 계약 없이 번역 작업만 거쳐 출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출간된 보리스 사빈코프의 소설 '창백한 말,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은 모두 저작권 보호 기간이 만료된 작품들이다.

다수의 출판계 관계자는 "한동안 이러한 출판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1952년 이전에 사망한 러시아 작가의 작품 출간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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