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인터뷰]꿈에 나온 아빠, 딸에게 "고맙다"…택시기사 사망 100일

등록 2024.01.14 06:00:00수정 2024.01.14 09:54:06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11일 첫 재판후 고 방영환씨 딸 희원씨 뉴시스 인터뷰

"일상 뒤집어져…'아빠 이게 맞는 거야?'"

"힘겨웠던 100일…아빠의 "고맙다"에 힘"

"연내 장례는 물거품…해성운수 처벌은 꼭"

[서울=뉴시스] 14일은 임금 체불에 항의하고 완전월급제 도입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다 분신해 숨진 택시기사 고(故) 방영환씨의 사망 100일이다. 뉴시스는 지난 11일 고인의 딸 희원(32)씨를 만나 그간의 얘기를 들었다. 사진은 딸 희원씨의 휴대폰에 저장된 고인의 생전 모습. (사진 제공=방희원씨) 2024.01.1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14일은 임금 체불에 항의하고 완전월급제 도입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다 분신해 숨진 택시기사 고(故) 방영환씨의 사망 100일이다. 뉴시스는 지난 11일 고인의 딸 희원(32)씨를 만나 그간의 얘기를 들었다. 사진은 딸 희원씨의 휴대폰에 저장된 고인의 생전 모습. (사진 제공=방희원씨) 2024.01.1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홍연우 오정우 기자 = "우리는 음식, 풍경, 친구들과의 일상 사진이 많잖아요? 아빠는 죄다 집회 사진뿐이라 마음이 안 좋았어요. 그래도 시위하는 사진이 아닌 게 딱 한 장 있길래 제 휴대폰에도 저장해뒀어요."

임금 체불에 항의하고 완전월급제 도입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다 분신해 숨진 택시기사 고(故) 방영환씨의 딸 희원(32)씨가 휴대전화 사진첩을 열어보이며 한 말이다.

희원씨는 "아빠가 돌아가신 뒤 유품 정리를 하러 갔는데 방에 인화된 사진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나마 있는 건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 몇 장이 다인데, 그마저도 죄다 집회하시는 모습뿐이었어요"라며 이 사진이 몇 안 되는 부친의 일상 모습이라고 했다.

손하트 포즈를 하며 웃고 있는 사진 속 고인은 이때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점퍼를 입고 있었다.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해성운수 분회장이었던 방씨는 추석 연휴 이틀 전인 지난해 9월26일 오전 8시30분께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전신 60% 이상에 3도 화상을 입고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진 고인은 분신 열흘 만인 지난해 10월6일 오전 6시18분께 사망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석 달이란 시간이 흘렀고, 해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장례는 치러지지 않은 상태다. 지난 11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 인근 카페에서 딸 희원씨를 만나 그간의 얘기를 들어봤다.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2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방영환 열사 투쟁승리를 위한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서울고용노동청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2023.11.02. jhope@newsis.com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2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방영환 열사 투쟁승리를 위한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서울고용노동청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2023.11.02. [email protected]



"아빠 사망 이후 일상 뒤집어져…'아빠 이게 맞는 거야?' 물어보고팠다"

희원씨는 담담한 목소리로 "아빠의 사망 이후 일상이 완전히 뒤집어져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어릴 때 헤어져 얼굴조차 제대로 모르고 살았던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은 날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희원씨는 아버지의 사망 당일 오전 8시께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직장에서 야간근무를 하고 퇴근해 막 잠에 들려던 참이었다. 희원씨는 그 자리에서 한참이나 '장례 비용' '무연고자 장례' 등을 검색했고, 결국 장례를 치러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어찌됐든 저에겐 하나뿐인 아빠"라고 힘주어 말했다.

장례 절차를 알아보다 병원 관계자로부터 분신 사실을 들은 희원씨는 포털사이트에서 아버지 이름을 검색해 찾은 기사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봤다. 투쟁의 길로 들어선 첫 날이었다.

출·퇴근, 친구들과의 약속 등으로 이뤄져 있던 희원씨의 평범한 일상에 이젠 기자회견과 결의대회, 추모 문화제 등이 자리하게 됐다.

그는 "처음에는 잠도 제대로 못 잔 상태로 결의대회 가서 행진하고, 그 후에 출근하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입술이 다 터지고 살이 많이 빠졌다. 기자회견 추모 문화제 등 일정마다 발언을 하는 것도 부담돼 늘 하고 싶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며 "그땐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11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앞에서 열린 '완전월급제 이행! 택시노동자 생존권 보장! 방영환 분신 사태 책임자 처벌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택시 노동자 방영환 분회장을 죽음으로 내몬 택시발전법 등 위반 관련 서울시 택시 사업장 전수조사 진정서접수 기자회견에서 고 방영환 분회장의 유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10.11. bluesoda@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11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앞에서 열린 '완전월급제 이행! 택시노동자 생존권 보장! 방영환 분신 사태 책임자 처벌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택시 노동자 방영환 분회장을 죽음으로 내몬 택시발전법 등 위반 관련 서울시 택시 사업장 전수조사 진정서접수 기자회견에서 고 방영환 분회장의 유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10.11. [email protected]



"눈·비 맞아가며 싸운 힘겨운 100일…아빠의 "고맙다" 한 마디에 힘"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힘들어 괴로운 날도 있었다. 투쟁이 길어지면서부터다. 희원씨는 "마음 같아선 아빠에게 '나 계속 이렇게 아빠 (시신이) 썩어가게 두더라도 아빠의 한을 풀어주는 게 맞는 거야? 아니면 그래도 시신만은 온전하게 잘 보내드리고 그 다음에 싸우는 게 맞는 거야?'라고 물어보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고달프고 서러운 100일이었지만 그래도 힘이 나는 순간들이 있었다. 희원씨가 가장 먼저 떠올린 순간은 해성운수 대표 정모(52)씨의 구속영장이 청구된 날이다. 지난해 12월11일 정씨는 근로기준법 위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모욕, 상해, 특수협박 등 혐의로 구속됐다. 일주일 뒤인 같은 달 18일 그는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씨가 구속된 날, 평소 꿈을 잘 꾸지 않는 희원씨가 꿈을 꿨다. 꿈에는 얼굴이 반으로 갈라진 온전치 않은 모습의 고인이 나왔다. 희원씨는 꿈에서 만난 아버지의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고 "아빠, 사랑해"를 되뇌었다. 고인은 이에 화답하듯 연신 "고맙다. 정말 고마워"라고 했다. 잠에서 깬 희원씨는 그간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을 하고, 거리에서 눈과 비를 맞아가며 떨고…그 모든 게 (아빠에게) 이 말을 들으려 그랬나 보다 싶었어요." 희원씨의 말이다.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2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방영환 열사 투쟁승리를 위한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에서 한 조합원이 고 방영환 씨 사진을 만지고 있다. 2023.11.02. jhope@newsis.com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2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방영환 열사 투쟁승리를 위한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에서 한 조합원이 고 방영환 씨 사진을 만지고 있다. 2023.11.02. [email protected]



"결국 연내 장례는 못 치렀지만…해성운수 처벌만은 꼭 이룰 것"

결국 고인의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로 2024년이 밝았다. 연내 장례를 치르겠다던 희원씨의 작년 다짐은 물거품이 됐지만, 혹여나 투쟁이 더 길어지더라도 이루고 싶은 단 하나의 목표는 바로 해성운수 처벌이다.

희원씨의 말에 따르면, 고인의 유서와 통화 내역 등은 온통 해성운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생전 마지막 통화에서도 그는 "해성운수 대표 처벌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인터뷰를 한 11일은 정씨의 첫 재판이 열린 날이기도 하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0단독 최선상 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정씨가 모습을 드러내자 방청석에선 "아직도 반성 안 하냐"는 야유가 터져나왔다.

정씨 측은 일부 혐의를 부인하며 보석을 신청했다. 변호인은 "분신 사망을 피고인 책임으로 몰아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버지를 그렇게나 괴롭혔던 해성운수 대표를 처음 본 심정은 어땠을까. 희원씨는 정씨가 "'멍한 사람' 같아 보였다"고 했다. 그는 "차라리 번듯하고 똑부러지는 사람이었다면 '저렇게 똑똑한 사람을 어떻게 당해 내냐'고 스스로 위로 아닌 위로라도 했을 텐데, 그마저도 아니라 오히려 더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씨 측 변호사도 혐의 사실을 일부 부인한다고 말할 때 사건 발생 일지를 다 틀리게 말하더라. 아빠에 대한 폭행과 협박은 2023년도에 이뤄진 일인데, 어째서 2022년도라고 말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말미 희원씨는 "아빠 유품을 정리했는데도 아직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아직 장례를 못 치러 그런 거 같다"고 고백했다. 14일은 고인이 사망한 지 100일이 되는 날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