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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한국산악회 기탁유물 자료집 발간

등록 2024.03.20 13: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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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1947년 8월 제1차 울릉도학술조사대 대원들 (사진=동북아역사재단 제공) 2024.03.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1947년 8월  제1차 울릉도학술조사대 대원들 (사진=동북아역사재단 제공) 2024.03.2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민간단체 조선산악회는 1946년 가을 국토구명사업 일환으로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처음 논의하고, 이듬해 1947년 8월 과도정부의 독도조사단과 제1차 학술조사단을 떠났다.

1948년 한국산악회로 개명한 산악회는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로 일본 독도 영유권 주장이 거세질 것이 예상되자 두 번째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추진했다.

이어 1953년 일본의 불법 독도 침입에 대응하고 1952년 제2차 조사에서 수행하지 못했던 학술조사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다시 울릉도·독도 학술조사에 나섰다.

동북아역사재단이 발간한 자료집 '1947 ~1953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가다'는 한국산악회가 기탁한 울릉도·독도 학술조사 자료가 담겼다.

1947년 8월 최초로 실시된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는 조선산악회가 주축이 됐고 독도조사단을 파견한 우리 정부의 협조로 진행됐다. 민관의 협력으로 이뤄진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는 1952년과 1953년에도 이어졌다.

이 자료집에는 지난해 개최한 재단 독도체험관 기획전시 '1947,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가다'를 바탕으로, 재단이 진행한 울릉도·독도 학술조사 연구 성과와 전시에서 소개되지 못한 자료가 실렸다.

한국 현대사 흐름 속에서 이뤄진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정리한 연표, 학술조사의 계획 과정, 멀고 험난한 여정, 학술조사의 활동과 그 성과를 국민에게 보고한 내용으로 구성됐다.

1953년 제3차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단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매일의 날씨와 여정, 본인의 감정을 남긴 김연덕 옹의 '독도행각' 원문도 담았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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