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열악한 근로환경 탓…직업병 '소음성난청', 정부 대책마련 시급
【서울=뉴시스】소음성난청 '직업병' (그래픽=윤정아 기자) [email protected]
#2. 8년째 트럭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는 나성실(45·가명)씨는 최근 병원에서 소음성난청 판정을 받았다. 담당의사는 창문을 열고 수 시간 동안 운전을 한 것이 소음성난청의 원인이라고 했다. 열린 창문으로 왼쪽 귀에 직접 소음이 전달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씨는 이에 따른 국가의 보상을 받긴 어렵다고 토로했다. 열악한 근로환경 때문에 소음성난청이 됐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힘든 이유에서다. 나씨는 "운전을 하면서 귀마개를 할 수도 없고 난감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익숙해진 소음 환경 탓에 자신의 귀가 병들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제조업과 광업 등 주로 소음에 노출된 근로자들이 바로 그 대상이다. 최근에는 지하철 기관사나 트럭운전기사 등도 소음성난청으로 고통받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열악한 소음 작업환경 근로자들에게 귀마개 등 방음 물품을 지급하도록 공시하고 있으나, 직업병 소음성난청 환자수는 눈에 띄는 증감치 없이 계속 200명을 웃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통계자료를 보면 직업병 소음성난청 환자수는 2006년 272명, 2008년 220명, 2010년 266명 등으로 개선이 안되고 있는 것으로 4일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근로자들이 소음성난청의 발병 원인을 작업장에서 찾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김규상 직업병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소음 작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귀에 이상이 있다고 해도 근로환경이 원인이란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자신이 산재보험법의 대상이 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음 환경 근로자들을 위한 제도적 정비는 돼 있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게 사실"이라며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한 가정불화 등 2차적 문제까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군인들의 사정 또한 마찬가지다. 공무원연금법 아래 공무상 재해에 대한 보호는 받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소음성난청의 원인을 군 생활에서 찾는 이들은 드물다. 청력보호 프로그램 마련 등 사전 예방 여부에 대한 문제가 꾸준히 지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훈련병 시절 소음성난청 판정을 받은 김심해(23·가명)씨는 "사격훈련 당시 귀가 멍한 느낌이 들어 교관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그 교관은 1주 정도 있으면 다 낫는다며 오히려 나에게 엄살이 심하다고 나무랐다. 결국 증상이 심해져 군병원을 찾았고 소음성난청 진단을 받았다"고 호소했다.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던 연씨는 "막상 사격훈련에 들어가면 귀마개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분위기"라며 "당국이 장병의 귀 건강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강원도에서 군생활을 했다는 최인균(33·가명)씨는 "귀마개를 지급받은 적이 없다. 소음이 너무 심해 총알로 귀를 막고 사격을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울산=뉴시스】장지승 기자 = 11일 오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엔진조립부 R엔진 공장이 분주히 돌아가고 있다. 현대차 엔진공장은 지난 8일 신모씨의 분신으로 인해 10일 오후 1시부터 조업이 중단됐으나 노사 협의로 11일 오전 9시부터 재가동됐다. [email protected]
그는 "문제제기를 할 경우 군 당국은 '귀마개를 필수로 지급하고 있으며, 장병들에게 반드시 착용하도록 한다'고 이야기할 것"이라며 "하지만 실제로 이행되고 있는지 여부는 확인이 어렵다"고 밝혔다.
최근 새로운 소음성난청 환자로 대두되고 있는 지하철 기관사나 트럭운전기사 등은 산재보험법의 보호를 받기도 어렵다.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인해 소음성난청이 됐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정부는 하루 8시간 작업을 기준으로 85㏈(데시벨) 이상의 소음이 발생하는 곳을 소음 작업장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하철 기관사는 차치하고라도 트럭운전기사는 이 같은 조건에 부합되기 어렵다.
서울아산병원 정종우 이비인후과 교수는 실제로 소음성난청 환자 중 현역 군인과 예비역 다음으로 트럭운전기사가 많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국가는 트럭과 같이 특정되지 않은 곳을 소음 작업장으로 지정하지 않는다"며 "사실 트럭은 문을 닫고 운전할 경우 소음이 크지 않지만 엔진 소리 등도 귀 건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에 따라 90㏈의 소리를 2시간만 들어도 귀가 나빠질 수 있다"며 "국가에서 정한 기준은 이같은 사실을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소음성 난청 예방을 위한 관련 당국과 업계의 관심도 촉구했다. 책임을 회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 공시에 따르면 소음 작업장으로 지정된 사업장은 근로자들에게 귀마개와 귀덮개 등 청력보호구를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공시일 뿐, 법적 효력을 갖지는 않는다. 사실상 방음 물품 지급 및 착용도 회사 법규에 따라 달라진다는 얘기다.
결국 열악한 환경 탓에 어쩔 수 없이 소음을 들어야 할 경우, 자신 스스로 청력보호구를 챙기는 수밖에 없다.
정 교수는 "직업병 소음성난청 환자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며 "각 사업장에서 소음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소음성난청의 경우 회복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재활치료도 따로 없기 때문에 여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청력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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