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新문화공간 '심야책방'···"퇴근길 책 한잔 어때요"
【서울=뉴시스】채윤태 기자 = 밤에 운영하는 심야 서점인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밤의 서점'. 2017.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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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안 하는 한국사회'에서 밤의 서점 점차 인기
"디지털 세대에게 책 읽기가 아날로그적 취미로"
"퇴근 뒤 회식 대신 예쁘고 편안한 책방에서 여가"
【서울=뉴시스】채윤태 홍지은 기자 = 해가 떨어진 지도 꽤 지나 캄캄한 밤 10시. 활기찬 서울 연남동 밤거리에서 조금 벗어난 연희동 한 주택가에 밤에만 열리는 '심야 책방'이 있다. 스마트폰 지도들 봐도 한참을 찾아야 발견할 수 있는 골목에 '밤의 서점'이라 쓰여진 입간판이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조용한 길거리 만큼이나 서점 분위기도 차분하다. '끼익' 문소리와 함께 손님이 서점 안에 들어서도 점장은 "어서 오세요" 인사만 건네고 다시 독서에 집중한다. 이곳을 찾은 다른 손님들도 말없이 진열된 책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적당한 책을 고르면 앉아서 읽는다.
많지는 않지만 다양한 분야의 책이 꽂혀있다. 우리나라 작가들의 시가 모여진 책장의 한구석에는 '이 작가의 시가 처음이라면 이 시부터 읽어보라'는 추천 메모가 붙어있다. 다른 서점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던 책들도 보인다. 역시 책 옆에 붙어있는 서점 주인의 추천 글이 낯선 책을 한 번쯤 뽑아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이 서점 단골이라는 대학원생 이찬영(29)씨는 "수업이나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책을 하나 읽고 싶긴 한데 일반 서점으로 가면 늦은 시간"이라며 "밤의 서점은 이름대로 '밤'에 여는 서점이라 마음 편하게 간다"고 말했다.
이씨는 "보통 대형 서점에는 책이 너무 많아서 무슨 책을 사야 할지 고민된다. 하지만 밤의 서점은 밤에 편하게 와서 추천해 주는 책을 골라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단골이 된 이유를 설명했다.
◇주 고객층 2030 생활 패턴 맞춰 야간 영업
이 같은 심야서점들은 주로 골목, 지하 등 눈에 잘 안 띄는 곳에 있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점차 입소문을 타며 알려지고 있다. 주 고객층은 '2030' 젊은 학생, 직장인이다. 이들의 일상 패턴에 따라 늦게 열고 늦게 닫다 보니 '심야서점'이 된 것이다.
밤의 서점 남지영 점장은 "처음부터 심야에 영업하려고 '밤의 서점'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은 아니었다. 옆 건물의 공사 시간을 피하기 위해 늦게 영업하게 된 것"이라면서도 "주로 찾는 20대 학생, 30대 직장인들이 퇴근 후에 더 많이 오게 됐다. 영업시간 자체는 줄었지만 손님은 낮에 영업하던 때보다 줄지 않았다"고 전했다.
금요일 밤에 밤샘 영업을 하며 '심야책방' 이벤트를 실시하는 서점 북티크 박종원 대표는 "여기가 지하라서 지나가다가 들어오는 곳이 아니라 진짜 책을 읽겠다고 각오하고 오는 공간"이라며 "2030 여성분들, 직장인 비율이 꽤 높은 편"이라고 밝혔다.
강남구 논현동 1호점에서 시작한 북티크는 그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서교점까지 확장했다.
◇독서 안 하는 한국인···그럼에도 '심야서점'은 늘어
【서울=뉴시스】채윤태 기자 = 서대문구 연희동에 위치한 '밤의 서점'의 랜덤 책 추천 이벤트 '블라인드 데이트'. 2017.10.09. [email protected]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서를 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게다가 점점 더 책을 읽지 않는 추세다. 유엔(UN)이 2015년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그해 한국인의 독서량은 192개국 중 166위로 최하위권에 속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2015년 1년 동안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성인이 전체의 34.7%를 차지했다. 성인의 독서율은 2007년 76.7%에서 2015년 65.3%로, 하루 평균 독서시간은 2010년 31분에서 2015년 23분으로 떨어졌다.
종이책을 찾는 사람들은 더 줄었다. 종이책 독서율(1년간 종이책을 1권 이상 읽은 비율)은 2007년 76.7%에서 2015년 65.3%로 감소했다. 전체적인 독서량의 감소와 더불어 전자책의 대중화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밤의 서점과 같은 심야서점, 책 술집 등의 동네서점들은 증가하고 있다. 어플리케이션 '동네서점'을 운영하는 퍼니플랜에 따르면 지난 2015년 9월1일부터 올해 7월31일까지 전국에서 운영 중인 서점 257개 중 올해 개점한 곳은 31개로 집계됐다. 일주일에 약 1개꼴로 개점한 셈이다.
◇심야서점에는 책만 있는 게 아니다···술·강연 등 재미 요소
심야서점들은 책 이외에도 저마다의 재미 요소를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밤의 서점 한쪽에는 '블라인드 데이트'라는 코너가 있다. 책을 종이봉투에 담아 표지나 제목을 가리고 점장의 추천 문구만으로 책을 구매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책일까'하는 설렘을 갖고 책을 구입하게 되는데, 이 서점의 특징인 '책 추천'을 특화시킨 코너다.
또 이 서점에는 손님들이 직접 책의 필사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다. 원하는 만큼, 원하는 펜으로 필사를 하고 일어서면 다음 손님이 그 필사를 이어가는 방식이다. 남 점장은 "책을 훑어보다가 사지는 않고 필사만 하고 가는 손님도 있다"고 귀띔했다.
북티크에서는 독서뿐만 아니라 저자의 강연도 들을 수 있다. 북티크 박 대표는 "'북티크 작가 인사이드'라는 작가 초청 강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작가들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퇴사 준비생의 도쿄' 저자인 이동진씨, '창업가의 일' 임정민 저자 등의 강연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서울=뉴시스】주류를 판매하는 '심야서점' 서대문구 연희동 책바. 2017.10.09. (사진=책바 페이스북 페이지)
술을 즐기며 책을 읽는 형태의 심야 서점도 인기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책바(Chaeg Bar)', 마포구 염리동의 '퇴근길 책 한잔' 등이다. 책 추천, 영화 상영, 인디밴드 공연 등의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책도 '굿즈'가 되는 시대···독서 공간 넘어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심야서점을 찾는 2030 손님들이 독서만이 아닌 '서점 문화' 자체를 즐기게 되면서 이같은 형식으로 진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밤의 서점 남 점장은 "윗세대에게 책을 읽는 다는 것은 하나의 취미라기보단 생활이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밤에 책을 꺼내 읽는 일상적 독서가 굳이 '취미'로 분류되지 않았다"며 "그러나 이제 디지털이 익숙해진 2030 세대에게 독서나 책을 읽는 행위는 하나의 새로운 아날로그적 취미, 유행이 된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전공 교수는 "책을 소비하는 방식이 좀 바뀌었다. 과거에는 책이 지식을 전달하는 매개체였다면 지금은 패션 아이템 같은 굿즈(goods·열성 팬을 위한 상품)가 됐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과거에는 회식 문화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정규직 비율이 굉장히 줄었고 회식 문화가 뚜렷하게 감소했다. 일반적으로 퇴근 이후에 시간을 보낼만한 마땅한 방법들이 없어졌다"며 "그래서 심야서점이 생긴 것이고 술을 마시고 노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게 생산적이라고 생각해 건전하게 퇴근 이후 시간을 즐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거주 환경 측면에서도 2030 젊은 층이 집에 가서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환경이 안 되니까 서점, 책방 등으로 밤에 나오는 것"이라며 "자신이 사는 원룸이나 자취방보다 카페나 서점은 인테리어가 예쁘고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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