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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아트클럽]무채색에 깔린 '사느냐 죽느냐'…이봉열 화백 '공간 여정'

등록 2017.10.24 16:40:09수정 2017.11.14 10: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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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봉열, 공간 - 7508, 1975, 캔버스에 아크릴, 145x145cm

【서울=뉴시스】이봉열, 공간 - 7508, 1975, 캔버스에 아크릴, 145x145cm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감정을 배제하는 쪽으로 나가보자…, 어떤 때는 아무것도 없는 벽면을 보아도 무언가가 와 닿는 것이 있거든. 살면서 느끼는 것이 많이 있는데, 그 삶의 느낌에서 오는 거라고 해야겠지. 예술이라는 게 직접적인 것 보다는 뭔가 절제된 것, 없는 것 안에서 발견하는 거지.”

  이봉열(80)화백 개인전이 '공간 여정'의 타이틀로 서울 삼청로 현대화랑에서 25일부터 열린다.

 단색화 열풍으로 뒤돌아본 현대화랑의 원로 작가 발굴 전시다. '단색화 대가'로 우뚝 선 박서보·정상화 화백처럼 이봉열화백도 면벽수행하듯 단색과 그리기에 천착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출신(1957~1963)으로 1961년 국전에서 수상하면서 당시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1972년 34세에  국전 추천작가상을 수상하고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한 '스타 작가'였다.

 1970년대 파리 유학시절에 한국의 창호문양에서 영감을 받아 기하학적 분할을 기반으로 하는 ‘격자 구조’에 관심을 갖고 구성적 추상 작업을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는 점차 격자구조에서 벗어나 격자를 해체하는 형태가 나왔고 1990년대부터 2000년대 그리고 2017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자를 완전히 벗어나 화면과 작가를 일체화하는 작업을 하며 예술혼을 이어왔다.

 “그 전까지 구성적인 질서를 찾으면서 한계를 느꼈어. … 그래서 되도록이면 더 추상적으로 풀어보자, 틀에 묶이기 보다는 마음대로 하면서.”

【서울=뉴시스】이봉열 화백. 사진:현대화랑 제공

【서울=뉴시스】이봉열 화백. 사진:현대화랑 제공


 이번 전시는 이봉열 화백이 현대화랑에서 27년만에 여는 전시로 7회 개인전이다. 1982년 현대화랑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인연이 이어져 1990년 4회 개인전을 연바 있다.

오랜만에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 현대화랑은 이 화백의 1970년대 격자구조 작품들과 1980년대의 서정적 기하추상 작품, 흔적을 화면에서 지워내는 1990년대 작품 이후 최근의 작품까지 20여점을 전시한다.

  '형태없는 작품'을 통해 팔순의 화백이 보여주는 것은 "살아서 회화를 한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의 캔버스는 이제 이어질 듯 끊어지고, 나타날 듯 소멸되는 것들, 선인 듯 선이 아닌 듯한, 터치와 제스처의 중간, 미(美)와 실존의 모호한 경계 자체가 된다."(심상용 평론가)

【서울=뉴시스】이봉열, 무제공간 - 025, 2002, 캔버스에 혼합매체, 120x200cm

【서울=뉴시스】이봉열, 무제공간 - 025, 2002, 캔버스에 혼합매체, 120x200cm


 
  그림인 듯 아닌 듯 간명한 단색화같은 이 그림에 대해 심상용 미술평론가는 "이 회화는 과거에 속박되지도 미래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하도록 촉구하는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그저 끊임없이 이전과 이후의 사이에서 서성이는, 매 순간 가장 기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내려지는 결정들만을 따름으로써 묵묵히 실존을 입증하는 숙연한 현재가 있을 뿐"이라고 평했다.

 정병관 미술평론가는 "이 화백의 그림은 말레비치(Kazimir Malevich)가 ‘세계는 공허하고 표현할 것이 없다’고 하던 심정과 일치한다"고 했다.

 "백색 위에 백색 그림을 네모꼴로 그려놓았지만, 그 윤곽이 세계를 한정시키는 일밖에 한 일이 없다. 이봉열은 말레비치의 사각형도 그리지 않는다. 햄릿이 ‘살아야 하느냐 죽어야 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한 영원히 주저하는 심정이 화폭 위에 깔려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의 화면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알 수 없다는 대답이 나오기 일쑤"라면서 "오히려 그림 앞에서 명상을 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이타주의(利他主義)’의 심성을 기르는 것이 낫다"고 했다.

 명상이 예술가와 감상가의 마음을 비우는 겸허함을 가르쳐 준다면, 예술은 종교에 접근되는 선한 마음을 인간에게 부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차원에서 이 화백의 작품이 그렇다는 얘기다.

【서울=뉴시스】이봉열, 무제공간 - 025, 2002, 캔버스에 혼합매체, 120x200cm

【서울=뉴시스】이봉열, 무제공간 - 025, 2002, 캔버스에 혼합매체, 120x200cm


 그리고 지우고 버리고 절제된 무채색으로 나온 그림같지 않은 그림의 진가는 직접 봐야 느낀다. 묵묵히 실존을 입증하는 내공이 담긴 좋은 그림은 말이 필요없다. 한번에 딱, 몸이 반응한다. 물론, 그날 컨디션과 타이밍도 중요하다. 전시는 11월26일까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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