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폐지 피하고 싶긴 한가…여성가족부 향한 유감
[서울=뉴시스]권신혁 기자 = "동네 통장도 이렇게 오래 비워두진 않습니다."
지난달 30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의 여성가족부 국정감사에서 야당 간사 김한규 의원의 발언이다. 여가부 장관 공백이 9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날 심지어 여당 의원들도 조속한 임명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결국 여가위 전체가 장관 없이 감사가 진행된 것에 정부를 향해 유감을 표하기로 했다.
그런데 정작 여가부는 유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 하다. 장관대행인 신영숙 여가부 차관은 장관 공백에도 '차질 없이' 업무 수행 중이라고만 답했다.
올해 여가부의 행보를 살펴보면 '차질'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특히 범부처 협력이 요구되는 딥페이크 성범죄, 교제폭력 등 여성폭력 대응에서 도드라진다.
올해 딥페이크 성범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8월부터 10월까지 신 차관은 모든 부처와 대통령이 함께하는 국무회의에서 딥페이크 관련 발언을 하지 않았다. 대통령 보고사항에도 딥페이크는 빠져있었다.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국제 공조 체계 '부다페스트 협약'의 국내 이행 논의 자리에도 여가부는 없었다. 사회 주요 현안을 다루는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도 별반 다를 것 없다.
이전에도 5월 개최된 디지털 성범죄 관련 당정협의는 여가부 없이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법무부, 경찰청으로만 구성됐다.
교제폭력은 어느새 잊혀진 사안이 됐다. '강남역 교제살인' 등 교제폭력이 끊임없이 기승을 부렸으나 법무부, 경찰청과 함께한 실무협의체는 8월 열린 첫 회의가 전부였다. 교제폭력 예방책을 논하기 위해 꾸려진 여성폭력방지위원회 제2전문위원회도 5월 첫 회의 후 단 한 차례도 개최되지 않았다.
여성폭력의 주무부처임을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언론 대응에 미적지근한 태도로 일관하기도 했다. 교제폭력 대응 방안은 브리핑도 없이 보도자료 하나로 처리됐다. 이달 초 발표된 범부처 딥페이크 대응 방안과 관련해 사전 브리핑도 없었다. 국조실 브리핑 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것에 그쳤다. 자료를 미리 배포하고 사전 브리핑을 진행한 교육부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차관은 타부처에선 정례 행사로 자리 잡은 기자간담회도 개최한 바 없다. 여가부의 정책, 향후 계획 등을 출입기자단과 허심탄회하게 논할 의사는 없어 보인다.
장관 공백에 책임을 전가할 생각도 없다. 여가부는 9개월 간 대통령실, 여가위 등에 장관 임명 건의를 하지 않았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조속히 장관을 임명할 것을 촉구하며 힘을 실어줬는데도 말이다.
장관 자리만 비어있는 것도 아니다. 여성폭력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는 핵심 부서인 권익정책국의 장도 공석, 여성정책을 총괄하는 정책기획관도 자리를 비웠다.
'식물부처'라는 낯뜨거운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여가부는 대통령실에게 폐지의 명분을 아낌없이 제공해주고 있는 셈이다.
최근 대통령실은 여가부 장관 인선에 착수한 상태다. 신영숙 현 차관, 전주혜 전 의원 등이 거론된다. 다만 폐지 기조를 철회한 것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폐지를 피하려는 마지막 몸부림이라도 보일 때다. 전국의 여성폭력 피해자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결국 여성가족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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