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뒷조사는 국정원 직무범위 안 벗어나"…법원 판단 논란
재판부 "국정원 직무범위 완전히 안 벗어나"
"국세청도 협조 요청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
'뒷조사 주체' 최종흡·김승연 선고에도 주목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DJ 뒷조사' 등 혐의로 구속된 이현동 전 국세청장이 지난 4월30일 1차 공판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출석하고 있다. 2018.04.30. [email protected]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조의연)는 8일 이 전 국세청장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국고 등 손실)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구속기소 상태였던 이 전 청장은 이날 석방됐다.
이 전 청장은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0년 5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원세훈(67) 전 국가정보원장 등의 요구를 받고, 당시 풍문 수준으로 떠돌던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 해외 비자금 소문 추적 비용으로 해외 정보원에게 14회에 걸쳐 총 5억3500만원 및 5만 미국달러를 지급한 혐의를 받았다.
그런데 이날 이 전 청장 유무죄 여부를 떠나 눈길을 끌었던 건 공소사실에 대한 재판부 판단 근거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해외 비자금 추적) 사업 진행 과정에서 원 전 원장의 정치적 의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정치적 의도 의심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사건과 같은 정보수집 활동이 국정원 직무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정원장은 공공단체장에게 협조를 요청할 수 있고, (이 전 청장은) 국가기관으로서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사실상 검찰 수사의 전제 자체를 정면 배척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검찰은 이 전 청장 혐의 등을 현 정권 하의 정보기관이 다른 성향의 전 정권을 부당하게 공격하는 '정치적 사건'으로 봤던 게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지난 3월 이 전 청장을 기소하면서 "(김 전 대통령 해외 비자금은) 애초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실체가 없는 풍문 수준에 불과했다"며 "국정원 직무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정치적 목적에 따라 특수활동비가 지속해서 사용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법원이 이 사안을 무죄 판단해 버림에 따라 다음 달 선고공판을 앞두고 있는 최종흡(69) 전 국정원 3차장, 김승연(59) 전 국정원 대북정보국장에 대해서도 'DJ 뒷조사' 혐의 부분은 같은 결론이 내려질 가능성이 있다.
【서울=뉴시스】권현구 기자 =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특수공작비를 김대중 전 대통령 뒷조사 등에 쓴 혐의를 받고 있는 최종흡(왼쪽) 전 국정원 3차장과 김승연 전 대북공작국장이 지난 1월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18.01.31. [email protected]
최 전 3차장은 지난 6일 결심공판에서 "검찰 손에 의해 내 명예와 신념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 사형선고는 내 신상에 국한될 수 없다. 국정원 핵심 기능이 부정 당했다"고 격정적인 최후진술을 하기도 했다.
반면 최 전 3차장 등에 대해서는 '협조자' 이 전 청장과는 다른 판단이 내려질 수 있다.
비자금을 써 추적한 주체로서 오로지 정치적 목적 하에 작업을 추진했다고 재판부가 판단한다면 국정원 직무범위라고 인정해주긴 힘들기 때문이다.
재판부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김선일)로 이 전 청장과 다르다.
검찰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이 전 청장 재판부의 국고손실 무죄에 반박했다. 검찰은 "이 전 청장이 공작을 국정원의 정당한 업무로 인식했을 수 있고, 국세청 입장에서 국정원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등 범의와 가담사실(기능적 행위지배)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판결을 해석했다.
검찰은 이에 불복 의사를 전하면서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