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생산자모임 "예술가를 가나다 급으로 나누지 말라"
문체부, 표준계약서 도입 공개토론회
'미술창작 대가기준안' 이의 제기
다음은 미술생산자모임이 ‘미술창작 대가기준안’에 대한 이의 제기 전문.
미술 창작은 다양성, 비정형성 등으로 인해 대가 산정이 어려운 특징이 있다. 예술 행위의 자발성과 복잡함 덕에, 작품의 전시 과정에 참여하는 예술가의 경제적인 측면은 오랜 기간 무시되어 왔고, 이에 타 분야와 같이 예술 창작도 정당한 보수를 받을 수 있게 기준과 제도적 마련 필요하다는 업계의 목소리를 반영해 문체부는 미술창작 대가기준안 및 표준계약서 연구 개발을 진행해 왔다.
미술창작 대가기준의 핵심 쟁점은 ‘작가비(artist fee)’로, 그간 미술생산자 모임은 작가비란 단순히 갑과 을 간 고용계약에 발생하는 인건비가 아닌 ‘미술 창작 활동에 대한 존중과 전시 참여에 따른 보상’으로 정의하고 이를 주장해왔다. 문체부는 비교적 최근까지 작가비를 갤러리, 미술관 등의 고용에 따른 일종의 인건비 개념으로 이해해 왔으나, 이번 토론회 발표를 통해 미술생산자모임이 주장해 온 작가비의 정의가 반영된 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술생산자모임은 현장의 의견을 문체부가 반영해 제도가 실현 단계에 가까워진 걸 환영하나, 구체적 실행 방안에 대해선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2. 미술전시 창작대가 산정 방식의 문제
작가비= 1일 기준금액(5만 원) X 전시일수 X 작가별 배분율(작품 수 혹은 참여작가 수 1/n)
사례비 = 시간기준 단가 X 창작시간 (경력산정기준에 따라 예술가를 가/나/다 3개 등급으로 구분하며 시간 기준 단가 적용)
미술생산자모임은 토론회에서 문체부가 공개한 위와 같은 산출법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첫째로 ‘작가비 산출산식’에서 작품 수에 따른 작가별 배분율 측정에 반대한다. 작가비는 하나의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작품 수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앞으로 단체전을 통해 작품을 더 많이 출품하는 작가는 더 많은 작가비를 위해 타인과 경쟁한다는 비판을 듣게 될까? 한편, 이 계산법에 따르면 참여 작가가 1명이든 100명이든 전시 주최자는 하루에 5만 원만을 총 작가비로 지급하면 된다. 예를 들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중견작가 5인 전이 열린다고 치자. 1일 기준금액 5만원에 전시일 1일에 배분율을 작가수로 치면 1/5이므로 이들은 작가비로 하루 당 만 원을 받게된다
둘째로 ‘사례비 산출산식’에서 경력을 기준으로 가나다 등급을 나누는 점, 또한 경력을 산정하는 공식의 허술함을 납득할 수 없다. 개인전 1점, 단체전 0.5점으로 점수를 산정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하나의 전시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의 참여도와 기여도는 구분되거나 등급으로 나눌 수 없는 동일한 것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문체부의 미술창작 대가는 과도하게 인건비 개념에 기반한 사례비에 치우쳐 있으며, 저작권-전시권을 근간으로 하는 작가비는 단지 상징적인 의미만 가질 뿐이다. 신작 전시와 구작 전시 간의 창작 대가가 양극화되는 이러한 산정 방식은 결과적으로 전시장에서 작가들을 사라지게 만들 위험이 있다. 예산 증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미술관은 사례비(인건비)를 축소하기 위해 구작 위주의 전시를 만들게 될 것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 산출법을 미술생산자모임의 작가들의 과거 전시 경험에 대입해보면, 구작으로 전시에 참여할 경우 아티스트피는 최대 5만 원 수준까지 하락할 수 있다. 최저선이 없다.
반대로 신작의 경우 총 창작 일수에 최대 30일의 제한을 둔다고 하지만, 여전히 터무니없이 큰 금액이 나온다. 비교적 넉넉한 비용을 지급하는 해외의 사례와 비교해도 3배, 4배에 이르는 금액이다.
최저임금조차 보장 받지 못하는 예술가의 생계 및 권리 보장을 위해 아티스트피 논의가 시작되었지만, 문체부가 발표한 이런 산출법은 제도의 도입 의도와 동떨어져 있다. 따라서 문체부의 미술 창작 대가 기준은 현장의 업무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실제 창작 일수 및 전시의 기여도와 관계없는 계산이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다.
3. 표준계약서의 성적 자기 결정권, 표현의 자유 미반영 및 기초적 퍼디엄과 제작비 미반영
심지어 이날 공개한 표준계약서는 퍼디엄(여비 및 체류비)과 작품 제작비가 창작 대가와 별도로 지급되어야 한다는 점이 명시되어있지 않는 등 전반적으로 미술 작가들의 창작여건을 향상 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 편의적 측면과 영리 갤러리의 입장만이 강조되었다.
몇 년간 진전이 없던 표준계약서 논의가 박차를 가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예술계 성폭력과 블랙리스트 문제다. 이에 대한 재발 방지 차원에서 법무법인 세종은 ‘성적 자기 결정권 존중’,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항을 반영하기로 했으나, 이조차도 반영된 바 없다.
이에 토론회 현장에 모였던 작가 및 큐레이터, 미술계 관계자들은 깊은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또한 독립큐레이터가 작가들을 섭외할 경우의 계약서, 인턴이나 비정규직을 보호할 수 있는 계약서는 아예 개발 되지 않았으며 사진작가와 모델간 계약서는 더욱 면밀하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런 우려는 이 자리에서 처음 나온 게 아니다. 미술생산자모임은 지난 몇 년간 이뤄진 미술계 간담회에 수차례 참석해 의견을 내 왔다. 진행 과정에서 미술가와 미술 현장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을 확인했고, 문체부가 현장에 무지한 인물을 선정해 업무를 추진, 수차례 항의한 바 있다.
따라서 미술생산자 모임은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문화관광체육부는 ▲예술가를 가나다 급으로 나누지 말라. ▲미술 생태계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예술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연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 ▲표준계약서에 성적 자기결정권, 표현의 자유를 보호할 수 있는 조항을 반드시 포함하라. ▲표준계약서는 미술계 현장 현실을 반영하여 현실에 쓰일 수 있는 수준의 계약서를 개발하라.
-미술생산자모임([email protected])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미술진흥 중장기계획(2018~2022)'에 따라 미술 분야에 공정한 계약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미술 분야 표준계약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토론회를 거쳐 내년 1월 법제화할 계획이다. 현재 문화예술 분야에는 7개 분야 총 37종 표준계약서가 도입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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