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살해 여성 "한국 몰카 프로그램 캐스팅된 줄 알았다"
아사히신문, 김정남 암살 용의자 진술서 공개
"유튜브에 올릴 영상 촬영이라고 생각"
【샤알람=AP/뉴시스】 김정남 암살용의자 도안 티 흐엉이 14일 말레이시아 샤알람 소재 고등법원을 나서고 있다. 기대했던 석방이 불발된데 실망해선지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2019.03.14
【서울=뉴시스】양소리 기자 =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은 "이번 사건이 한국의 몰래카메라 방송인 줄 알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흐엉은 말레이시아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액체를 칠하는 장난을 하는 역할로 고용된 것으로 들었다"며 방송에 나올 것을 대비해 사건 당일 공들여 화장과 머리를 하고 좋아하는 옷을 골라 입었다고 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31일 말레이시아 사법 관계자로부터 흐엉의 진술이 담긴 11장의 조서를 입수해 이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8시간의 진술 동안 흐엉은 자신을 "여배우"라고 소개하며 김정남에 대해서는 "고용된 배우라고 들었다"고 했다.
흐엉은 2016년 12월께 베트남어가 유창한 한국 남성, 미스터 Y를 만났으며 그가 자신에게 "유튜브에 올릴 몰카 프로그램을 찍고 있다"고 소개했다고 전했다.
미스터 Y는 흐엉에 "한국에서 작은 미디어 회사를 운영한다"고 소개하며 희망 연봉을 물어보기도 했다.
남성이 흐엉에 알려준 첫 촬영 시나리오는 낯선 행인에게 말을 걸고 갑자기 뺨에 키스를 하는 것이었다.
그밖에도 이들은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비슷한 영상을 촬영하며 흐엉의 의구심을 없앤 것으로 보인다.
진술서에 따르면 흐엉은 앞서 계획했던 몰래카메라 촬영에 번번이 실패했다. 그럼에도 미스터 Y 일당은 흐엉에 출연료 명목의 돈을 주거나, 생활비를 지급했다.
【샤알람(말레이시아)=AP/뉴시스】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을 독살한 혐의로 인도네시아의 시티 아이샤와 함께 재판에 회부된 베트남의 도안티흐엉이 2017년 10월12일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인근 샤알람의 법원에 재판을 받기 위해 출두하고 있다. 그녀는 20일 속개된 재판에서 체포되고 난 후에야 김정남을 죽였다는 것을 알았으며 범행 당시까지만 해도 몰래 카메라를 찍는 것으로 알았다고 말했다. 2018.3.20
흐엉은 "2월7일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미스터 Y가 지정한 중국인 남성의 등 뒤에서 양손을 뻗어 얼굴을 만졌다"고 진술했다.
그는 "놀림을 당한 중국인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뒤 빨리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며 "공항에서 달려갈 때 미스터 Y가 휴대폰으로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2월11일에는 서양 남성에게 화장품을 바르는 식으로 연습을 했다.
사건이 발생했던 13일, 미스터 Y는 흐엉에 "오늘은 매우 중요한 촬영을 한다. 오늘 촬영한 것을 유튜브에 올릴 계획이다"고 말했다.
흐엉은 "호텔에 부탁해 가위를 빌려 직접 머리 모양을 손질하고, 약간 웨이브를 넣었다. 예쁘게 화장도 했다. 의상으로는 가슴에 'LOL(크게 웃다는 뜻의 미국 속어)'이라고 적힌 흰 긴팔 셔츠와 푸른색 치마를 입었다"며 사건 당일을 회상했다.
흐엉이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하자 미스터 Y는 앞서 했던 것처럼 장난칠 사람을 지정했다.
흐엉은 "미스터 Y는 재미있는 영상을 찍기 위해 (장난을 당하는)남성을 고용했다고 했다"며 "남성 배우는 키가 크고 검은 가방을 들고 있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또 "20분이 지나자 그 남성 배우가 나타났다. 미스터 Y는 그 남성의 얼굴에 바를 오일을 내게 줬다"고 했다.
흐엉은 "배우에게 다가가 (오일을 바른)손바닥을 안면에 문질렀다. 그는 놀란 얼굴로 날 쳐다봤다.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흐엉은 돌아간 호텔에서 2일을 더 머물렀다. 미스터 Y는 앞서 그에게 "촬영이 있어 당분간 연락은 힘들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연락을 자제했다. 그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15일께였다.
그는 또 "오일을 바른 손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뜨겁거나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유독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지럽거나 구토 증상도 없었다"고 진술했다.
아사히신문은 그의 진술서에는 성공적인 촬영에 임하고자하는 마음이 있을 뿐 범죄자의 살기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말레이시아 수사 당국은 흐엉이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살해 계획을 사전에 전달받고, 확실한 살해 의도를 갖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말레이시아 법원은 수사 당국의 의견을 그대로 인정할 것으로 보인다며 최악의 경우 흐엉은 사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말레이시아 법원은 지난 11일 흐엉과 함께 수감된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를 갑작스럽게 석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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