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긴장감 최고조인데…EU, 트럼프 눈치 보느라 존재감無
美폼페이오 불만에 뒤늦게 공식 성명 발표
EU 일치된 의견 없어…英·獨·佛 메시지 제각각
[브뤼셀=AP/뉴시스]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의 존재감은 '투명인간'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유럽판 폴리티코는 6일(현지시간) EU가 세계 갈등 문제에 어떻게 방관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을 뿐이라고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벨기에 브뤼셀의 EU 본부에서 정책을 발표 중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2020.1.7.
[서울=뉴시스] 양소리 기자 =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세계 무대에서 목소리를 높이겠다는 유럽연합(EU)의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몸을 사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정학 위원회(Geopolitical Commission)'까지 만들며 세계 무대서 유럽의 입지를 높겠다고 밝혔으나 위기의 순간 투명인간 신세에서 벗어나질 못했다는 평가다.
6일(현지시간) 유럽판 폴리티코는 이란의 군부 실세인 거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이 사망한 지 사흘이 지나서야 EU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EU 내부에서도 대응이 너무 늦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EU 외교관은 "휴가를 중단하고 입장을 밝히라는 내부 압박이 있었다"며 이란에 대한 집행위원장의 공식 언급이 없는 상황이 당혹스러웠다고 전했다. 현재 EU 기관 대부분은 새해 휴일을 맞아 문을 닫은 상태다.
특히 이번 사태는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세계 무대에서 EU의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며 출범한 지적학 위원회가 문을 연지 채 한달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발발했다. 유럽판 폴리티코는 EU가 세계 갈등 문제에 어떻게 방관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을 뿐이라고 보도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대표는 EU 외교 문제 위원회가 오는 10일 특별 회의를 열어 미국의 이란 군부 실세 제거 공습에 따른 긴장 고조 사태를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기서도 특별한 해안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동맹국인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며, 동시에 유럽이 미국의 편에 선 것은 아니라는 모호한 메시지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통일되지 않은 EU 회원국의 목소리도 문제다.
이란의 핵협정(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당사국인 영국, 프랑스, 독일의 메시지도 제 각각이었다.
영국의 도미니크 랍 외무장관은 "솔레이마니가 이끈 쿠드스군이 일으킨 공격적 위협"에 방점을 찍은 성명을 내놓은 반면 독일의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사일 공격 지시로 긴장이 고조됐다"고 비판했다.
프랑스는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한 군사 동맹이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이란의 JCPOA 추가 위반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나마 이같은 메시지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유럽인들은 내가 원하는 만큼의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불평이 나온 후에야 발표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행동에 직접적인 비판을 피하다 보니 이같이 왜곡된 상황이 벌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EU 외교관은 "유럽은 미국의 공격적인 일방주의에 익숙하지 않다"며 "EU는 정말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과 발트해 회원국은 EU와 상의 없이 미국에 대한 지지를 시사한 상태"라며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침묵이 이러한 혼란을 고조시켰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EU 고위 외교관 역시 "이번 중동 사태는 EU 회원국 사이의 협력이 결여됐음을 보여준다"고 비난했다.
미국은 지난 3일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을 공습해 솔레이마니를 제거했다.
이란은 미국에 보복을 경고하고 우라늄 농축 정도와 양에 더는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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