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놓고 러 찬반 전선 형성…중상류층 반대 vs 노동자층 찬성
재벌과 중상류층, 젊은 세대 중심 반대 여론 커지나
교육을 덜 받거나 노년층 사이에선 푸틴 지지 강력
[모스크바=AP/뉴시스] 25일(현지시간) 러시아 경찰이 모스크바에서 한 여성을 연행하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며 시위를 촉구했다. 러시아 54개 도시에서 크고 작은 시위가 일어나 약 1800명이 체포됐고 그중 약 1천 명은 모스크바에서 체포됐다. 2022.02.26.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대 러시아 경제제재가 강화되면서 일부 러시아 부호들이 푸틴과 거리두기를 하고 러시아내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는 반면 저소득층 및 노년층 사이에선 푸틴에 대한 지지가 여전히 강력해 러시아 사회에 우크라이나 전쟁 찬반을 둘러싼 대립전선이 형성되고 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와 월스트리트저널(WSJ), CNN 등 서방언론들이 1일(현지시간) 일제히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뜨악하게 여기는 계층은 주로 해외에서 휴가를 즐기고 아이폰으로 서방의 앱을 이용하며 자녀들을 해외에 유학시키는 러시아 중·상류층이 중심이다. 또 정부 매체 대신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면서 공식 매체의 선전을 불신하는 세대도 있다.
반면 교육을 덜 받은 사람이나 노년층 등은 소련의 부활을 믿는 푸틴 열혈 지지자들이다.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지방의 카멘카 마을에서 아이스링크 수석기술자로 일하는 알렉세이 사포노프(47)은 우크라이나의 나치를 제거하겠다며 시작한 우크라이나 전쟁에 경악했다. 그가 "전쟁이 재앙이 될 것이라며 두렵고 부끄럽다"고 소셜미디어에 올리자 친구, 경찰 등이 포스트를 삭제하라는 답글을 달았다. 다음날 출근하자 지배인이 달려와 "포스트를 내리지 않겠다면 사표를 쓰라"고 소리를 질렀고 그는 짐을 싸서 나와버렸다. 곧이어 그의 집에 기관총을 든 경찰들이 닥쳐 체포됐다.
국영TV는 서방의 제재가 그들이 러시아를 증오한다는 증거라고 강조한다.
서방의 제재는 전방위적이다. 전례없는 금융제재 등 각종 경제제재는 물론 모든 유명 브랜드 상품들이 문을 닫고 구글과 유투브가 러시아 국영매체가 운영하는 계정의 노출을 제한하는 등 자발적인 문화적 제재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유엔군축회의에서 연설할 때 거의 모든 각국 대표단이 퇴장하고 고위당국자가 지난 주말 공식 출장을 위해 탑승한 러시아 항공기가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비행금지로 회항해야 했다.
그러자 서방과 긴밀한 러시아부호들이 푸틴과 거리두기에 나서는 조짐이다.
억만장자 광산업자 올레그 데리파스카는 텔리그램 메시지로 "신속한 평화"를 강조했고 우크라이나 출생 재발 미하일 프리드만은 전쟁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프로축구단 첼시의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평화협상을 돕고 있다고 말했고 러시아 틴코프은행 설립자 올레그 틴코프는 자신의 재단이 어린이들을 돕고 있으며 자신은 전쟁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안드레이 야쿠닌 민간투자회사 VIY 매니지먼트 대표는 "러시아인과 러시아를 러시아연방 정부와 동일시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OAO 러시아 철도회사 전 대표인 블라디미르 야쿠닌의 아들이다.
재벌들만 반대하는 게 아니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시절 외무장관을 지낸 안드레이 코지레프는 러시아 외교관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항의해 사임하라고 촉구했다.
국영TV 진행자 이반 우르간트가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날 인스타그램에 검은 사각형과 함께 "공포와 고통. 전쟁 반대"라고 올리자 다음날 그의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크렘린궁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브의 딸도 검은 사각형과 함께 "전쟁 반대"라는 포스트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삭제했다.
국영방송 RT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수십년 동안 푸틴을 열렬히 지지해온 마픽사 대표 아니사 나오우아니는 1일 "RT와 모든 관계를 끊는다"면서 트위터에 "푸틴없는 러시아"라는 글귀가 적힌 검은 배너를 올렸다.
러시아 체스 그랜드마스터 피터 스비들러도 지난 주 "전쟁 반대"라고 트윗했고 Chess 24 스트리임에 출연해 "방송에 나오는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를 상대로한 전쟁에 반대한다.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인이 나든 아니면 누구에게든 적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침공 이래 러시아 전국에서 6500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인권단체 OVD-인포가 밝혔다. 심리학자, 의사, 건축가, 언론인, 배우, 역사학자, 컴퓨터 프로그래머, 영화감독, 정교회 사제 등이 전쟁에 항의하는 공개서한에 서명했다. 또 1일 오전까지 100만명 이상이 러시아어 Change.org 사이트에 올라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청원에 참여했다.
투옥된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를 대신해 반부패재단을 이끌고 있는 이반 즈다노프는 푸틴이 전쟁을 그만두지 않으면 러시아는 "여러 세대에 걸쳐 책임을 져야 하는 침략자이자 깡패국가로 전락할 것"이라고 러시아 전국에 배포된 동영상에서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 당국자들의 발언은 갈수록 강경해지고 있다. 마리아 자하로바 외무성 대변인은 28일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한다고 발표하자 "2차대전 이후 독일에서 나치 제거가 정말로 끝났느냐"고 트윗했다.
러시아 국영방송 보도국장 마리가리타 시모냔은 최근 "러시아에 대해 부끄럽게 느낀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러시아인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트윗했다.
안드레이 클리모프 의원은 "외국의 러시아 반대에 협력해 국가안보를 현저하게 해친 사람들"을 반역최로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보안위원회 부의장은 브루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이 서방이 "러시아를 상대로 전면적인 경제·금융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해 "입조심하라. 역사에서 경제전쟁이 실제 전쟁이 된 사례가 많다"라고 일갈했다. 그러자 르메르 장관은 "전쟁"이라는 표현이 부적절했다고 밝혔다.
또 러시아 경찰은 모스크바 주요 교차로와 푸쉬킨 광장 등 시위가 자주 벌어지는 장소를 봉쇄하고 주민들의 도로 배회를 금지했다.
러시아인들의 전쟁 반대가 심해지지만 신문방송 매체들에선 우크라이나 반대 선전이 여전하고 아들과 딸, 가족들이 수백km 떨어진 전선에 나가 목숨을 바칠 지도 모를 전쟁을 합리화하고 있다.
러시아정부는 지난 주 10여곳의 독립 매체들에 "침공" "공격" "전쟁 선포"라는 단어 사용을 금지하고 대신 "특수 군사작전"이라는 용어만을 사용하도록 경고하는 서한을 보냈다.
한편 국영 러시아공공여론조사센터(VCICOM)의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주민의 68%가 "특수군사작전"을 지지하는 반면 22%만이 반대하고 10%는 답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푸틴이 자신이 러시아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있음을 확신케 하는 지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