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서 짖는 삽살개…280년 째 생생한 '글과 그림의 힘'
영조 즉위 300주년 기념 '탕탕평평' 특별전
'화성원행도', '신제학정민시출안호도'(보물) 등 88점 전시
영조 연기한 이덕화 음성 재능 기부…전시 작품 설명
[서울=뉴시스]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되는 서화 '삽살개'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2023.12.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펜은 칼보다 강하고 그림은 말보다 빠르다.'
'柴門夜直 是爾之任 如何途上 晝亦若此'를 마치 말풍선처럼 달고 사납게 짖고 있는 '삽살개'가 보여준다.
21세기 한문이 영어처럼 어려운 세상이 되어 뜻은 모르지만, 개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음을 알려준다. 위로 치켜든 매서운 눈매, 송곳니를 드러낸 채 짖고 있는 그림은 280년이 지났지만 컹컹 소리가 들릴 듯 여전히 사납게 살아있다. 한 올 한 올 복슬거리는 털이 곤두서 날리고 꼬리털까지 바짝 긴장한 동세가 생생하고 사실적이다.
조선시대 가장 오래 왕으로 일한 영조가 가장 아끼던 화원 김두량(1696~1763)이 그렸다. 이 그림은 요즘 말로 '콜라보(feat)작업이다. 삽살개 위에 쓰여진 한문은 영조가 직접 써넣은 경고문이다. 한자를 풀어보면 '사립문을 밤에 지키는 것이 네가 맡은 임무이거늘, 어찌하여 길에서 대낮에 이렇게 짖고 있느냐'는 말이다. 당시 탕평 정책을 따르지 않는 신하들을 아무 때나 짖는 삽살개에 비유하며 '돌려까기'를 한 것이다.
1743년에 그린 삽살개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건 화원의 특출한 재능도 있지만, 영조의 서체 덕분으로, 왕의 글자가 있어 더욱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림 속 제발(題跋)이 ‘국왕의 어서(御書)’임을 밝히고 있다. 조선 후기 영모화 연구의 기준작으로서도 중요한 자료다. 2019년 5월 29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동안 책으로만 봐 왔던 이 그림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처음으로 나와 화제다. 내년 영조 즉위 300주년을 맞아 펼친 특별전 ‘탕탕평평(蕩蕩平平)-글과 그림의 힘’전시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중앙박물관은 2024년 영조英祖(재위 1724-1776) 즉위 300주년을 맞이하여 특별전 '탕탕평평蕩蕩平平-글과 그림의 힘' 개막을 앞둔 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에서 언론공개 행사를 갖고 주요 유물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영조와 정조正祖(재위 1776-1800)가 ‘탕평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 ‘글과 그림’을 활용해 소통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에 주목하는 전시다. 영조와 정조가 쓴 어필御筆과 두 임금의 의도를 반영해 제작된 궁중행사도 등 18세기 궁중서화의 화려한 품격과 장중함을 대표하는 54건 88점을 선보인다. 2023.12.07. [email protected]
300여 년 전 새로운 사회를 지향한 조선의 임금, 영조와 정조는 '글과 그림의 힘'을 알았다.
국왕이 중심이 된 '황극탕평(皇極蕩平·임금이 표준을 바로 세우면 만백성이 그것을 자신의 표준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을 추진하며 백성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자 했다.
영조 시대, 왕세제로 책봉되고 즉위하는 과정에서 왕위 계승 문제로 신하들 간 대립이 격화되었다. 즉위 뒤에도 ‘경종 독살설’을 내세우며 그의 왕위 계승에 의혹을 제기하는 무리가 있었다. 이를 타개하고자 나온 정책이 황극탕평(皇極蕩平)책이었다.
영조가 자신의 국정 운영 방침을 널리 알리고자 서적을 간행했다. 한글로 풀어 쓴 언해본을 제작해 일반 백성에게까지 임금의 뜻이 전해지도록 노력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소통 방식이다. 붕당의 인물을 고루 등용했고, 인재들의 마음을 얻고자 시와 초상화를 선물로 주거나 공신 초상화로 충성심을 북돋웠다.
그 예가 영조가 세금을 반으로 줄이는 '균역법'을 시행하면서 도움을 받은 박문수(1691~1756)의 초상화 '박문수 분무공신 전신상'(보물)이다. 영조 왕세제 때 교육을 담당한 박문수는 경제 관료로 균역법으로 부족해진 세수를 해결하는 묘책을 내는 등 영조의 탕평정치를 뒷받침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중앙박물관은 2024년 영조英祖(재위 1724-1776) 즉위 300주년을 맞이하여 특별전 '탕탕평평蕩蕩平平-글과 그림의 힘' 개막을 앞둔 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에서 언론공개 행사를 갖고 주요 유물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영조와 정조正祖(재위 1776-1800)가 ‘탕평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 ‘글과 그림’을 활용해 소통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에 주목하는 전시다. 영조와 정조가 쓴 어필御筆과 두 임금의 의도를 반영해 제작된 궁중행사도 등 18세기 궁중서화의 화려한 품격과 장중함을 대표하는 54건 88점을 선보인다. 2023.12.07. [email protected]
정조는 가까운 신하에게 시를 많이 써 주었다고 한다. 근신들이 지방관으로 임명되었을 때 시로 앞길을 격려했다. 1791년 비단에 그려진 보물 '신제학정민시출안호남(贐提學鄭民始出按湖南)'(국립진주박물관)이 증거다.
정조가 “정성을 다해 죽기로 맹세하여 다른 마음을 품지 않았다”고 평가한 정민시(1745~1800)가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할 때 정조가 이 시를 짓고 손수 썼다. 모란, 박쥐 등 문양이 있는 고운 분홍색 비단에 주저함 없이 유려하게 글씨를 썼다. 1790년대 정조의 필치는 이전과 다르게 안정되고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다. 정조는 아끼는 신하들에게 시를 선물하며 관계를 돈독하게 했다.
정조는 정통성 문제로 분열되었던 정치권 통합을 이뤘다. 1795년 화성에서 개최한 기념비적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그린 '화성원행도' 8폭 병풍이 보여준다. 왕을 중심으로 신하들이 질서를 이루고 백성은 편안한 이상적 모습이 구현되어 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중앙박물관은 2024년 영조英祖(재위 1724-1776) 즉위 300주년을 맞이하여 특별전 '탕탕평평蕩蕩平平-글과 그림의 힘' 개막을 앞둔 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에서 언론공개 행사를 갖고 주요 유물을 선보이고 있다. 2023.12.07. [email protected]
이 전시는 영조와 정조가 ‘탕평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 ‘글과 그림’을 활용해 소통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에 주목했다.
영조와 정조가 쓴 어필(御筆)과 두 임금의 의도를 반영해 제작된 '궁중행사'도 등 18세기 궁중서화의 화려한 품격과 장중함을 대표하는 국보 보물 등 54건 88점을 선보인다.
영조와 정조의 의도와 고민이 담긴 이번 특별전의 작품들은 18세기 궁중서화의 대표작이다. 엿 서화의 예술적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동시에 글과 그림이 어떻게 정치'문화에 사용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전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옛 그림과 만나는 관람객들을 위해 전시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10세 이상 어린이용 오디오가이드를 별도로 제공하고, '나만의 화성 행차 의궤도' 영상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전시 몰입도도 높일 수 있다. 2021년 MBC 인기 사극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영조를 연기한 배우 이덕화의 재능기부로 영조의 글을 녹음했다. 작품 앞에서 이덕화의 음성이 반복해 상영되며, 오디오 가이드에서는 더 많은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전시를 보다 풍성하게 즐길 수 있게 강연회(22일, 1월18일), 전시 기획자와 함께 하는 갤러리 토크, 학술 심포지엄(2월23일)도 열린다. 8일부터 17일까지 10일간 무료 관람할 수 있다. 이후 관람료 3000~5000원. 전시는 내년 3월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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