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병원 교수 "10년 전 예측했던 의료붕괴, 지금 온 듯"
"2014년 의료붕괴 예측한 교수 있었어"
"하룻밤 꼬박새고 외래환자 60명 진료"
"필수의료, 사람값 안 쳐주면 악순환뿐"
[서울=뉴시스]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사진= 서울아산병원 홈페이지 캡처) 2024.05.18. [email protected].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18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교육연구관 1층 강당에서 열린 '아산전공의협의회·울산대 의대 의료 심포지엄'에 참석해 "2014년 모 교수님이 '2025년이 되면 한국 의료에 대한 안전 불감증이 켜켜이 쌓인 결과로 의료의 폭발 사고 같은 의료 붕괴 이벤트가 한 번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정 교수는 이날 '병원이 가속노화를 만든다'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으로)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은 억울하게 나갔고, 임상 교수들은 양쪽에서 치이면서 당직을 서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후 의대 교수들은 석 달 가량 빈 자리를 메워왔다. 서울아산병원 등 울산대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주당 90시간 이상 근무로 한계에 달하면서 이달 3일부터 주1회 휴진(외래진료·비응급수술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정 교수는 "'하면 된다'는 대표적인 병원이 서울아산병원이다"면서 "전공의들이 나간 후 교수들만 남자 다른 병원들은 당직 전문의를 뽑았지만 아산병원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요일 아침에 출근해 외래 진료를 보고 당직을 섰고, 수요일 24시간 당직에 이어 목요일 아침까지 당직을 서고 오전 오후 외래 진료를 보고 집에 갔다"면서 "현대의 문화가 살아있는 곳인데, 정말 하면 되느냐"고 반문했다.
정 교수는 최근 석 달간 당직을 서면서 "업무 생산성이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보통 하룻밤을 꼬박 새거나 2주 정도 한 시간씩 줄여서 자게 되면 대략 소주 한병을 원샷하고 아침에 일을 시작하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인지 기능을 갖게 된다"면서 "그 상태에서 오전 오후 외래환자 60명을 진료하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과도한 근무가 신체 건강과 정신 건강에 미치는 폐해도 언급했다. 그는 "당직을 서고 외래환자를 보면서 체중이 3킬로그램이 늘었다"면서 "지방이 6킬로그램 늘고 근육은 3킬로그램이 빠졌다"고 말했다. 또 "당직을 8주 서니까 코로나도 걸렸다"고 했다.
정 교수는 "렌틸콩을 먹고 하루 1시간씩 일하고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아도 잠을 자지 못하고 24시간 당직하면 스트레스 호르몬 지수가 올라가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이 뇌를 녹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면서 "환자 재원기간을 단축시켜야 하는 부담감도 있고, 특히 이슈만 생기면 바로 오는 메신저는 번아웃을 초래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의대 2000명 증원 추진으로 필수의료 기피 문제가 해소되긴 어렵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의대 정원이 2000명 늘어나 레지던트가 대폭 늘어나면 병원은 좋지만 결국 전문의가 되면 미용 등 비급여 시장으로 밑 빠진 독처럼 빠져나갈 것"이라면서 "2000명을 늘리면 뭐하나. 어차피 사람 값을 안 쳐주고 전체적인 수가표를 바꾸지 않으면 악순환만 거듭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2000명 증원과 수가 인상이 답이 아니고, 전체 사회 구성원이 조금씩 양보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번 기회에 대화를 통해 고칠 것은 고치고 의료를 정상화 시켜 의료진이 번아웃 되지 않고 생명에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의료환경이 조성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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