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신분증 확인 첫날, 일부 혼선…"취지에는 공감"[현장]
시민들 "의료보험 도용은 문제…불가피한 제도"
병원들, 환자에 사전 안내…일부는 제도 오해도
[서울=뉴시스]서울의 한 병원에서 진료 받으러온 환자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태성 우지은 기자 = 병원에서의 신분증 확인을 의무화하는 '요양기관 본인확인 강화 제도'가 시행된 첫날인 20일, 서울에선 제도 취지에 공감한 시민과 병원들의 협조로 큰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일부 병원에서는 제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신분증 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날 오전 찾은 서울 양천구의 한 정형외과는 환자 40여명으로 접수 창구 앞이 북적였다. 병원 직원은 접수 번호에 맞춰 한 사람씩 호명하며 신분증 확인을 요구했다.
새롭게 추가된 절차에도 불구하고 신분증을 준비하지 못한 이는 드물었다. 대부분의 환자는 귀찮은 내색 없이 품에서 신분증을 꺼내 직원에게 보여줬다.
주사를 맞기 위해 방문한 김모(83)씨는 "병원에서 한 달 전부터 '신분증을 가져와야 한다'고 안내했다"며 "병원 입장에서는 조금 번거로울 수 있지만 이렇게 확인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환자 보호자로 병원에 왔다는 이모(56)씨도 "하다못해 은행을 가도 다 신분증을 확인한다"며 "의료보험 혜택을 도용당할 위험성 때문에 신분증 확인에 적극 찬성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의 한 이비인후과의원 접수대에는 "진료 전 신분증을 꼭 제시해주세요"라는 제목의 홍보물이 세워져 있었다. 신규 환자 접수 동의서에 이름·주민등록번호·연락처를 적어 내자 직원이 이를 가리키며 "오늘부터 신분증이 없으면 진료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안과 직원은 "병원에서 며칠 전부터 신분증 확인을 미리 시작했었다"며 "의무는 아니었지만 앞으로 어느 병원이든 신분증이 필요하다고 해 안내 차원에서 그렇게 했다"고 이야기했다.
2차 종합병원인 강동성심병원은 오전 9시 40분부터 10시 10분까지 환자 70여 명이 1층 접수·수납 창구를 찾았는데 이 중 3명이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았다. 대략 접수 환자 10명 중 1명꼴로 건강보험 본인확인 의무화 제도를 몰랐다.
또 실물 신분증이 없더라도 본인확인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모바일 신분증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개발한 '모바일 건강보험증'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날 이비인후과를 찾은 한 40대 남성 환자는 병원 직원의 안내를 받아 모바일 신분증으로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치기도 했다.
다만 모든 병원에서 본인확인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일부 병원에서는 제도의 세부 내용을 오해하는 등 문제가 나타나기도 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마취통증의학과, 이곳에서는 초진 환자와 6개월 이내 내원 기록이 없는 재진 환자에 한해서만 신분증 확인이 이뤄지고 있었다.
병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부 안내문에 보면 방문한 지 6개월이 지나지 않은 분들은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고 쓰여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병원에 비치된 제도 안내 팸플릿을 보니 '해당 요양기관 6개월 이내 재원 환자'는 본인확인 예외 대상이라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이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보다 정확히는 '본인 여부 및 그 자격을 확인한 날로부터 6개월 이내 진료' 재진의 경우에만 본인확인 예외 적용이 가능하다.
따라서 재진환자라 하더라도 최초 한 번은 본인확인 절차가 필요하다. 이는 개별 병원이 제도의 세부 내용을 잘못 해석해 발생한 문제로 보인다.
[서울=뉴시스] 20일부터 병원 등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을 때는 주민등록증과 같은 신분증 등으로 본인확인을 해야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받을 수 있다. 다른사람 명의로 건강보험을 대여·도용하는 부정수급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이를 막기 위한 조치다. 재정 누수를 막고 다른 사람 명의의 신분증명서 등을 활용한 약물 오남용과 마약류 사고를 방지하겠다는 목적도 있다. (그래픽=안지혜 기자) [email protected]
인근의 한 안과에서도 미흡한 점이 발견됐다. 이곳에서는 환자의 신분증 확인을 하기는 하지만, 신분증이 없더라도 기존처럼 임의로 건강보험을 적용해주고 있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신분증이 없으시면) 안내는 해드리고 '다음에 올 때 신분증을 꼭 지참해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네 의원의 경우 방문 환자 대부분이 인근에 거주하는 동네 주민인 경우가 많아 새로 강화된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요양기관 본인확인 강화 제도는 다른 사람 명의로 건강보험을 대여·도용하는 부정수급과 건강보험 재정 누수, 약물 오남용과 마약류 사고 등을 막기 위해 시행됐다.
앞으로 건강보험으로 진료를 받으려면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등 본인 확인이 가능한 신분증명서를 지참해야 한다. 행정기관이나 공공기관이 발행한 증명서로 사진과 주민등록번호 또는 외국인등록번호가 포함돼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사본은 인정하지 않는다.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으면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해 환자가 진료비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 다만 14일 이내 신분증과 진료비 영수증 등 기타 요양기관이 요구한 서류를 지참하면 건강보험이 적용된 금액으로 정산된다.
19세 미만이나 같은 병의원에서 6개월 이내 본인 여부를 확인한 기록이 있는 경우는 본인 확인이 제외된다. 처방전으로 약국에서 약을 사는 경우나 진료 의뢰 및 회송받는 경우, 응급환자, 거동 불편자, 중증장애인, 장기 요양자, 임산부 등은 신분 확인을 하지 않아도 된다.
병의원 등 요양기관이 신분증 등으로 환자 본인 여부와 건강보험 자격 여부 등을 확인하지 않으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다만 요양기관이 본인확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신분증인 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과태료 및 부당이득금을 부과하지 않아도 된다.
건강보험 자격을 부정하게 사용하는 경우 대여해 준 사람과 대여받은 사람 모두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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