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현빈의 거사, 현빈의 눈물
영화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 역 맡아
안중근 역 부담 수 차례 거절 끝 하기로
"이,런 영광 다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
"이렇게 진심 다해 연기한 건 이게 처음"
재작년 손예진과 결혼 후 첫 공식 인터뷰
"남편·아빠 되고 내 삶 모든 게 바뀌었다"
"좋은 아빠 좋은 어른 뭔지 매일 고민해"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이렇게 진심을 다해서 연기한 적이 있었나 싶었어요."
영화에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메이킹 필름(Making Film)에 대해 잘 알 것이다. 촬영 현장을 담은 영상이다. 한국영화 메이킹 필름 마지막 대목엔 대체로 모든 촬영을 마친 감독·배우의 소감이 들어간다. 영화 '하얼빈'(12월24일 공개)을 찍은 배우 현빈(42) 역시 이번 작품에서 연기를 끝낸 뒤 카메라 앞에서 이런 저런 소회를 풀어냈다. 그리고 눈물을 왈칵 쏟았다.
"처음이었습니다. 메이킹 필름을 찍다가 그랬던 건요. 그때도 아직 연기가 끝나지 않은 느낌이었달까요. 이 작품을 준비하고 촬영하는 내내 뭔가가 저를 억누르고 있었어요. 제 연기는 이제 다 끝났는데 이 압박감을 떨쳐낼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고요. 이상하게 복잡했습니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어요."
현빈은 '하얼빈'에서 안중근을 연기했다. 한국 근현대사의 거인 중 한 명인 안중근을 연기한다는 건 감당하기 힘든 부담이었다. 우민호 감독의 출연 제안을 거절한 건 당연했다. 하지만 우 감독은 포기하지 않고 현빈을 설득했다. 현빈은 또 거절했다. 우 감독은 말 그대로 현빈을 삼고초려했다. 우 감독은 현빈에게 안중근 역을 제안할 때마다 조금씩 대본을 고쳐서 현빈과 더 어울릴 수 있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감독님이 그렇게까지 하시니까 저도 궁금해지더라고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게다가 나한테 이런 분을 연기할 기회가 또 올까 고민해보니 다시 없을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배우도 거의 없을 거고요. 영광스러운 작업이 되겠다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감독님께 날 계속 찾아줘서 감사하다고,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말하고 하기로 했습니다."
'하얼빈'의 안중근은 영웅이면서 동시에 평범한 인간이다. 영화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을 향해 간다. 다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은 관객이 대체로 모르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하얼빈'은 그 시간을 일련의 실제 사건을 이어 붙이며 그 안에 담긴 안중근의 고뇌를 담으려 한다. 두려워하고 외로워하고 미안해하고 무기력하고 허무해하고 자책하는 안중근이다. 현빈은 안중근 관련 자료를 탐독하고, 그의 마음을 상상해보고 그가 겪은 일들을 재구성해보면서 캐릭터 안중근을 하나 씩 완성해갔다. 그는 "안중근 장군님께 누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 뿐이었다"며 "외롭고 힘든 싸움이었다"고 말했다.
현빈은 '하얼빈' 속 안중근을 "거사를 치르기 전까지 계속해서 실패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의 말처럼 이 작품엔 좌절 속에서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안중근의 마음이 집중적으로 담겼다. 현빈은 때로 긴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으로, 때론 얼어붙은 호수 위에 홀로 쓰러져 있는 초라함으로, 방안으로 숨어들어 흐느껴 우는 절망감으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사를 성공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이 영웅을 드러낸다.
"제가 맡은 역할이 작품 내에서 비중이 크다 보니 압박이 심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봤는데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동료 배우들 모두 저와 비슷하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겁니다. 우덕순(박정민)은 우덕순대로, 김상현(조우진)은 김상현대로, 공부인(전여빈)은 공부인대로. 그래서 그런지 첫 촬영을 몽골에서 했는데 함께 연기한 배우들과 금방 가까워졌습니다. 저 역시 의지를 많이 했어요. 정말 동지 같았습니다."
'하얼빈'은 6개월 간 몽골·라트비아·한국을 오가며 찍었다. 제작비 약 300억원을 쓴 대작이다. 안중근의 고뇌를 담고 있으면서도 액션 시퀀스가 적지 않고 꼭 액션이 아니더라도 촬영이 쉽지 않았을 거로 보이는 장면도 여럿이다. 현빈은 그 중에서도 초반부에 나오는 신아산 전투 장면을 꼽으며 "생지옥이 펼쳐지는 장면인데, 현장 역시 생지옥 같았다"고 말했다. "힘들었다기보다는 치열했다는 말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눈이 계속 내리면서 땅이 진흙이 됐고, 진흙 바닥을 구르면서 워낙에 오래 찍었으니까요. 화면에 보이는 눈이 가짜 눈이 아니라 진짜 눈입니다. 배우들이 대역 없이 모두 직접 연기했습니다."
현빈은 안중근을 연기하면서 그리고 연기가 끝나고 난 뒤 지금까지도 감사한 마음을 계속 갖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건 안중근 장군님 같은 분이 그런 일을 하셨고, 그런 것들이 쌓여왔기 때문일 겁니다. 계속 기억할 겁니다. 앞으로도요."
현빈은 2022년 3월 배우 손예진과 결혼했다. 또 한쌍의 톱스타 부부가 되며 크게 주목 받았다. 같은 해 11월엔 아빠가 됐다.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면서 그는 좋은 어른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한다고 했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제 삶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좋은 아빠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지 매일 생각합니다. 아직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계속 찾아 나가야겠죠."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