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쓰는 돈인가…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금 사용 허가 0원 왜?
부산시 조례 일부 개정해야 하지만…검토도 안돼
"예산 1억1000만원으로 줄었는데 그마저 불용 처리되나"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집결지(속칭 미아리 텍사스) 일대의 모습.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없음. 2023.12.07. [email protected]
[부산=뉴시스]김민지 기자 = 부산의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로 꼽히는 일명 '완월동(현재 서구 충무·초장동)'의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위해 올해 처음으로 편성된 자활 지원 예산이 한 푼도 쓰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예산 사용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시 조례를 일부 개정해야 하지만, 이는 검토되지 않고 있어 또다시 성매매 피해 여성들이 울타리 밖으로 밀려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뉴시스 취재 결과 지난달 3일 오후 4시30분 서구청 심의위원회 주관으로 '부산시 성매매 집결지 성매매 피해자 등의 자립·자활 예산'에 대한 첫 심의가 열렸다.
이날 심의에는 부산시 관계자와 서구청 관계자, 하명희 서구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 등이 참여했다. 심의 주요 안건은 예산 총 1억1000만원 중 성매매 피해 여성 6명에 대한 주거비 명목의 비용 1200만원(각 500만원 2명, 각 50만원 4명)에 대한 사용 허가였다.
하지만, 이날 사용 허가가 떨어진 예산은 0원이다. 시 조례에 규정된 사항이 걸림돌이 돼 한 푼도 허용되지 않은 것이다.
문제가 된 것은 2020년 1월 1일 자로 공포된 '부산광역시 성매매집결지 성매매피해자 등의 자립·자활 지원 조례' 내용이다. 해당 조례의 제5조(지원내용)에는 '지원 대상자에게 예산의 범위에서 일정 기간 동안 다음 각 호(생계, 주거지원, 직업훈련 비용 등)의 비용을 지원할 수 있다. 다만, 법령 또는 다른 조례에 따라 동일한 지원을 받고 있는 경우에는 중복 지원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대개 기초생활보장수급자(기초수급자)로 분류된 성매매 피해 여성들은 생계, 주거지원 명목의 지원을 이미 받고 있어 동일한 지원에 대한 '중복 지원 불가'하기에 시의 예산을 추가로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들이 시 예산을 통해 지원을 받으려면 해당 조례 내용이 개정돼야 하지만, 현재 이같은 계획은 검토되고 있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 관계자는 "현재는 조례 개정을 할 계획이 없다"며 "피해 여성 중에서도 기초수급자가 아닌 분들도 있을 것이기에 그분들을 대상으로 최대한 지원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피해 여성 중 기초수급자 현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몇 명이 해당하고 해당하지 않는지) 파악하고 있진 않다"고 답했다.
시가 서구청을 통해 받은 보고에 따르면 예산 지원 대상자는 총 40여명이다. 이들은 완월동 일대의 성매매 업소 20여곳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여성으로 조사됐다.
[파주=뉴시스] 송주현 기자 = 22일 오전 경기 파주시 연풍리 성매매집결지 내 불법 건축물에 대한 행정대집행이 진행되고 있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없음. 2023.11.22 [email protected]
앞서 이 예산은 시의회에서 대폭 삭감돼 논란이 된 바 있다. 시는 사업 예산을 3억5200만원으로 편성해 시의회에 신청했으나, 시의회는 1억1000만원으로 대폭 삭감했다.
3분의 1로 줄어든 예산조차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례 변경이 되지 않는다면 불용 처리될 것이 뻔하다. 완월동 일대에 재개발이 확정되면서 일부 성매매 업주들과 건물주들은 재개발 이익을 챙겨 배를 불릴 것으로 보이지만, 성매매 피해 여성들은 또다시 배척됐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하명희 서구의회 의원은 "시가 뻔히 조례에 규정이 있는 걸 알면서도 무용지물인 예산을 내려준 것은 시의 '생색내기'밖에 안 된다"며 "이대로라면 예산이 그대로 불용 처리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그는 "시가 조례 개정을 위해 시의원들을 설득하든지 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관계자는 "자활 지원은 탈 업소를 통해 자립, 자활을 지원해 성매매 재유입을 방지하고 사회 복귀를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현재 시에서는 탈 업소한 여성들이 수급자라는 이유로 자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시점에 맞도록 자활조례 개정이 필요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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