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재연된 역사교과서 논란…고등학교 채택 혼란 전망
야권·역사단체,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 두고 "위험"
친일·독재 미화 논란에 집필진 전력·기술오류 지적도
2013년 교학사 교과서 '역사왜곡' 논란과 닮은 양상
교육부, 교과서 수정 검토 여부에 아직 원론적 기조
국정감사까지 논란 이어질 듯…교육계 피로감 나와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최근 초중고교 검정교과서 심사를 통과한 한국학력평가원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등이 지;난달 3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기자실에 비치돼 있다. 2024.09.06. [email protected]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내년 3월 도입될 새 검정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우편향' 논란이 잦아들지 않는 모양새다. 야권을 중심으로 비판 수위가 높아지는 가운데, 다음달 말까지 교과서 채택을 결정해야 하는 일선 고등학교 현장에도 혼란이 일 가능성이 있다.
6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과 역사 단체들은 최근 교육부가 검정 합격을 결정했던 한국학력평가원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두고 '학교 현장에서 채택되면 안 되는 위험한 교과서'라면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앞서 해당 교과서의 내용이 공개된 후 이승만 정권을 서술하면서 '독재'를 '집권 연장'이라 표현하고, 일본군 '위안부'나 5·18 민주화 운동을 축소 서술했다는 점이 지적되는 등 '친일·독재 미화' 논란이 제기된 상태다.
집필진 중 일부가 과거 극우 성향 발언을 했다는 '뉴라이트 논란'도 제기됐고, 300여건의 사실관계 등 오류가 나타났다는 민족문제연구소 측 분석도 나왔다.
공기택 인하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는 전날 오후 김준혁 민주당 의원이 국회의원회관에서 연 '뉴라이트 논란 역사 교과서 긴급 토론회'에 참석, 해당 교과서가 고의적인 생략으로 독재나 일제 침략의 사실을 회피하는 등 교묘한 방식의 서술을 택했다고 지적했다.
공 교수는 "침략을 당한 한국의 역사를 기록함에 있어 침략주의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관점의 역사 서술은 인정할 수 없다"며 "식민지 근대화론(일제가 광복 후 경제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의 입장을 가진 자가 교과서 집필진이면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 부정적 측면이 모두 나타날 수 있도록 기록해야 한다"며 "독재자로 국민의 권익을 억압했던 인물의 특정 부분만 강조하는 것은 학생들의 균형적 시각을 빼앗는 것"이라고 했다.
전날에는 '민주당 여순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위원회'(특위)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를 비롯한 5종이 여순사건을 '반란'으로 표기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관련 특별법은 여순사건을 '지난 1948년 국군 제14연대의 일부 군인들이 국가의 제주 4·3 진압 명령을 거부하며 발생, 진압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 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하는데 이를 왜곡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국가폭력을 정당화하고 뒤틀린 역사관을 주입해서는 안 된다"며 교과서에 기술된 '반란' 표현이 즉각 삭제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곧 각 학교운영위원회의 한국사 교과서 선정 절차에 들어갈 예정인데, 그 어떤 경우에도 여순사건을 왜곡한 교과서를 선택해선 절대 안된다"고 했다.
이처럼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우편향' 논란의 양상은 지난 2013년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논란과 비슷하다.
[서울=뉴시스] 지난 2014년 1월11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열린 '청소년 시국선언'에서 민주사회를위한청소년회의 소속 학생들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을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사진=뉴시스DB). 2024.09.0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2013년 8월 국사편찬위원회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검정 심사에서 8종을 합격시켰는데, 야권과 역사단체들을 중심으로 '우편향·왜곡' 논란이 제기됐다.
그러자 박근혜 정부 교육부는 교학사를 포함한 모든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재검증 작업에 착수, 그해 10월 총 829건의 수정·보완 사항을 출판사에 통보하면서 '교학사 물타기'라는 논란으로 번졌다. 다른 교과서 집필진들은 교육부 권고에 반발해 소송을 내기도 했다.
논란은 교육부가 교학사 등 역사교과서를 최종 승인한 그해 12월 이후에도 잦아들지 않았다. 지역별로 일부 학교가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기로 한 사실이 알려지며 선정 철회 요구가 빗발쳤고, 학교들이 이를 취소하면서 교학사 채택률은 0.11%(2곳)까지 떨어졌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불거진 역사교과서 논란에 대해 교육부의 입장은 아직 원론적인 수준에 그친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달 검정을 통과한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수정·보완을 검토하는지 묻자 "여러가지 의견들이 제시돼 하나씩 살펴보고 있는 단계"라면서도 "검토 여부는 지금 단계에서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3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개별 교과서에 대한 평가를 하기보다 역사교육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검정제도의 취지를 고려해 검정에 합격한 다른 교과서와 함께 종합적이고 균형적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만약 교육부가 수정·보완에 착수하지 않는다면 공은 바로 학교로 넘어간다. 학교 현장에서는 교원 등으로 구성된 교과협의회 의견 수렴, 학교운영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채택 교과서를 내달 말까지 확정한다.
야권과 역사단체들은 논란이 된 한국사 교과서를 그대로 학교에 채택되도록 바라만 보지 않을 태세라 다음달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교육계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역사교과서 논쟁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어느 한 관점에서 교과서를 만들고 그 관점에서만 세상을 보게 하는 것은 침략의 역사도 기억하지 못하게 하는 일본과 같은 방식"이라며 "교과서에서는 흐름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다양한 관점에서 제시하고 토론하며 관점을 익혀 가게 하는 식으로 하는 게 필요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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