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美·EU서 과징금 폭탄 맞고 한국선 웃는 구글·애플
[서울=뉴시스]최은수 기자 = "한국만 호구냐?"
EU(유럽연합)가 글로벌 빅테크 구글과 애플의 조세 회피에 맞선 소송에서 승리한 것을 두고 나온 말이다. 지난 10일 EU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는 애플과 구글을 상대한 2개의 소송에서 모두 EU 집행위원회의 손을 들어줬다.
ECJ는 애플과 아일랜드 정부를 상대로 EU 집행위가 제기한 항소심에서 애플에 대한 130억 유로(약 19조2477억 원)의 과징금 부과를 확정했다. 체납 세금을 두고 EU와 애플이 10년 가까이 법정 공방을 벌여온 결과다. 이번 결정으로 애플은 이자 및 소송 비용 등을 포함해 최대 143억 유로(약 21조원)를 물어야 한다.
구글은 반독점 위반으로 과징금 철퇴를 맞았다. 구글은 지난 2017년 상품 검색 결과에서 자사 쇼핑의 상품을 경쟁사보다 우선 노출해 24억 유로(약 3조5000억 원)의 과징금 철퇴를 맞았다가 EU 집행위를 상대로 과징금 불복 소송을 제기했는데 결국 패소한 것이다.
EU는 지난 3월 ‘디지털시장법(DMA)’을 시행해 빅테크 규제를 한층 강화했다. 애플은 앱스토어 수수료 책정 방식과 관련해 DMA 위반했다고 잠정 결론을 내리고 과징금 등 제재 수위를 논의하고 있다. 지난달 애플은 EU의 DMA에 따라 아이폰의 사파리 외 ‘기본 브라우저’ 선택이 가능하도록 소프트웨어 기본 설정을 변경하는 등 백기투항했다.
본고장인 미국에서 마저 애플과 구글은 수난을 겪고 있다. 구글은 온라인 검색 시장에서 불법적인 독점적 지위를 유지했다는 이유로 미 법무부로부터 소송을 당해 지난달 5일 워싱턴DC 법원에서 패소했다. 애플은 지난 3월 '애플 생태계'로 혁신이 저해되고 소비자들은 비싼 비용을 치러야 했다는 이유로 미 법무부로부터 반독점 소송을 당했다.
이들의 조세회피, 독점적 지위 남용 행위는 우리나라에서도 논란이 된 지 오래다. 구글코리아가 작년 우리나라에 낸 법인세는 155억원에 불과했다. 애플코리아는 작년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법인세 2006억원을 냈다. 이는 전년 대비 4배 이상 늘어난 금액이지만 네이버 등 국내 기업이 내는 법인세에 비하면 여전히 훨씬 적다.
구글은 중국을 제외하면 거의 유일하게 독점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플랫폼 시장을 유튜브와 검색엔진을 앞세워 위협하고 있다. 10대, 20대들은 네이버 대신 유튜브에 들어가 궁금한 걸 검색하고 '숏츠'에서 하루종일 논다. 유튜브가 광고 없는 요금제 '유튜브 프리미엄'에 끼워 팔고 있는 '유튜브 뮤직'은 국내 음원앱 1위 멜론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만 '패싱'하는 사례도 계속 나온다. 국내에서 유튜브의 영향력을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구글은 이로 인해 발생하는 트래픽에 대한 망 사용료를 내지 않는다.
지난 2021년 전세계 최초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자축한 한국이 정작 구글과 애플 제재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빅테크 갑질 행위가 한국에서 지속되는 배경에는 규제 당국의 제대로 된 관리·감독의 부재가 꼽힌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작년 10월 앱 마켓사업자인 구글과 애플이 거래상의 지위를 남용해 특정한 결제방식을 강제하고 앱 심사를 부당하게 지연한 행위 등을 두고 전기통신사업법상 금지행위를 위반했다며 최대 69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거의 1년째 구글과 애플에 대한 과징금액을 최종 확정하기 위한 전체회의 조차 열지 못하고 있다. 공영방송 이사 선임 문제로 야당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방통위의 파행 운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의 탄핵소추로 이진숙 신임 방송통신위원장마저 임기 이틀 만에 직무가 정지돼, 이제는 전체회의 소집조차 불가능하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어느 때보다 국가간 기술 주도권 경쟁이 치열하다. 여야가 정쟁의 수렁에 빠져 있는 사이 빅테크 횡포를 막을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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