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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하녀가 부르주아 위선 꼬집다"…'어느 하녀의 일기'

등록 2015.08.17 10:56:55수정 2016.12.28 15:2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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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하녀의 일기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그들은 내게 읽는 법과 쓰는 법, 바느질하는 법, 살림하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내가 이 필요한 것들을 거의 다 배우자 나를 은퇴한 대령의 집에 보조 하녀로 취직시켜 주었다. 이 대령은 매년 여름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콩포르 근처의 황폐화된 작은 성을 찾아왔다. 그들은 분명 친절하기는 했지만 늘 얼마나 침울했는지! 그리고 편집광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오르는 법이 없었고, 고집스러울 정도로 늘 검은색인 그들의 옷에서는 기쁨이 느껴지지 않았다."(138쪽)

 "논의와 모욕적인 조사와 더 모욕적인 흥정을 거쳐 탐욕스러운 부르주아들 중 한 사람과 합의를 본다 해도 1년 치 급료의 3센트를 직업소개소에 줘야만 한다. (중략) 칼같이 계산해 수수료를 챙겨 간다. 오! 직업소개소는 아주 요령이 좋다. 하녀들을 어디로 보낼지를 알고, 하녀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오리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4개월 반 만에 일곱 군데를 옮겨 다녔다. 우울함의 연속이었다.""(406쪽)

 프랑스 작가 옥타브 미르보(1848~1917)의 장편소설 '어느 하녀의 일기'가 국내 번역출간됐다.

 이야기는 19세기 말 프랑스 노르망디의 한 시골 마을 메닐-루아에, 파리에서 온 하녀 셀레스틴이 부유하지만 인색하기 그지없는 랑레르 부부의 집에 취직돼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브르타뉴 해안의 오디에른 출신으로,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알코올 중독자인 어머니의 학대를 받으며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낸 셀레스틴.

 수녀원의 도움으로 어머니 손에서 벗어난 그녀는 언니, 오빠와도 소식이 끊긴 채 혈혈단신 수많은 일자리를 전전하며 인생의 쓴맛과 단맛, 환멸을 두루 맛본다.

 하녀로 일하면서 자신이 모시는 주인은 물론, 동료 하인들과 자신을 스쳐가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을 꿰뚫어 보는 비상한 관찰력을 가진 셀레스틴은 매혹적인 용모와 언동으로 모든 남자가 추근거리는 욕망의 대상이 되곤 한다.

 자신을 한시도 가만두지 않는 까다롭고 신경질적인 랑레르 부인 때문에 지쳐가는 가운데, 부인에게 주눅 들어 있으면서 하녀를 통해 욕정을 분출하려는 랑레르의 추파를 받기도 한다.

 그녀는 이내 시골의 단조로운 일상에 따분함을 느낀다. 퇴역 군인인 모제 대령을 모시는 이웃집 하녀 로즈의 주선으로 나가기 시작한 마을 하녀들의 모임이 그녀의 지겨움을 잠시나마 해소해주는 유일한 오락거리다.

 매주 일요일 미사가 끝난 뒤 구앵 부인의 식료품점에서 열리는 이 모임에서는 마을에 떠도는 온갖 풍문과 추문이 화제에 오르고 우스갯소리와 험담이 오간다.  

 셀레스틴은 왠지 수상쩍은 마부 조제프의 거동에 호기심과 불안함을 함께 느끼며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2년간 12개의 일자리를 거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그동안 주인으로 모셨던 부르주아들의 민낯을 낱낱이 까발린다.

 "나는 나이가 많지 않다. 그렇지만 많은 것들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완전히 벌거벗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의 속옷과 살갗, 그들의 영혼에 코를 갖다 대고 킁킁거렸다. 향수를 뿌렸음에도 그들에게서는 좋은 냄새가 나지 않았다. 존경받는 가정과 정직한 가족이라는 덕행의 외관 아래 얼마나 많은 추잡한 언행과 수치스러운 악행, 저열한 범죄를 감출 수 있는지! 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부자여도 소용없고, 비단과 벨벳으로 된 옷을 입고 있어도 소용없고, 금박 입힌 가구들을 갖고 있어도 소용없다."(140쪽)

 "가난한 사람들이란, 삶의 수확물과 즐거움의 수확물을 키우는 인간 비료나 다름없으며, 부자들은 이 수확물을 추수하여 너무나 잔인하게 우리에게 악용한다. 더 이상 노예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주장한다. 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억지다. 하인들이 노예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노예 제도가 정신적 비열함, 필연적 타락, 증오를 낳는 반항심을 포함하는 것이라면, 노예 제도는 지금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인들은 악덕을 주인에게 배운다. 순수하고 순진한 상태에서 하인 일을 시작하는 그들은 사람을 타락시키는 습관과 접촉하면서 금세 타락하게 된다. 그들은 오직 악덕만을 보고, 악덕만을 호흡하고, 악덕만을 만진다."(367~368쪽)

 작가는 소설에서 부르주아 계급의 탐욕과 부패, 타락을 고발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하인들이 보이는 비굴한 노예근성과 주인을 따라 악덕을 저지르는 비열함도 풍자한다.

 실직한 셀레스틴에게 임시보호소이자 직업소개소 역할을 한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노동 착취를 그림으로써 성직자들의 거짓과 위선을 꼬집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주인들의 우스꽝스러운 행태를 비웃으면서도 그들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동경하고, 자신이 불행해질 줄 알면서도 때때로 자기도 모르게 파멸에 몸을 맡기는 셀레스틴의 이율배반적인 모습도 드러낸다.

 각계각층의 기묘한 인물들을 여럿 등장시켜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와 시골의 뒤틀린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전지적 시점의 화자가 아닌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만 서술하는 셀레스틴를 화자로 내세워, 수수께끼로 남은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의 상상을 이끌어낸다. 이재형 옮김, 528쪽, 1만5000원,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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