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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문화재청이 복원한다는 훈민정음, 이래서 예산낭비

등록 2017.08.28 11:33:38수정 2017.08.28 14:4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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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대종 복원 어제서문 제1장. 논문 ‘훈민정음 어제서문의 복원, 간송 해례본 낙장과 월인석보 언해본을 중심으로’(2015)를 통해 발표됐다.

【서울=뉴시스】 박대종 복원 어제서문 제1장. 논문 ‘훈민정음 어제서문의 복원, 간송 해례본 낙장과 월인석보 언해본을 중심으로’(2015)를 통해 발표됐다.

【서울=뉴시스】 신동립 기자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 중 낙장(위작)된 세종대왕 어제서문 두 장(총 4쪽)을 정본으로 제작하겠다고 지난달 문화재청이 밝혔다.

‘훈민정음 간송본 위조 부분, 국보에서 제외하라’(뉴시스 2015년 10월26일 보도)와 ‘75년만에 바로잡았다, 세종대왕 어제 훈민정음’(뉴시스 2015년 12월2일 보도)을 본 이종배 의원(자유한국당)이 이듬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위조된) 해례본 간송본을 재복원하거나 해당 부분에 대해 국보 제외 등과 같은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 데 따른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첫 두 장이 찢겨 소실된 뒤 이용준에 의해 잘못 복원돼 결과적으로 위조됐다는 사실은 문화재청과 국어학계에 널리 알려졌다. 훈민정음 간송본 위조 부분을 국보에서 제외하라고 촉구한 것은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 소장의 주장을 인용한 뉴시스 기사가 최초다. ‘1962년 국보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 가운데 1940년 이후 보충 필사된 세종대왕 서문 두 장은 ’耳’(이)를 ‘矣’(의)로 잘못 쓴 오자 등이 포함된 현대의 위작이므로 국보의 지정범위를 현 ‘33장 1책’에서 ‘31장 1책’으로 바로잡아야한다‘는 요지다. 

정본 제작을 위한 문화재청의 연구용역은 몇 차례 유찰 끝에 H대 산학협력단으로 넘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12월16일까지 문화재청이 추진하는 이 사업의 목적은 ‘향후 국어 교육자료 등 올바른 활용을 위한 토대를 갖추고자 함’이다.

복원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세종대왕 탄신 600주년인 1997년 서울대 인문학연구소장 안병희 교수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훈민정음 해례본을 복원하려 했다. 그러나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이후 동국대 정우영 교수가 논문 ‘훈민정음 한문본의 낙장 복원에 대한 재론’을 통해 복원안을 발표하고 2002년 복원을 시도했으나 이 또한 간송 측의 반대에 부딪쳤다. “원본에 대한 복원은 또 다른 훼손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2006년 별세한 안 교수는 국립국어원 1~2대 원장, 문화재청 국보지정분과 문화재위원을 지냈다. 구체적인 복원본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권두 서명이 ‘訓民正音’(훈민정음)이 아니라 ‘御製訓民正音’(어제훈민정음)이라고 제시했다.

2001년 정 교수의 ‘훈민정음 한문본의 낙장 복원에 대한 재론’은 학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박 소장은 “훈민정음 서문의 제목이 과연 ‘御製訓民正音’인가, 아니면 그냥 ‘訓民正音’인가의 시비를 가리기 위해 행한 정 교수의 신선한 실험은 세종실록의 기록 ‘御製’를 무시했을뿐더러 전후좌우를 살피지 않은 것이었다”고 짚었다. 박 소장은 이를 2015년 논문 ‘訓民正音 御製 序文(서문)의 복원, 간송 해례본 落張(낙장)과 월인석보 언해본을 중심으로’로 입증했다.

그런데도 ‘御製’가 없는 그냥 ‘訓民正音’이 옳다는 정 교수의 재구성안과 결론은 2007년 문화재청의 훈민정음 언해본으로 이어졌다. 당시 문화재청의 훈민정음 언해본 정본 제작 연구용역 연구책임자는 국어사학회장 겸 경상대 국어교육과 조규태 교수다. 공동연구원은 정 교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이현희 교수, 서울대 언어학과 김주원 교수,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이호권 교수다. 

【서울=뉴시스】 어제서문 제2장(박대종 복원본)

【서울=뉴시스】 어제서문 제2장(박대종 복원본)

2015년 11월 국립한글박물관이 개최한 ‘한글과 동아시아의 문자’ 학술대회 중 ‘훈민정음 연구의 성과와 전망’을 주제로 한 전문가 소회의에서 이현희 교수가 전체를 개괄했다. 정 교수는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의 서지와 판본·복원 연구의 회고와 전망을 발표했다. 정 교수의 안을 그대로 반영한 2007년 문화재청 언해본에 이어 훈민정음 해례본 또한 정 교수의 안을 후속 사업으로 계속 추진하련다는 성격의 학술대회장이었다.

학술대회 나흘 뒤 뉴시스는 ‘훈민정음 간송본, 오자도 안 잡고 모르는 척’을 시작으로 ‘훈민정음과 어제훈민정음···세종의 원제는?’, ‘75년만에 바로잡았다, 세종대왕 어제 훈민정음’ 보도로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을 둘 다 복원한 박 소장의 성과를 공개했다.

며칠 후 박 소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의 소실 부분을 세종대왕 당시대로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고했다. 낙장을 복원한 결과물은 논문을 포함한 파일로 제출했다. 이를 검토한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은 지난 3월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의 유실된 앞쪽 2장과 보물 제745-1호 월인석보 내 훈민정음 언해본의 변개된 1장에 대해 복원한 연구성과와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고 박 소장에게 답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문화재청은 복원사업에 착수했다.연구용역을 공고하면서 “70여년만에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라고 했다. 앞뒤가 바뀌었다. 해례본 사업에 앞서 2007년 문화재청 언해본 복원본이 오류였음을 사과하고 해명하는 것이 순서다.

언해본과 해례본은 제목 ‘御製訓民正音’을 비롯, 본문의 한문 내용이 완전히 일치해야 한다. 해례본의 한문을 정음으로 해석한 것이 언해본이기 때문이다.‘御製訓民正音’이 아닌 제목 ‘訓民正音’의 2007년 문화재청 언해본의 잘못을 덮어둔채 이번 해례본 사업을 벌인다는 것은 잘못의 반복이다. 정당하지 못한 일처리 방식이다.

박 소장은 국어학계의 숙원인 어제서문 낙장 부분을 과학적으로 정밀복원했다. 이 완성본에 대한 반론은 나오지 않고 있다. 오류도 확인된 바 없다. 문화재청이 복원작업을 할 까닭이 없는 셈이다. 박 소장이 복원을 마친 훈민정음 해례본 낙장을 외면하려면, ‘박대종본’이 틀렸다고 입증부터 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박 소장은 “기존의 복원본과 복원안들에 대한 학문적인 문제점과 해결책을 이미 전 국민에게 알렸다. 2007년 문화재청 언해본의 당사자인 정 교수와 공동연구진은 나의 논리와 성과에 반박하지 못함은 물론, 자신들의 연구를 보호하는 공개적 입증 조치를 전혀 취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나의 복원본에 오류가 있다면 문화재청이 국어학계로 하여금 활발한 논의를 통해 그것을 발견해내라고 주문하면 될 일이다. 현재까지 이것을 능가하는 복원본은 아무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문화재청 언해본(2007), 서강대 월인석보 언해본(1459), 서강대본 제3장 뒷면, 박대종 복원 훈민정음 언해본(2015)

【서울=뉴시스】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문화재청 언해본(2007), 서강대 월인석보 언해본(1459), 서강대본 제3장 뒷면, 박대종 복원 훈민정음 언해본(2015)

 
박대종본은 1940년 김태준과 이용준의 제1차 복원본, 1986년 안 교수의 제2차 복원안, 1997년 동국대 최세화 교수의 제3차 복원안, 1998년 한글학회의 제4차 복원본, 2001년 정 교수의 제5차 복원본, 2007년 문화재청의 훈민정음 언해본을 빠짐없이 검토해 탄생한 최종 복원본이다.

문화재청이 10년 전 제목 ‘訓民正音’으로 시작하는 잘못된 언해본과 동일한 훈민정음 해례본 결과물을 내놓는다면, 거듭된 잘못으로 인한 거듭된 국가예산 낭비다. 세계적 보물인 훈민정음을 오도(誤導)했다는 비판도 면할 수 없다.

박 소장의 연구성과물을 수용하고 포상하는 절차 없이 박대종본과 같은 것을 또 만들어도 문제다. 박 소장의 지적재산권을 문화재청이 침해한 꼴이 된다. 박 소장의 결과물은 바로 인쇄 가능하다. 따로 돈이 들어갈 일이 없다. 문화재청의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정본 제작 연구용역’ 사업예산은 40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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