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日 공격·中 추격 이중고…가마우지꼴 탈피 기회로 삼아야"

등록 2019.08.07 20:16:43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과학기술계 3대 기관, 日 수출규제 대응 토론회 개최

"동일본 대지진 때 국가 다변화에 실패…국산화 절실"

"日 공격·中 추격 이중고…가마우지꼴 탈피 기회로 삼아야"

【서울=뉴시스】이진영 기자 = 일본이 경제 보복을 개시하면서 국내 대표 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를 제조하기 위한 소재·부품·장비 조달망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더군다나 중국이 무섭게 추격하면서 양대 산업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에 과학계·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가마우지'꼴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마우지는 목을 조여 물고기를 잡아도 삼키지 못하도록 한 뒤 빼내는 낚시법으로 핵심 소재·부품·장비를 일본에 의존한 한국이 아무리 수출을 많이 해도 이득은 일본에 돌아가는 구조를 비유하는 말이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한국공학한림원·한국과학기술한림원 등 과학기술계 3대 기관이 7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에 대한 과학기술계 대응 방안'을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는 이 같은 내용이 발표됐다.

앞서 지난 2일 일본 정부는 수출 심사 간소화 우대국 명단, 소위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미 규제 대상에 포함돼 있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을 포함, 800여개 이상의 품목이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 품목으로 이달 말 전환될  전망된다.

주제 발표자로 나선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을 맡고 있는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한국은 반도체·디스플레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며 "특히 올 들어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133조, SK하이닉스가 120조 등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지난 4월에는 세계 최초 5G 상용화로 도약하려는 시점에 일본이 공격을 감행했다"라고 진단했다.

박 회장은 이어 "업계서 기술자와 학자로 있는 35년간 지금 못지않은 위기가 많았지만 그때마다 기업과 과학계가 위기를 극복했다"며 "시간의 문제지만 이번에도 분명 극복할 것이며 오히려 일본 소재 및 IT 업체의 매출이 급감하면서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1993년 세계 반도체 에폭시 수지 제조 물량의 60%가량을 생산하는 일본 스미토모화학 공장에 폭발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국내 반도체 기업 3사는 2개월치 재고만 보유해 곤경에 빠졌지만 국산화 및 대만 등 해외 업체로의 다변화로 위기를 넘어섰다. 반면 스미토모화학 공장은 이후 정상 가동에도 대만에 회사를 매각하는 상황을 맞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회장은 당시 위기를 겪었음에도 제대로 된 대응 구조를 갖추지 못했기에 일본이 이번 공격을 감행할 빌미를 줬다고 분석했다.

특히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글로벌 공급 체인이 붕괴되면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및 국가별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재차 알아챘음에도 당시 제대로된 개선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박 회장은 "동일본 대지진 사태를 계기로 정부와 기업들은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이 가마우지꼴이라는 문제를 인식했지만 6개월이 지나자 없던 일처럼 돼 버렸다"며 "당시 소재·부품·장비 업체 다변화는 했지만 국가의 다변화는 이루지 못했고, 장기적인 플랜을 가져가야 하는 국산화도 잊어버렸다"라고 회고했다.

"日 공격·中 추격 이중고…가마우지꼴 탈피 기회로 삼아야"

결국 반도체 소재(48%) 장비(18%) 국산화율은 정체되거나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 회장은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고 환기했다.

국제 무역 환경이 자유 무역주의에서 보호 무역주의로 변한 상황도 주목했다. 박 회장은 "전 세계적인 보호 무역주의는 향후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대기업과 정부는 글로벌 수준의 소재·부품·장비 업체 육성과 국가별 다변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를 위해 '부품 소재 전문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 조치법' 내에 국가별 다변화가 필요한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분야의 주요 소재·부품·장비 품목을 지정, 지정 항목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정기적으로 국산화 추진 정도를 점검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동시에 글로벌 수준으로 육성된 품목에 대해서는 대기업에서 해당 품목을 일정량 이상 구입하겠다는 대정부 약속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박 회장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를 국산화하려면 실제 공정과 똑같은 환경에서 평가하는 시설이 필요하다"며 "1000억원의 예산을 투여해 클린룸과 웨이버 전후 공정장비를 보유한 한국형 테스트 베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그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R&D)을 범국가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대학교수와 정부 출연연구기관 연구원이 기업 R&D 센터에 파견돼 일할 수 있게 허용하고, 연구개발 인력 52시간 근무시간제 예외, 해외업체에 대한 인수합병 시 세제 혜택 강화 등도 언급했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