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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술의 알콜로드]포르투갈엔 포트와인만 있는 게 아녔다

등록 2020.01.03 0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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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두 선율에 취해, 도우루 와인에 취해

[포르투갈 리스본=뉴시스] 이예슬 기자 =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술을 부르는 리스본의 풍경. 낮에는 비노 베르데에 해산물 요리를, 밤에는 도우루 지역에서 난 레드 와인을 곁들여 행복한 알콜 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 다음에 리스본을 또 간다면 알파마 지구에다 방을 잡고 파두를 안주삼아 와인만 마시다 오고 싶다.

[포르투갈 리스본=뉴시스] 이예슬 기자 =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술을 부르는 리스본의 풍경. 낮에는 비노 베르데에 해산물 요리를, 밤에는 도우루 지역에서 난 레드 와인을 곁들여 행복한 알콜 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 다음에 리스본을 또 간다면 알파마 지구에다 방을 잡고 파두를 안주삼아 와인만 마시다 오고 싶다.

[포르투갈 리스본=뉴시스] 이예슬 기자 = '7개 언덕의 도시'라 불리는 리스본에서도 가장 높은 언덕인 알파마 지구.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미로처럼 이어진 이 지역의 한 파두(Fado) 라이브카페에서 처음 도우루 와인을 만났다. 파두의 애절한 선율을 닮은 끈적하고 진득한 풀 바디의 레드와인이여!

파두는 포르투갈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서정가요다. 운명 혹은 숙명을 뜻하는 라틴어 '파툼(Fatum)'에서 파생된 말이란다. 우리나라 음률에 '한'의 정서가 스며있다면, 파두엔 '사우다쥐(Saudade)'가 있다. 슬픔, 운명에 대한 체념, 애수, 그리움 등이 복합된 이 감정은 현지인들도 똑 떨어지게는 정의하지 못한다. 유럽의 서쪽 끝, 대서양을 접한 포르투갈. 이 곳 사람들의 운명은 바다를 마주하며 얻는 시련과 무관치 않으리라. 뱃사람들의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도, 바다로 떠난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여성들의 고달픈 삶도 파두에 녹아들었다.

공연을 기다리며 메뉴를 받아들었다. 포르투갈 와인에 대해선 문외한이었던지라 종업원에게 추천을 요구했다. 어느 곳에서든 도우루 지역에서 난 와인을 택하면 후회는 없을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 메뉴판에 고정했던 시선을 돌리자 머리가 희끗한 중년 남성의 눈과 마주쳤다. 그 눈은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이 애송이 여행자에게 포르투갈의 자랑, 도우루 와인의 맛을 보여주고야 말겠어!'.

기대치가 너무 낮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포르투갈 와인이 뇌리에 강렬하게 박힌 것은. 사실 그전까지 난 포르투갈 와인에 대한 대단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주정강화 와인인 포트와인이 포르투갈 와인의 모든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포트와인은 발효 중인 와인에 브랜디를 첨가한, 도수는 세고 단 맛이 도드라지는 와인이다. 도수가 센 건 고마운데, 난 술이 단 것을 끔찍하게도 싫어한다. 과거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마카오 여행에서 기념품으로 포트와인을 사 왔는데, 한 모금 마셔보고는 '아, 이건 내 취향이 아니구나' 했다. 두 병을 억지로 처리하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했다.

낮게 읊조리듯 노래를 시작한 파디스타(파두 가수)는 정제되지 않은 고음으로 비통함을 토해냈다. 천장이 낮고 옹색한 달동네 카페는 파디스타의 거친 숨소리를 받아내기 위해 존재하는 최적의 장소인 양 느껴졌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내 앞에 온 와인잔을 들고 살짝 돌리자 검붉은 액체가 벽을 타고 슬로우 모션처럼 진득하게 흘렀다. 입에 넣었더니 묵직한 질감이 입 안을 꽉 채웠다. 전문적으로 와인을 공부하지 않아 테이스팅 노트를 섬세하게 기록하지는 못하지만, 바닐라 향과 다크 초콜릿 향이 과실향과 적절한 조화를 이뤄 아주 달게 마셨다. 포르투갈 와인에 대한 나의 편견을 한 번에 깨줄 만큼 강렬한 한 모금이었다. 이 와인에 대한 정보를 기록해 놓지 않은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기록했더라도 국내에 수입돼 있을 가능성은 적지만 말이다.

후에 안 사실. 도우루는 뜨겁고 건조한 지역이라 달디 단 포도가 잘 익는단다. 이 곳 사람들은 도우루 계곡을 따라 이어진 V자형 비탈을 개간해 밭을 만들고 포도를 재배해 왔다. 이 모습이 장관이라 유네스코(UNESCO)가 이 지역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도우루가 포트와인을 주로 생산하는 곳이긴 하지만, 비싸지 않으면서도 맛이 떨어지지 않는 밸류 와인도 잘 만들어 낸다는 것을 포르투갈 여행에서 알게 된 것이 행운이다.

도우루 지역 이외에도 여러 와인을 마셔본 결과 다른 지역 와인들도 꽤 마음에 들었다. 특히 연녹색을 띠는 '비노 베르데'가 인상깊었다. 햇빛이 뜨거운 한낮, 차갑게 칠링한 비노 베르데를 정어리 구이나 염장 대구 요리와 곁들여 먹는  것이 썩 잘 어울렸다. 과일향과 산미가 강했는데, 끝맛에 탄산감이 살짝 느껴지는 산뜻한 와인이었다.

국내 와인수입업체에서는 포르투갈 와인을 많이 다루지 않아 어딜가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주류 회사 관계자에게 포르투갈 와인을 수입하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포트와인을 취급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을 만큼 아직까지 '포르투갈와인=포트와인'의 공식은 굳건한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한국 사람에게는 그리 유명한 산지가 아니기도 하고, 가성비로 따지면 다른 지역 와인에 밀렸으니 적극적으로 수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 마트에서 포르투갈 와인을 발견하면 '심봤다' 하며 카트에 담곤 한다. 가장 좋아하는 산지의 와인인지 묻는다면 그건 아니지만, 애주가로서 선택의 옵션이 많아진다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다.

※코너 제목의 '이예술'은 지인들이 부르는 이 기자의 별명입니다. 술 따라 떠나는 여행길 입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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