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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조각이라도" 5·18행불자의 '한 맺힌 39년'

등록 2019.12.22 07: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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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매장지 꼽힌 옛 광주교도소서 신원 미상 유골 수십 구 발견

정부 5·18행불자 연관성 조사에 현황·사연 관심 "일말의 기대"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5·18광주민주화운동 38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석한 임옥한 열사(행방불명자)의 어머니 김진덕(74·여)씨가 열사의 묘역에서 오열하고 있다. 2017.05.17.  sdhdream@newsis.com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5·18광주민주화운동 38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석한 임옥환(행방불명자)의 어머니 김진덕(74·여)씨가 행불자 묘역에서 오열하고 있다. 2017.05.17.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 신대희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암매장 의혹이 제기된 옛 광주교도소에서 신원미상 유골 수십 구가 나왔다.

일부 유골의 두개골에서 구멍이 발견돼 정부가 5·18행방불명자와의 연관성을 조사키로 하면서 5·18행불자 현황과 사연에도 관심이 쏠린다.

22일 광주시와 5·18단체 등에 따르면 1980년 이래 5·18행불자 신고는 448건(중복 건수 포함)에 달하지만, 심사를 거쳐 관련자로 인정된 이는 84명에 그친다.

84명 가운데 유전자 감식을 통해 신원이 밝혀진 희생자는 6명뿐이다. 행불자로 인정된 78명의 주검은 어디에 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중복신청자를 제외한 불인정 자는 242명이다.

행불자 유가족들은 지난 39년간 실종된 피붙이를 찾아 전국 각지를 누볐다.

뼛조각 하나라도 찾아 고이 묻어주고 싶었지만, 흔적조차 찾지 못해 마르지 않는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매 순간이 고비였고 사투(死鬪)였다.

불의한 권력이 지휘한 자국 군대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가족의 유해라도 찾고 싶은 간절함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5·18기념식 때는 80년 5월19일 행방불명된 이창현(당시 양동초 1학년·8살) 군을 찾아다닌 이귀복(83)씨의 사연이 소개되며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지켜주지 못해 두고두고 미안하다. 38년이 380년 같았다. 아들은 아직도 대답이 없다'는 절규는 안타까움을 더했다.

매년 5월17일 5·18묘지 행불자 묘역을 찾는 임옥환(당시 조대부고 2학년·18살)군의 부모도 주검 없는 빈 무덤 묘비를 붙잡고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임 군은 80년 5월22일 계엄군이 광주 외곽을 봉쇄하자 절에서 공부하던 친구와 전남 화순을 거쳐 고향인 고흥으로 가기 위해 새벽 조선대 뒷산을 넘었다.

임 군은 매복하고 있던 공수부대원에게 무차별 사격을 당한 뒤 실종됐다. 임 군의 부모는 만사를 제쳐두고 아들을 찾아다녔지만, 남은 것은 눈물뿐이었다.

군의 헌정 유린과 만행을 참지 못해 항쟁에 나섰다 실종된 청년들과 중장년층 시민들, 시위 현장을 구경하러 갔다 돌아오지 못한 중학생, 시장에 장을 보러 외출했다 사라진 예비 신부 등 행불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차고넘친다.  

피붙이를 잃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은 유가족도 많다. 실종 경위를 입증하지 못해 행방불명을 인정받지 못한 이들도 수두룩하다.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5·18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행방불명자 묘역에서 박갑용(1980년 당시 66세) 열사의 셋째딸 박복자(71·여)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9.05.17.  sdhdream@newsis.com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5·18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행방불명자 묘역에서 박갑용(1980년 당시 66세)의 셋째딸 박복자(71·여)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9.05.17. [email protected]


행불자 유가족들은 최근 옛 광주교도소에서 발견된 유골이 5·18 당시 암매장된 희생자일 것이란 조그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유골 감정 과정을 차분히 지켜볼 계획이다.

지난 20일 옛 광주교도소 부지의 무연고자 공동묘지를 개장하는 과정에 신원미상 유골 40여구(이중 매장 형태·무연고 명단에 없음, 2구의 두개골서 구멍)가 나와 정부 합동조사단이 정밀 감정에 착수한다.

유전자 정보가 나오면, 5·18행불자 가족의 혈액·DNA와 대조할 방침이다. 

80년 5월 21일~22일 옛 광주교도소에 주둔했던 3공수여단(사격선수 출신 등으로 구성)과 20사단 병력은 담양·순천 쪽으로 이동하는 차량·시민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군 기록상 당시 민간인 희생자는 27~28명으로 추정된다. 5·18직후 교도소 관사 뒤에서는 시신 8구, 교도소 앞 야산에서는 시신 3구가 암매장 상태로 발견됐다. 16~17구는 암매장됐을 것이란 관측이다.

3공수여단 지휘관, 재소자 진술과 시민 제보에 따라 암매장지 발굴 작업은 1997년부터 2017년까지 옛 교도소 등지서 11차례 이뤄졌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사형수와 무연고 수형자들이 묻힌 묘지이고 그동안 발굴·조사 대상에 빠져 있던 점 ▲유골의 손상·부식 정도 ▲봉분 형태·크기 ▲유골 근처서 유품이 발견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암매장과 관련이 없다는 추론도 나온다.

다만, 계엄군이 희생자를 가매장·암매장한 뒤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는 증언이 있는 만큼 유골 상태로 재매장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추측도 제기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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