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문화일반

[인터뷰]한송희 "나혜석 고뇌·고통, 우리와 닮았더라고요"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등록 2020-10-14 17:56:01
서울시극단 연극 '나, 혜석' 작가
26일 오후 8시 온라인 공연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연극 '나, 혜석' 한송희 작가. 2020.10.12. (사진 = 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나혜석은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죠. 그 분이 가진 고뇌와 고통을 들여다보니, 제가 고민하는 것들과 의심하는 것들이 닮아 있었어요. 그래서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 '저와 제 주변 사람들과 가까이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지금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겠구나, 생각한 거죠."

한국 최초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1896~1949)이 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의 연극 '나, 혜석'로 다시 소환됐다. 한송희 작가가 21세기 현실로 불러온다.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한 작가는 "그간 나혜석에 대한 묘사는 도도하게 그려져 강인하고 완벽한 모습으로 인식돼 왔는데, 나혜석도 고민을 하고 많이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나혜석이 잡지에 발표한 '이혼 고백서'는 그녀의 파격을 대변한다. 정조관념도 남녀평등이 필요하다는 사자후를 토했다. 자신과 밀회로 이혼의 빌미를 제공한 최린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혜석은 자신에게 이혼을 요구한 남편 김우영과 결혼생활을 어떻게든 유지시키려고 했다. 사회적인 소외와 경제적인 궁핍에 내몰리기도 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은 그런 그녀에게 더욱 엄혹했다.

한 작가는 "나혜석이 자신의 신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현실과 갭을 많이 느끼는 걸 봤어요. 그 부분을 잘라 단면을 본다면, 같은 모습이더라도 전혀 다른 부분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연극 '나, 혜석'은 시대를 대표하거나 여성을 대변하는 인물로 나혜석을 파고들기보다 그녀의 인간적인 부분을 톺아본다. 그래서 나, 혜석이다. 나혜석을 좀 더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그리기 위해 시대별로 다른 나혜석, 즉 총 세 명의 나혜석을 등장시킨다.

한 작가는 "나혜석의 인생은 굴곡이 크고, 역경도 많아요. 그런 부분을 어떻게 하면 입체적으로 보여줄까 고민하다가 나온 설정이에요. 인생의 중요한 지점을 교차시켜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 작가는 배우이기도 하다. 이기쁨 연출은 이번 '나, 혜석'에 그녀를 박인경 역에 캐스팅했다. 나혜석을 옆에서 지켜본 박인경 화백에서 영감을 얻은 인물. 이번 연극에서는 내레이터 역할이다. 한 작가는 "나혜석 시대 이후의 여성들의 연결고리를 박인경이 만들었으면 했다"고 전했다.

 2009년 출발한 창작집단 LAS의 창단 멤버다. 이기쁨 연출과 한 작가가 주축인 이 극단은 최근 대학로에서 가장 주목 받는 젊은 창작집단. 한 작가는 2012년 '서울 사람들'로 작가 데뷔했다. 이후 '미래의 여름'(2014),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2016), '줄리엣과 줄리엣'(2018) 등을 발표했다

특히 신화와 현실, 가상과 진짜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연극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는 크게 주목 받았다. 그리스 신화 속 세 여신이 주인공. 융숭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여신들이지만 완전무결하지 않다. 여성으로서 당하는 지난함은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아픔과 닮았다.

2016년 '여성 혐오' 논란을 촉발시킨 강남역 사건, 2018년 미투운동을 거치면서 이 연극은 더욱 주목 받게 됐고 '페미니스트 입문극'이 됐다.

이후 대학로에는 여성서사의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다. 한 작가가 실제 공연계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어떨까. 한 작가는 미국 진보의 아이콘이자 최근 세상을 뜬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대법관의 말로 대신했다. "9명의 대법관 모두가 남성일때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여성이 9명의 대법관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연극 '나, 혜석' 포스터. 2020.10.12. (사진 = 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 photo@newsis.com
한 작가는 사실 신화, 고전, 역사에 크게 흥미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신화를 내 얘기로 가져오고 싶다'는 마음에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같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이후 '주체를 누구로 두느냐'는 화두가 생긴 한 작가는 '나, 혜석'에서는 "나혜석 입장이 서술에서 무조건 1번이었다"고 강조했다. "외부의 시선이 아닌, 나혜석의 시각으로 어떻게 하면 볼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어요."

한 작가는 배우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더 분명히 했다. "배우로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것이다. 다만 "작가를 하면서 배우로서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자극이 된다"고 했다.

동시에 작가로서 정체성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한동안 '내가 무슨 작가냐, 배우이지'라는 생각을 해왔는데 그것이 '작가로서 책임 회피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특히 서울시극단과 작업한 '나, 혜석'은 극단 내부가 아닌 외부와 처음 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실존 인물을 다루는 작품이라 더 부담이 컸어요. 무게감이 있었죠.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들었죠. 그런데 이제 작가로서 책임감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한편 '나, 혜석'은 지난달 22일부터 27일까지 M씨어터에서 공연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의 확산세의 안정화와 국가적 방역 상황에 동참하기 위해 취소했다. 대신 오는 26일 오후 8시에 온라인 공연으로 선보인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핫 뉴스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