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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와인 세금’이 이끈 프랑스 혁명

등록 2022.06.25 06:00:00수정 2022.06.27 09: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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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죽음과 세금은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다(Nothing is certain but death and  taxes)”.
미국의 정치가이자 열렬한 와인 애호가였던 벤자민 프랭클린이 250년 전 한 말이다.

세금의 역사는 와인의 역사만큼 오래 됐다.

수렵 채취 생활을 끝내고 한 곳에 정착한 인류는 1만2000년 전쯤 최초로 농경을 시작했다. 농경과 함께 시작된 집단생활은 7000년 전 중동 수메르 지역에서 최초의 도시 국가 형태로 발전한다.

인류 최초의 세금에 관한 기록은 4500년전 수메르 라가시 왕조 때 점토판에 기록한 세금 징수 흔적이다. 하지만 문자 기록이 없던 이전에도 국가의 형태가 존재했던 것을 고려하면, 세금은 그 이전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고대 로마에는 오늘날 주민세와 비슷한 인두세를 비롯 가축세, 올리브세, 물고기세, 노예해방세, 속주세 등이 있었다.

맥주와 와인에 세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와인에 대한 가장 오래된 세금 영수증도 발견됐다. 고대 이집트 포톨레마이오스 2세 시절인 기원전 174년 9월26일 목판에다 잉크로 써서 발행한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와인을 비롯한 농산물의 세율은 통상적으로 십일조와 같은 10%였다, 그러나 포톨레마이오스 10세 시절인 기원전 98년 7월22일 90달란트의 토지 거래세를 ‘드라크마(drachma)’라는 단위의 동전으로 지불한 세금 영수증이 발견된 것으로 보면, 토지 거래세는 꽤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90달란트(Talent)는 54만드라크마에 해당한다(1달란트=6000드라크마). 그 당시 비숙련 이집트 노동자의 1년 연봉인 1만8000드라크마에 비교하면 90배에 달하는 거금이다. 자루에 담은 동전의 무게만 100㎏에 달했는데, 납부자가 수레에 싣고 관청과 함께 위치한 은행에다 직접 납부했다.

중국 주나라에서도 추수를 한 곡물 중 10% 정도를 정전제를 통해 세금으로 냈다. 백성 친화적이었던 고조선은 수확물의 5% 정도만 징수했다.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세금 징수가 불가피하다.

역사적으로 국가는 재정 마련을 위해 특정 품목의 생산과 유통을 국가가 독점하는 전매제도를 활용하기도 했지만, 시대와 나라를 막론하고 위정자가 가장 선호했던 방법은 세금 징수였다. 가장 확실하고 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왕이나 정부는 각종 명목의 세금을 만들어냈고 이는 곧 백성에 대한 가혹한 수탈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수탈은 조세 저항이라는 부메랑이 돼 절대 권력자마저 내쫓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세계사를 보면 많은 역사적인 변혁이나 민란, 혁명이 세금 때문에 일어났다. 세금의 역사가 혁명의 역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혁명, 조선 동학혁명도 과도한 세금이 도화선이 됐다. 프랑스 루이 14세 때의 재상인 콜베르는 거위가 비명을 가장 적게 지르게 하면서 가장 많은 털을 뽑는 ‘거위 털 뽑기’에 세금의 징수를 비유하기도 했다.

중세 봉건주의 시대에는 백성 수탈이 더욱 심했다. 왕들은 로마 시대의 오줌세와 같은 각종 창의적인 세금을 고안했고, 교회에서는 면죄부를 남발했다. 창문세, 헤어파우더세, 비누세, 굴뚝세, 첨탑세, 결혼세, 사망세, 통행세, 가발세, 턱수염세, 애완동물세, 벽돌세, 기사들에게 물린 방패세 등 기상천외한 세금이 등장했다. 세무서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민간 징수인에게 세금 징수를 위탁하기도 했는데 이들 역시 백성을 가혹하게 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세금은 1789~179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와인에 대한 세금이 커다란 요인이었다. 와이너리는 과중한 토지세에 더해 와인을 팔 때 마다 판매세를 내야 했다. 그리고 파리와 같은 대도시로 와인을 반입할 때는 통행세를 추가로 냈다. 이 때문에 프랑스 혁명 당시 와인 가격은 종전의 3배로 치솟아 있었다. 이에 판매업자나 소비자들은 터널을 뚫거나 교외에 술집을 만드는 방법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 중이던 1789년 5월1일 이러한 세금이 철폐됐고, 이날 파리에는 와인 200만 리터가 세금없이 반입됐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를 자유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축하연을 벌였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에도 그 당시 이야기가 나온다.

한 때는 여성이 와인을 마시는 것이 금지된 시대도 있었다. 와인을 마시는 것은 자유를 마시는 것과도 같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우아한형제들 인사총괄 임원 ybby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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